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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강릉에서 태생에 대한 물음을 던진, 윤후명의 '강릉'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강릉에서 태생에 대한 물음을 던진, 윤후명의 '강릉'
  • 임요희 여행작가
  • 승인 2020.09.30 2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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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후명의 소설집 '강릉'은 총 열 편이 담겨있다. 사진은 심곡항의 모습.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강릉] 작가 윤후명에게는 일생에 두 개의 주제가 있다. 하나는 ‘고향’이고, 하나는 ‘쓴다는 것’이다. 둘은 연결되어 있다. 강릉은 윤후명의 고향이면서 소설적 영감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다.

“강릉에 갈 때면 노래가 떠오르고 남쪽의 바닷가에 새로 이름지어 놓은 길인 헌화로에 가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길 100’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길이었다. 인터넷으로 보면 바닷가에 바짝 붙어 굽어진 길 옆으로 정말 쉽게 오를 수 없을 바위 벼랑이 솟아 있었다.” 

소설집 《강릉》은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윤후명 소설전집’의 제1권이다. 《강릉》에 담긴 소설은 총 열 편. 전부 윤후명이 태어나고 자란 강릉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1946년생인 그에게 강릉이란 난리 통에 방공호로 몸을 피하던 기억, 아버지 없이 살아야 했던 기억이 아프게 서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강릉은 그리우면서도 선뜻 다가서지지 않는 곳이 됐다. 그럼에도 고향은 그의 삶과 소설에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 

태생에 대한 물음이 시작되는 곳
소설 <방파제를 향하여>는 태생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 차 있다. 소설 속 화자는 고향을 찾아 처녀의 머리가 얹힌 바위를 찾아 나선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몸뚱이는 호랑이밥이 되고 머리만 남아 있는 처녀의 전설’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이야기는 자연스레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와 겹쳐진다. 

“만주벌판에서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전쟁 때 총을 맞고 돌아간다. “그리하여 아무도 없는 보리밭, 감자밭, 옥수수밭 사이에 동아줄을 타고 내려온 내가 있을 뿐이었다.” 

이 세상에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 없이 천애에 둘 뿐이었던 가족, 소년은 동아줄을 타고 내려와 어머니에게 꽃 한 송이를 꺾어 바친다. 바다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몸속으로 동아줄을 타고 내려온 소년. 소년이 태어난 곳은 임당동 ‘비밀의 집’이다.  

비밀의 집이 있던 곳, 임당동  
“내가 태어나서 여덟 살에 떠나올 때까지 살았던 그 집. 그 무렵에는 강릉이 읍에 지나지 않았기에 ‘읍사무소’는 오늘날의 시청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 임당동은 가장 중심가였다. 일본식 적산가옥이었으나, 마당에 파놓은 방공호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집에 이십 대 초반의 어여쁜 어머니가 있었다.”

임당동에 있는 강릉대도호부관아. 사진 / 조용식 기자
강릉대도호부관아 뒤편에 강릉 임영관 삼문이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임당동 사거리의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강릉 제1호 근대문화유산인 임당동 성당. 사진 / 조용식 기자
강릉 중앙시장의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저자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비밀의 집’이라 칭한다. 태생의 비밀이 묻혀 있는 곳, 유년의 추억이 은밀하게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살던 ‘비밀의 집’은 오래전에 헐려서 넓은 길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집 뒤쪽 중앙시장과 남대천으로 향하는 골목길에는 옛날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강릉은 늘 많은 여행자를 불러 모은다.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서울에서 2시간대로 주파할 수 있게 되기도 했지만 동해를 끼고 자리 잡은 주문진항, 경포대, 안목커피거리, 정동진은 어느덧 전국구 명소가 되었다.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으로 대표되는 산악명소에 시내 관광의 묘미까지 강릉은 도시 전체가 명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저자의 고향 ‘임당동’은 대관령 기슭에서 시작된 맑은 물이 굽이굽이 남대천으로 흘러드는 구도심지역으로 숱한 문화재와 국보를 간직하고 있다.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강릉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 임당동. 이곳 최대의 볼거리는 강릉 제1호 근대문화유산이자 국가등록문화재인 ‘임당동 성당’이라고 할 수 있다. 임당동 성당은 약간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1955년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뾰족한 종탑과 지붕 장식, 첨두형 아치 창호, 부축벽을 이용한 입면 구성, 조광호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1950년대 성당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당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강릉 임영관지다.

이곳 칠사당과 객사문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신자들이 처형된 장소다. 강릉객사문의 정식 이름은 강릉 임영관 삼문. 단층의 맞배지붕이 돋보이는 이 아름다운 팔각문은 국보 51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건축 기법 상 조선 초기 것으로 추정 중이다. 

방파제란 무엇인가? 등대와 교각은?
저자에게 있어 도시가 몸의 고향이라면 마음의 고향은 바다일 것이다. 강릉 해변에는 수많은 방파제가 있고 등대가 있고 교각이 있다. 저자에게 있어 방파제란 단순히 파도를 막아주는 둑이 아니다.

