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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맛 따라가는 여행] 부산 맛골목 여행
[맛 따라가는 여행] 부산 맛골목 여행
  • 최혜진 기자
  • 승인 2010.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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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부산 맛골목.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 =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공수한 신선도 100%의 오징어무침, 하나하나 팥 알갱이가 살아 있는 단팥죽, 코끝을 톡 쏘는 겨자소스의 냉채족발까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시장 골목을 따라가면 부산 토박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질박한 먹을거리가 이어진다. 그중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시장통 먹을거리의 대표 주자를 선별해 ‘맛골목 기행’을 떠났다. 

시장표 군것질 총출동! 남포동 먹자골목 
요사이 ‘남포동 먹자골목’은 부산에 오면 꼭 한번 들러야 할 필수 코스가 됐다. 좁은 골목을 따라 ‘부산 아지매’들이 좌판을 펼쳐놓은 풍경도 재밌지만, 제각각 차려놓은 부산식 분식들을 차례차례 맛볼 수 있다는 점도 구미가 당긴다. 

매콤한 오징어무침과 함께 먹는 충무김밥. 사진 / 최혜진 기자

더구나 남포동 먹자골목의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값지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이어져온 부산의 역사와도 다름없다. 전쟁이 터진 후 수많은 피난민들이 국제시장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들을 상대로 근처에 살던 아낙들이 간단한 먹을거리를 가져와서 좌판을   펼친 것이 그 시작이다. 이렇게 시작한 먹자골목이 당시에 대히트를 치면서 그 자리는 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전해지며 오늘날까지 부산의 골목 한쪽에서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시장 골목을 돌고 돌아 마침내 도착한 남포동 먹자골목. 듣던 대로 충무김밥, 찹쌀순대, 비빔당면, 유부초밥까지 20여 가지의 먹을거리 좌판이 일렬종대로 늘어서 골목을 완전히 점령했다. 마치 푸짐한 밥상을 차려놓고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듯,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아무래도 요즘 세대에겐 생경하기만 하다. 

20여 개의 먹을거리 좌판이 늘어선 남포동 먹자골목. 사진 / 최혜진 기자

골목 안으로 걸음을 밀어넣자 아주머니들이 환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아준다. 다만 “이짝에 앉으이소!” “순대 드시고 가이소!” 하며 여기저기서 손짓을 하는 통에 살짝 당황스럽다. 결국 요모조모 따져보고 고를 틈도 없이 처음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 앞에 앉아 버렸다. 다른 용무로 이 골목을 지나가더라도 방글방글 웃으며 손짓하는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영락없이 파란 앉은뱅이 의자를 끌어다 철퍼덕 앉지 않을까 싶다. 

이 집의 메인 메뉴는 다름 아닌 충무김밥. 먼저 플라스틱 그릇 위에 하얀 종이를 깔고 비닐봉지에 꽁꽁 싸두었던 무김치를 한 국자 얹고, 빨갛게 양념한 오징어무침을 또 한 국자 얹고, 마지막으로 김으로 돌돌만 작은 김밥을 올려 앞에 놓아준다. 김밥을 한입 맛보니 간을 거의 하지 않아 심심한데, 뒤이어 무김치와 오징어무침을 이쑤시개로 꼭꼭 찍어 먹으니 매콤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간이 딱 맞는다. 

구수한 쌈장에 푹 찍어먹는 부산식 순대. 사진 / 최혜진 기자

“맛이 어떤가? 먹을 만하제? 여그 오징어는 저짝 건너편 자갈치시장에서 가져온 기라 다들 억수루 맛있다 카는데….”
안 그래도 ‘음, 뭐가 달라도 다른데!’ 하며 먹고 있던 차에 그 말을 듣고 보니 유난히 오징어무침의 맛이 좋다. 일단 부산에서 잡아 올린 신선도 100%의 오징어가 아니던가. 말리지 않은 생물 오징어를 살짝 데쳐 매콤한 양념을 듬뿍 넣어 화끈하게 무쳐낸 오징어무침은 씹을수록 그 진가가 우러난다. 더구나 3000원이란 가격을 생각하면 흐뭇한 한 끼가 아닐 수 없다. 

