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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주말에 훌쩍 등산 여행] 선비와 꿩들의 보은 전설이 깃든 雉岳山 치악산
[주말에 훌쩍 등산 여행] 선비와 꿩들의 보은 전설이 깃든 雉岳山 치악산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9.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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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등산객으로 붐비는 치악산.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원주] 원주버스터미널이 남원주 쪽으로 옮긴 뒤 구룡사를 지나 치악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시내버스로 10여 분 더 가야 한다. 상원사 쪽으로 치악산에 오를 경우에는 택시 타는 시간이 10여 분 절약된다.

구룡사 앞 솔길을 걷는 재미
원주 사람들이 자랑하는 명산 치악산을 오르기 위해 영동고속국도를 달린다. 벌써 네댓 번째 찾는 걸음이다. 

치악산은 1200m가 넘는 높은 산이며 덩치도 크다.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차령산맥의 본 줄기를 이룬다. 치악산은 차령산맥 허리부분을 이루며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향로봉, 남대봉 등 고봉들이 솟구쳐 있고, 20km가 넘는 능선 종주길이 아름다워 많은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구룡사와 상원사 등 신라 때 창건한 천년고찰들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며, 영원산성과 해미산성 등 전란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명산이다.

영동고속도로 원주나들목으로 나가 좌회전하면 구룡사 가는 이정표가 여행객을 인도한다. 남동쪽으로 겹겹이 쌓인 산마루가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큰 덩치를 자랑하며 버티고 서 있는 산이 국립공원 치악산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세렴폭포에서 사다리병창으로 오르는 철계단. 사진 / 박상대 기자

잘 닦인 한적한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제법 깊고 너른 하천이 찻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흐른다. 오묘한 일이다. 산에는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는 하천을 만든다. 그리고 하천을 따라 사람들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터를 다진다. 산과 하천은 늘 함께하며 사람들을 기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산과 하천을 소유하려 든다. 사람들은 산과 하천에 빌붙어 숨을 쉬고, 곡식을 재배하고, 뼈를 키우며 삶을 일군다. 산을 찾을 때마다 늘 고마운 생각을 한다. 

구룡사 앞 주차장을 향해 차를 달리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치악산에 서서히 단풍이 들고 있다. 흔히들 단풍이 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알지만 사실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아래는 단풍이 들었는데 정상에는 아직도 싱싱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나무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천에 드리워진 산자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진작가나 화가도 저런 그림을 창조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답답하던 가슴이 확 뚫리는 것이 느껴진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 입구로 간다. 음식점은 벌써부터 손님 맞을 차비를 하고 있다. 돼지내장 삶는 냄새와 옥수수 익는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든다. 입구에서 나이 든 여인이 더덕을 손질하고 있다. “이거이 산더덕이고 이거가 밭더덕이래요.” 친절하고 정직한 말투다. 모든 더덕이 산더덕이라고 우기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아침부터 이런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남대봉 근처 능선에서 다정하게 식사 중인 부자. 사진 / 박상대 기자

구룡사 입구는 걸을 때마다 발걸음이 가볍다. 길 옆으로 계곡이 있고, 계곡에는 사계절 물이 흐른다. 길옆으로 잡목만 있는 다른 산들에 비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있으니 기분이 더욱 상쾌하다. 게다가 산으로 가는 길이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넓고 잘 닦여 있는 길인데 비포장도로이다. 흙으로 된 길을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걷는 것이다.

많은 산객들은 공감할 것이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걸을 때 느끼는 감촉과 피로감이 다르다는 것을. 당연히 흙길을 걸으면 발목과 무릎에 전해지는 충격이 약하고 촉감이 부드럽다. 때문에 3~4km를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그런데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여행객의 부상을 방지한답시고 국립공원이나 사찰 진입로에 아스콘이나 콘크리트로 포장을 한다. 산행을 마치고 하산길에 포장도로를 걷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평을 쏟아댄다.

치악산 입구에서 구룡사를 거쳐 세렴폭포에 이를 때까지 대부분 흙길이다. 산 아래서 정상인 비로봉까지 거리가 짧다는 장점도 있지만, 등산객들이 이 길을 이용해 치악산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비포장 길을 걷는 재미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치악산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 사진 / 박상대 기자

세렴폭포 앞 철계단과 사다리병창
치악산은 본디 동악 명산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렸다.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면 오르기가 험한 산이라고 한다. 치악산도 결코 만만치 않다. 구룡사를 지나 세렴폭포 아래쪽에서 사다리병창 능선길을 오르는 길이나 신림면 성남리 상원사 쪽으로 오를 때나 정상 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입에서 ‘악!’소리가 난다. 오죽했으면 치악산을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리는 산’이라고 부를까. 