심곡항의 방파제와 등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소형어선이 묶여 있는 심곡항의 모습.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방파제가) 내게는 바다로 나아가는 길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어디쯤 나가다가 멈추는 제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 멀리 어디까지나 뻗어 있는 길이었다. 길이 있는 한 나는 어디론가 갈 수 있었다. 어디 멀리 가서 나만의 세계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게는 또 다른 동아줄이었다.” 
  
등대 역시 저자에게는 단순히 어두운 바닷길에 뱃길을 알려주는 신호 체계가 아니다. 저자는 방파제에 서 있는 빨간 등대가 우체통이라고 말한다. 어느 미지의 세계로 보내는 엽서를 넣으려고 사람들은 바다를, 방파제를, 등대를 찾는다.

바다에는 물이 흘러드는 천이 있고, 천을 가로질러 교각이 놓여 있다. 말하자면 교각은 방파제의 또 다른 모습이다. 교각은 길을 만들어 낸다. 교각 위에는 언제나 외로움을 반추하는 남자와 여자가 서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뒷모습만 허락한 채 말 없이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왜 여기 와 있지요?” <눈 속의 시인학교>에서 저자는 설화와 관련해 자신의 문학적 지향에 대해 토로한다. 화자는 30대에 만나 백석의 시처럼 오막살이 집 한 채를 얻어 살고 싶었던 여인을 30년 만에 해후하면서 호랑이와 소녀 설화를 떠올린다.
  
“소녀는 오래전에 호랑이에게 물려간 몸이었다. 그리고 이제 몸뚱어리도 없이 머리통만 남아 있다. 나는 소녀의 머리통에 팔을 둘러 받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마지막 남아 있는 고향길이다. 그게 고향으로 가는 뜻이었다. 아주 옛날 어느 저녁답에 소녀는 뒤란에서 호랑이에게 물려가서 머리통만 바위 위에 남겨져 있더란 그 소녀였다.” 

대관령에서 내려오는 호랑잇길은 저자의 아버지가 묻혀 있는 성산을 지나고 외할아버지가 일했다는 옥계탄광에서 묵호 바닷가로 향한다. 이 길은 헌화로라는 새 이름이 붙은 바닷가 벼랑길로 이어진다. 헌화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옛 설화 ‘헌화가’에서 따온 이름이다. 

“신라 시대에 벼슬을 살러 오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이 길에 이르러, 벼랑 위에 핀 꽃을 꺾어다줄 사람 없느냐고 돌아본다. 그때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자기가 꺾어 오겠다며 노래하는데 그 노래가 <헌화가>였다.”

길이 춤춘다, 헌화로 
헌화로는 정동진에서 남쪽 방면으로 심곡항을 거쳐 옥계면 금진해변에 이어지는 2km의 해안도로를 일컫는 이름이다. 헌화로는 국내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로 통한다. 파도가 센 날에는 차체에 바닷물이 튀기도 한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헌화로.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헌화로에 바쳐진 꽃.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은 코로나19로 인해 개장 시기가 유동적이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바다부채길의 모습.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해안 단구를 따라 도로를 형성하다보니 길 자체가 파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는 형상이다. 바다로 눈을 돌리면 수평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하다가 문득문득 기암괴석이 나타나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더한다. 

헌화로의 중간 지점인 심곡항은 소형 어선이 즐비하게 묶여 있는 자그마한 항구로 윤후명 작가가 말하는 빨간 등대와 방파제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심곡항은 강릉이 자랑하는 해안산책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의 출발점이다. 오랫동안 군인들의 경계근무 정찰로로 이용되던 것을 2017년 시민에게 개방했다.   

‘바다부채길’은 탐방로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단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2.86㎞ 탐방로는 2300만 년 전 발생했던 동해안의 지각변동을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다. 

바다부채길 북쪽에는 파도가 일일이 쓰다듬어 둥글게 다듬어 놓은 몽돌 해변이 자리 잡고 있어 바다가 부르는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바다부채길은 4월부터 9월까지 오전 9시에 개장해 오후 5시 30분까지 개방한다. 성인 기준 3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코로나19로 개방시간이 유동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바다부채길 방문을 할 때에는 홈페이지에서 개방 시기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서퍼들의 낙원 ‘금진해변’
심곡항에서 금진해변으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돌과 돌이 이어지는 마른 골짜기 합궁골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 부부가 이곳에서 지성으로 기도하면 자식을 갖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지만 현재 안전을 위해 출입을 통제 중이다.  

서핑 명소의 금곡해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금진해변 부근의 포장마차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여행자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포장마차 '항구마차'의 별미인 칼국수.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헌화로의 끝 지점인 금진해변은 알아주는 서핑 명소로, 파도를 타기 위한 청춘남녀의 발길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부근에 자리 잡은 해변 포장마차 ‘항구마차’는 대게(바지락) 칼국수(6000원), 가자미회무침(小 20,000)을 대표메뉴로 갖고 있다. 외형은 허름해도 일년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는 맛집이다.  

무더위가 예상되는 이번 주말, 나홀로 차를 몰고 헌화로를 달려보면 어떨까. 윤후명 작가 식으로 말하면 외로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니까.

“웬일인지 나는 소녀에게서 내 외로움을 발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외로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라는 게 그때의 깨달음이었다. 사람의 실루엣은 기쁨이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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