내친김에 옆자리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는 따끈한 순대도 맛을 본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기에 “조금만 담아주세요!” 했는데도 시장 인심이 그게 아니다. 찰순대와 머릿고기, 간이며 각종 내장들을 듬성듬성 썰어서 한사코 한 그릇을 담아준다. 그러면서 “순대도 고마 부산식으로 먹어야 제 맛이라. 여그 쌈장에 푹 찍어 먹어본나” 하신다. 

당면은 볶아야 맛이라고? 부산에선 비벼 먹는 당면이 인기 절정. 사진 / 최혜진 기자

아주머니 말씀대로 야들야들한 순대를 쌈장에 푹 찍어 맛을 본다. 스테이크가 소스 하나로 맛이 달라지듯 소금에 찍어 먹는 순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매콤한 쌈장이 순대의 비린 맛을 잡아주고 구수하고 달달한 맛도 더해진다. 더구나 퍽퍽한 간은 쌈장과 어우러져 감칠맛이 난다. 

순대가 점점 줄어들 때쯤 절로 눈길이 닿은 음식은 다름 아닌 비빔당면. 보통 당면은 간장으로 간을 해서 프라이팬에 볶는 ‘잡채’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간 당면을 삶아서 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는 것이 좀 의아하다.  

이윽고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저도 한 그릇이요!” 하고 주문을 했더니 당면 위에 시금치, 당근, 단무지 등의 고명 올리고 참기름을 찍 뿌려 내준다. 보들보들한 면과 새콤달콤한 양념장의 조화는 비빔국수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느낌이 훨씬 가볍다. 부산식 다이어트용 비빔국수쯤으로 해두면 될까. 가격도 2000원이라 출출할 때 한번 먹고 가기에 부담이 없다. 후에 알고 보니 비빔당면은 부산의 여느 분식점마다 메뉴를 갖추고 있을 만큼 인기 절정의 먹을거리였다. 

하나하나 팥 알갱이가 살아 있는 단팥죽은 할머니가 끓여주신 그맛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달콤한 팥죽 냄새가 솔솔~ 단팥죽골목
남포동 먹자골목에서 피프광장 쪽으로 나가서 광복로를 따라 왼쪽, 다시 창선치안센터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단팥죽골목이다. 노점상에도 자리와 규칙이 있다는 듯 옛날식 파라솔 가게들이 1번부터 7번까지 번호표를 달고 늘어서 있다. 날이 후끈하면 팥빙수를, 서늘하면 단팥죽을 파는데, 아직 날이 풀리지 않은 탓에 집집마다 팔팔 끓는 달콤한 단팥죽 냄새가 손님을 잡아끈다. 

그 중에서 번호도 1번, 맛도 1번이라 알려진 골목 첫 번째 단팥죽집에 자리를 잡았다. 옴팍한 그릇에 팔팔 끓는 팥죽을 한 국자 부어넣고, 인절미를 듬성듬성 잘라 올려준다. 

손님이 올 때마다 떡을 썰어주는 것인지 물었더니 “첨부터 엿고 끓이면 떡이 퍼져서 맛이 있나?” 하신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 직접 김을 올려 팥을 삶고 빻아 앙금을 만들고, 그날그날 고구마전분을 넣어 팥죽을 끓이는 것이라고 하니 대단한 정성이다. 

여름엔 팥빙수, 겨울엔 단팥죽을 판매하는 단팥죽골목. 사진 / 최혜진 기자

그 정성만큼 맛도 놀라울 정도다. 인절미와 함께 단팥죽을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일단 달지 않아 좋다. 주인장의 말대로 퍼지지 않고 쫄깃하게 씹히는 떡도 맛있지만, 무엇보다 입 안에서 알알이 살아 있는 팥 알갱이들이 흡족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던 단팥죽, 그 맛 그대로다.  