우선 구룡사를 지나 세렴폭포에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산책길이다. 콧노래를 부르고,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걷는다. 그러나 사다리병창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접어드는 순간 입에서 슬슬 쌍소리가 나온다. 누가 등산로 초입부터 철계단을 만들어놓을 생각을 했을까? 철계단에 발을 올려놓으면서 이를 설치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등산객은 거의 없다. 자연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기계적으로, 같은 각도로, 같은 폭으로 걸음을 걷는 행위는 논산훈련소의 재식훈련이나 얼차려 훈련과 다를 바 없다. 

아니나 다를까, 계단을 오르던 중년 남자가 말한다. “아이쿠 초장에 쌩똥 빠지것네.”  
철계단을 올라 조금 더 가면 사다리병창 능선이다. 바위능선의 폭이 사다리 너비이고, 능선에 서 있으면 꼭 사다리 위에 서 있는 듯하다. 걸음도 사다리처럼 띄엄띄엄 발을 옮겨야 한다. 생김새가 사다리를 닮아서 ‘사다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병창이라고 했을까? 여럿이 함께 악소리를 낸다고 해서 덧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치악산 계곡은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사다리병창은 해발 1000m 지점에서 끝나는데 통과하는 데만 30~40분이 소요된다.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끼리 서로 양보하며 기다려주고 “조심하라” “수고한다”고 격려를 해준다.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씨가 곱고 착하다. 이를 두고 ‘원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씨가 착하다’고 하는가 하면, 한편으론 ‘마음씨가 고운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악’소리가 나는 험한 산이고, 치가 떨린다는 산에 왜 꿩 치(雉)자를 쓸까? 꿩처럼 생긴 바위나 봉우리 하나 없는 산에 이토록 예쁜 이름을 붙인 데는 사연이 있다. 오랜 세월 전해오는 ‘꿩의 보은’이라는 전설 때문이다.

꿩을 살린 선비와 선비를 살린 꿩들
경상도 사는 젊은 선비 하나가 무과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길에 숲속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디서 꿩이 다급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선비는 꿩의 울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소란이 난 곳을 보니 꿩이 큰 구렁이에게 잡혀 곧 구렁이의 먹이가 될 상황이었다. 선비는 꿩을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화살을 쏘아 구렁이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구렁이는 죽고 꿩은 살아서 도망쳤다. 그날 밤 산길을 걷던 선비는 산 속에서 외딴집을 발견해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외딴집에는 소복을 입은 여인이 혼자 있었는데 선비에게 음식을 내주면서 하룻밤 쉬어 가게 했다. 선비는 곤한 잠을 청했다. 한참 잠을 자던 선비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가 곤란해서 잠을 깼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꿩과 선비의 보은 전설이 깃들어 있는 치악산 상원사. 사진 / 박상대 기자

그런데 큰 구렁이가 선비의 몸을 휘감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렁이는 낮에 선비가 화살을 쏘아 죽인 구렁이의 암컷이었다. 암구렁이는 남편 구렁이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여인으로 변신해서 소복을 입고 선비를 유인했던 것이다. 

암구렁이는 소나무에 매달려 있는 종을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선비는 외딴집 뒤에 있는 나무의 종을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세 발 다 종을 맞추지 못했다. 죽었구나 하고 실의에 젖어 돌아서는데 갑자기 ‘댕 댕 댕’ 종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구렁이가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를 괴이하게 여겨 선비는 종이 걸려 있는 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머리가 깨진 꿩 세 마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이에 선비는 출세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절을 짓고 꿩들의 극락왕생을 빌었고, 지금의 상원사가 그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비로봉에서 향로봉을 거쳐 남대봉까지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은 가을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산길에는 도토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나뭇가지나 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도토리를 까 먹는 다람쥐들이 길동무를 해준다. 서리 맞은 꽃들은 고개를 떨구고, 억새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하늘에는 하얀 새털구름 몇 조각이 파란 바다에 낚싯배처럼 유유히 떠 있다. 살랑살랑 그늘이 늘어진 산길을 걷노라면 산 아래로 내려갈 마음이 사라진다. 마냥 이렇게 산길을 걸으며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사진 / 박상대 기자
천년사찰 구룡사 전경. 사진 / 박상대 기자

구룡사에서 사다리병창을 타고 비로봉과 향로봉, 남대봉을 넘어 상원사를 거쳐 성남리로 내려가는 길이 가장 일반적인 종주 구간이다. 그런데 이 길은 24km나 된다. 능선길은 결코 완만하거나 부드럽지 않다. 때문에 종주하는 데 10시간 이상이 걸린다. 가을 산행을 할 때는 해가 짧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전에 우리 기자 한 사람은 취재 욕심에 오후 늦은 시간에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혼자서 울면서 산을 내려온 일이 있다. 

치악산에서 가을 산행을 할 때는 종주를 욕심내기보다 중간에 ‘탈출’을 해도 된다. 구룡사에서 시작했다면 향로봉에서 국형사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성남리에서 상원사로 올라갔을 때도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 날이 어두워지면 향로봉에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산행 중에 욕심을 부리다간 그야말로 ‘개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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