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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숨겨진 여행지] 해 뜨고 지는 서해 포구 5선
[숨겨진 여행지] 해 뜨고 지는 서해 포구 5선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0.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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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왜목마을에서 촬영한 일몰.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 = 당진] 서해안 당진에는 해넘이와 해돋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마을이 여럿 있다. 왜목마을이 유일한 마을인 양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한섬포구와 안섬포구, 성구미포구와 장고항이 더 있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비상식적인(?) 유일한 마을이 왜목마을이다. 특히 바위 틈새로 해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사진은 유명하다. 사실 작은 섬과 길쭉하게 솟아오른 바위, 그리고 육지의 작은 산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사진은 왜목마을이기에 촬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진에는 그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해돋이를 볼 수 있는 포구들이 더 있다.

수도권에서 당진으로 가는 길은 간단하다. 서해안고속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서해대교를 건너면 당진 땅이다. 한국의 토목건축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서해대교를 건너 3~4분 더 달리면 송악IC가 나타난다. 

한진포구 전경. 사진 / 박상대 기자

당진포구들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송악IC로 나가야 한다. 다시 38번 국도를 타고 석문방조제 방향으로 3분여를 달리면 한진포구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5분 거리에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는 필경사가 있고, 우회전하면 한진포구가 나온다. 한진포구를 지나 서산시와 이어지는 대호방조제까지 가는 길에 당진의 아름다운 포구마을들이 숨어 있다. 때마침 주꾸미와 간재미철을 맞아 앙증맞기까지 한 작은 포구들마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진포구
한진포구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정면에 해안선도로가 나타나고 바다 건너 평택산업단지가 보인다. 잔잔하고 짙푸른 바다물결이 찰랑대는 바다를 마주하면 가슴이 확 터지는 기분이다. 해안선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한진포구에 다다른다. 해안선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오른쪽으로 가까이 보이는 마을이 바로 한진포구다.

한진포구에 있는 작은 간이 어시장. 사진 / 박상대 기자

한진포구는 커다란 어선이 드나들고, 낚싯배들이 수십 척 낚시꾼들을 기다리는 커다란 포구가 아니다. 작고 아담해서 아름다운 포구다. 그런데 작은 포구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숙박업소와 어시장건물이 서 있다. 어시장에는 건어물시장과 소형 어판장, 횟집이 함께 있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다.

한진포구에는 작은 포구에 딱 어울리는 작은 간이 어시장이 있다. 주차장 한쪽에 있는 가건물에서 생선과 조개, 젓갈 등을 판다. 동행한 주부의 말이 도시보다는 값이 저렴한 편이란다. 해안가에 고만고만한 횟집들이 있고, 아주머니들이 문 앞에서 손님을 부른다. 바다에는 작은 어선들이 몸을 쉬고, 어선에선 갈매기들이 졸고 있다. 포구 쪽으로 가니 선상에서도 회를 판다. 
바다 건너 저 멀리 서해대교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당진군에서 자랑하는 대교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 사진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한 것이다. 아침이면 저 다리 아래서 해가 떠오른다고 한다. 

안섬포구 앞 등대. 사진 / 박상대 기자

안섬포구
한진포구에서 나와 우회전한 후 곧장 좌회전하면 송악IC에서 지나온 38번 국도와 만난다. 38번 국도에서 다시 석문방조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면 오른쪽으로 동부제철 공장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시원하게 뚫린 왕복 8차선 도로를 달려 동부제철을 지나치면 오른쪽으로 안섬포구 가는 길이 나온다.

송악면 고대리의 다른 이름인 안섬(內島)은 과거에는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그런데 근래에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여행객을 위한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성구미포구에 있는 소나무 숲에는 여행객을 위한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안섬마을은 오래전에 TV 드라마 <갯마을>의 촬영지였을 만큼 전통적인 풍광이 남아 있어 아름답다. 한 곳에서 수평선의 해돋이와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고 알려진데다 꽃 피는 봄 무렵부터 가족 여행이나 데이트 여행을 온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안섬포구 왼쪽, 등대 앞 선착장 가는 길에는 비닐하우스촌이 조성되어 있다. 벌써 10여 년 전에 조성되었다는데, 20여 개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저마다 수산물 요리를 판매하고 있다. 조개구이, 해물파전, 간재미회, 우럭회, 바지락칼국수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메뉴들이다. 비닐하우스 식당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칼국수를 먹는데 맛이 그만이다.

“여름밤에는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밤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지고, 저쪽 바다 건너 야경이 한데 어우러지면 동남아시아 어느 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함께 동행한 이가 자랑한다.

대호방조제 길, 사진 / 박상대 기자

성구미포구
안섬포구를 뒤로하고 다시 38번 국도를 따라 달리면 오른쪽으로 현대제철이 나타난다. 자동차로 10여 분을 달리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커다란 돔 형태의 건물이 서너 개 보인다. 이곳이 현대제철이 끝나는 지점이고, 차를 계속 달려가면 성구미포구가 나온다. 성구미포구는 수도권에서 간재미회와 주꾸미, 선상낚시로 유명한 곳이다. 때문에 주말이나 휴일에는 상당히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6년 전 처음 찾았을 때는 포구 앞 선상에서 회를 파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또 어시장에서 회를 떠서 포구 뒤쪽 소나무 숲에 앉아 먹던 기억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성구미포구로 들어서는 순간 포구 턱밑까지 접근해 있는 현대제철 건축물을 보고 잠시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포구 앞은 겨우 서너 척의 배가 지나다닐 정도의 공간만 남기고 모두 매립해버렸다. 포구에서 횟감과 조개류, 젓갈, 건어물을 파는 어판장은 여전하다. 그들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제철소를 얻는 대신 참으로 아름다운 포구 하나를 잃어버릴 뻔했다. 어쨌거나 아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이 간절한 목소리로 호객을 한다. 