“내 이거를 해가 자슥 다섯 공부 다 시킷는데 정성 들이야 안 하겠나. 여그 서른 일곱에 나와가 인자 칠십인께 벌써 33년이 다 됐다카이. 인자는 아침마다 떡집에서 인절미 하는 기랑 저녁때 집에 가가 팥 삶는 게 고마 몸에 배 뿌렸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10년 단골이 나타나 “오늘 내 팥죽 묵을라꼬 여까지 나왔다카이” 하며 한 그릇을 주문한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니 주인장은 “아이고마, 을매나 먹고 싶어 그랬노. 이리 줘바라. 한 그릇 더 줄께 실컷 무라” 하신다. 푸짐한 부산 인심이 단팥죽보다 더 달다.  

코 끝을 톡! 쏘는 냉채족발, 족발골목
다시 광복로를 따라 족발골목으로 향한다. 그 길로 10분 정도 더 올라가면 족발집이 유난히 많이 몰려 있는 부평동 족발골목이다. 골목 입구에서 곶감을 팔고 있는 노점상 할아버지께 어느 족발집이 맛있냐고 물었더니 “이짝에 한성족발도 있고, 저짝에 부산족발도 있는데, 저 위에 한양족발이 맛은 젤이라 카데. 오래되기도 됐고, 손님도 제일 많다카이” 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한양족발은 그 시간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족발 살을 발라내는 주인장의 손길도 분주하다. 그의 예리한 칼이 지나가면 묵직한 뼈에 붙은 통통한 살이 척척 발라진다.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이는 곧 종잇장처럼 얇고 일정하게 쓱싹쓱싹 썰린다. 

부산에서 내로라하는 족발집이 모여있는 부평동 족발골목. 사진 / 최혜진 기자
2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양족발. 주인장의 예리한 칼이 지나가면 족발이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진다. 사진 / 최혜진 기자

“하이간 젤로 중요한 기는 육수를 잘 우려가 족발을 제대로 삶는 기라. 대추, 계피, 생강, 통후추, 한 16가지 약재를 엿고 오릿동안 삶아야 잡냄새가 확 날아가제. 또 삶고 나선 찬바람을 확 쏘이줘야 꼬들꼬들하고 쫄깃쫄깃하고 제대로 된 족발 맛이 난다 안 하나.”
28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터득해온 족발 맛의 비결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더불어 고기를 얇게 써는 것은 냉채족발에 겨자소스가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란다. 오이, 양파 등 각종 야채들과 톡 쏘는 겨자 소스를 곁들여 먹는 그 유명한 부산 냉채족발은 과연 어떤 맛일까. 

족발과 소스, 야채들이 잘 어우러지도록 충분히 젓가락으로 섞은 후에 한입 맛보았다. 단숨에 코끝을 찡하게 하는 겨자의 풍미와 이어지는 족발의 부드러운 육질. 느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원한 부산 족발의 맛에 순식간에 매료돼버렸다.  

겨자소스와 야채를 함께 비벼먹는 냉채족발. 사진 / 최혜진 기자
유부 속을 잡채로 꽉 채운 깡통골목 유부보따리. 사진 / 최혜진 기자

“한 10년 전부터는 냉채족발이 그냥 족발을 완전히 역전해 뿌렸지. 성질 급한 부산 사람들 입맛에 잘 맞은 게 아인가 싶기도 하고….” 
물론 부산 사람뿐만 아니라 서울내기 입맛에도 냉채족발은 매우 잘 맞는다. 특히 돼지국밥부터 냉채족발까지, 돼지고기를 감칠맛 나게 요리하는 비법은 다른 지역에서 따라가기 힘든 부산만의 노하우가 있는 모양이다. 

이 밖에도 시장통 먹을거리 중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 바로 깡통골목의 유부보따리다. 족발골목에서 국제시장 쪽으로 더 들어가면 건너편에 깡통골목이 나오는데, 깡통골목 할매집의 유부보따리는 그야말로 각종 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하는 부산의 명물이다. 유부 속을 당면과 당근, 양파, 시금치와 꽉 채워 초록 미나리로 짱짱하게 동여맸는데, 멸치 국물에 살살 풀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그 자리에서 먹고 포장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이 집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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