낙지박속영양밥. 사진 / 박상대 기자

횟집 아주머니가 던져주는 생선 내장을 뜯어 먹으려고 새카맣게 덤벼드는 갈매기들을 구경하다 포구 뒤에 있는 야산으로 올랐다. 야산에는 여행객들이 쉴 만한 벤치가 여럿 놓여 있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개발과 보존이라는 케케묵은 논쟁을 떠올려본다. 경제적인 개발과 어촌마을의 보존! 남해안이나 서해의 섬들을 여행할 때마다 무분별한 개발과 사라져가는 어촌마을들에 대해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6년 전 봄날, 가족과 함께 찾은 성구미에서 간재미회를 맛있게 먹었던 일은 이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소나무 숲에서, 혹은 산언덕을 내려가 골목길로 돌아가면 나오는 안마을 해안가에서 해돋이를 보고 싶다. 이 바닷가에서 역시 해돋이를 감상하는 연인들을 보고 싶다. 

장고항
성구미포구를 돌아나와 우회전하면 석문방조제가 나오고, 직진하면 허브농원이 나온다. 비포장 산길을 따라 달리면 전봇대도 없는 넓은 평야 너머 언덕배기에 허브농원이 있다. 

굴이 푸짐한 굴밥. 사진 / 박상대 기자

성구미포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달리면 석문방조제다. 석문방조제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다 못해 짜릿하다. 왕복 2차선 도로이지만 직선차로로 10.6km를 달리는 맛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하행선을 달리면 왼쪽으로 방조제 덕분에 생긴 농업용수용 작은 호수와 드넓은 농경지, 호수 안에서 한가롭게 헤엄치며 노는 청둥오리와 갈매기 따위 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석문방조제를 끝지점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달리면 오른쪽에 장고항을 알리는 거대한 이정표가 있다. 장고항은 경사가 완만하고 폭이 넓고 길이가 2km 남짓한 모래사장이 있는 어촌마을이다. 참으로 한적하고 한가롭다. 이 마을에서는 4월 중순에 실치회축제가 열린다. 해양파출소 옆 공터와 모래사장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왜목마을에서 자연산 굴을 팔고 있는 주민.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실은 왜목마을보다 장고항에서 보는 일출이 더 멋있어요. 이쪽 바다가 더 넓고, 여기는 해수욕장도 좋고….”
장고항에서 만난 식당 주인은 장고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평화로운 어촌마을에서 식당 주인은 실치회가 없는 계절에는 굴밥이나 낙지박속영양밥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굴밥에는 짭조롬한 굴이, 박속영양밥에는 지난가을에 썰어서 냉동보관해둔 박속살이 들어 있다. 달래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으면 나도 모르는 순간 포만감에 젖어들게 된다.

왜목마을
서해안 해돋이의 대표마을인 왜목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왜가리 목처럼 가늘고 길게 뻗어나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 뜰 무렵 마을의 바닷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장고항 너머에서 둥근 해가 떠오른다.

주꾸미회. 사진 / 박상대 기자

어느 사진작가의 눈을 통해 알려진 감동스런 사진 한 장, 작은 섬과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촛대바위 위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이 담긴 사진, 그리고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 히트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왜목마을. 

하지만 일 년 내내 사진 속의 해돋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아침 해가 촛대바위에 걸리는 시기는 2월과 10월이다. 다른 때는 대부분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게 된다.

1984년 대호방조제 준공 이후 왜목마을의 서쪽 일대가 육지로 변하면서 왜가리목과 바다가 사라졌다. 때문에 왜목마을 뒤 석문산 정상에서 해넘이를 마주할 때 광활한 간척지와 서해바다, 그리고 노을빛 하늘이 빚어내는 파노라마에 젖어들게 된다.

왜목마을에서 촬영한 일출. 사진 / 박상대 기자

해변에는 목재로 수변 데크를 조성해놓았다. 아름다운 해변을 거닐며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라는 배려이겠지만 왠지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침범한 흉물스런 구조물처럼 보인다.

왜목마을 주민들은 물이 빠지면 인근 갯바위에서 자연산 굴을 채취한다. 평생 갯일을 하면서 살아온 마을 노인들은 지금도 굴을 따다 여행객들이 다니는 길목에 앉아 생굴과 굴젓을 판다. 씨알이 굵은 굴은 굴밥 재료로 팔고, 작은 것들은 현장에서 초고추장과 함께 판다. 

왜목마을에서 돌아 나와 우회전하면 대호방조제 가는 길이다. 자동차로 10여 분 달리면 숙박시설들이 많이 눈에 띈다. 소형 리조트, 숯가마찜질방, 펜션들이 여럿 눈에 띈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비상식적’인 관광상품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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