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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옛 지도 따라 옛길 걷기 ②] 경북 김천 인현왕후길 ‘악녀’에 가려진 비운의 왕후를 마주하는 길
[옛 지도 따라 옛길 걷기 ②] 경북 김천 인현왕후길 ‘악녀’에 가려진 비운의 왕후를 마주하는 길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0.10.29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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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수도산 자락 인현왕후길
약 8km 산길 트레킹, 2시간 남짓 소요
용추폭포와 청암사 등 볼거리 있어
수도산 자락에 있는 인현왕후길은 숲이 좋아 사계절 찾기 좋다.
수도산 자락에 있는 인현왕후길은 숲이 좋아 사계절 찾기 좋다.

[여행스케치=김천] 인현왕후길은 조선 19대 왕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가 폐위된 기간 동안 청암사라는 사찰에 머물렀던 역사 기록에 따라 만든 옛길이다. 트레킹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풍성한 숲과 계곡을 지녀 사계절 내내 찾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인현왕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주로 왕을 위주로 서술된 조선왕조의 기록 속에서도 장희빈(본명 장옥정)과 인현왕후는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이름이다. 조선 희대의 스캔들, 역사의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를 듣는 두 사람과 관련해 1960년대부터 사극 드라마가 제작되어왔지만, 대부분 장희빈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인현왕후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고 살았는지 모른다.

인현왕후길은 수도리 버스 종점(수도리 공영주차장)에서 마을 안을 오르며 시작된다.
인현왕후길은 수도리 버스 종점(수도리 공영주차장)에서 마을 안을 오르며 시작된다.
밝게 웃으며 걷기꾼을 반겨주는 인현왕후의 모습.
밝게 웃으며 걷기꾼을 반겨주는 인현왕후의 모습.

 

지금도 깊숙한 산골에 놓인 적막한 길
인현왕후길은 경북 김천의 서쪽 끄트머리, 경남 거창과 경계를 이루며 서있는 수도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산중에는 오래된 사찰이 두 곳 있으니 청암사와 그에 딸린 암자인 수도암이다. 청암사에 기거했던 인현왕후에게 바치는 길은 수도암 아래 마을인 수도리에서 시작한다.

버스 종점 수도리 공영주차장에는 밝게 웃으며 만세를 외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현왕후의 모습이 길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하늘 아래 첫동네 수도리 인현왕후길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 지금도 그런 수식어를 붙일 만큼 첩첩산중에 위치한 곳이니 300여 년 전에 유배되듯 이곳에서 살았던 인현왕후의 밝은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어 마을을 통과하며 인현왕후길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100m 마다 인현왕후의 모습과 문구가 이어진다. ‘청명한 바람이 나를 반기니 기분이 상쾌하구나’, ‘수려한 산천을 보니 화폭에 담아 그리운 전하께 전하고 싶구나등 역사 기록에 근거한 문구는 아닌듯한 말풍선들이다. 마을 내에서 마주하는 안내판들은 길을 걷기 위해 찾아온 사람을 맞이하기 위한 안내 정도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안내판의 약속대로 500m를 오르면 수도암으로 향하는 도로 옆으로 산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인현왕후길의 본격적 시작인데, 수도산을 대표하는 고찰 수도암이 궁금하면 길을 걷기에 앞서 먼저 다녀와도 좋겠다.

Info 수도리 공영주차장
주소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411

인현왕후길을 걸으며 만나는 총 5개의 스토리보드를 읽으며 인현왕후에 대해 알 수 있다.
인현왕후길을 걸으며 만나는 총 5개의 스토리보드를 읽으며 인현왕후에 대해 알 수 있다.
인현왕후길 스토리 구간 말미에 있는 포토존.
인현왕후길 스토리 구간 말미에 있는 포토존.

숲길의 자연 즐기며 인현왕후의 삶을 읽다
8.1km에 걸쳐 조성해놓은 인현왕후길 중 초반 산길 약 3.9km에는 스토리존 구간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길의 약 절반을 걷는 동안 인현왕후의 삶을 알 수 있는 5개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니, 편안하게 자연 풍경을 즐기면서 인현왕후의 삶을 알아 가면 된다.

길에서 만나는 인현왕후의 이야기는 숙종과 가례식을 올리던 역사로 시작된다. 1681년 봄, 인현왕후는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대비의 주도 아래 왕비로 책봉된다. 숙종의 첫 정비였던 인경왕후가 천연두로 20살에 요절한 다음해의 일이다. 인현왕후는 두 번째 왕비로 가례식을 올렸지만, 당시 숙종은 장옥정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시기였기에 인현왕후에게 큰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인 이유인지 인현왕후는 퇴궁 당한 장옥정의 재입궁을 거듭 간청했고, 결국 명성대비가 세상을 떠난 후 장옥정을 궁궐로 불러들이게 된다.

그 후 인현왕후에게는 악몽이 시작된다. 1688년 장옥정이 왕자를 출산한 것이다. 대를 이을 왕자를 낳은 옥정은 한낱 나인 출신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고, 반면 자식을 낳지 못한 인현왕후는 중전임에도 불안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숙종이 왕자 윤(훗날 경종)을 원자로 책봉하고 세자의 어머니인 장옥정을 희빈으로 책봉하면서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당시 정세는 남인과 서인이 대치관계에 있었는데, 장희빈을 지지하는 남인에 대항해 인현왕후를 지키려는 서인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숙종이 서인들을 대거 숙청하며 인현왕후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결국 인현왕후는 왕비에서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되고, 어머니의 집안인 외가와 인연이 닿은 수도산 청암사로 오게 된다. 청암사에서도 인현왕후를 예우하고 모시기 위해 새로 한옥을 지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 극락전이다. 여느 사찰 건물과 달리 사대부가의 집처럼 단청이 없는 건물로 지어졌다. 그리고 경내에 42수관세음보살을 모신 보광전을 지어 인현왕후의 복위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인현왕후의 외가가 김천과 같은 생활권인 상주였기에 외가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현왕후는 외가에서 보내준 시녀와 함께 수도암과 청암사를 거닐며 기도와 시문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 해도 폐위된 왕후의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에서 폐출된 지 여러 해가 지나자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게 느껴진 인현왕후는 자결할 생각으로 독약을 앞에 놓게 된다. 그리고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괴로우시더라도 3일만 더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꿈에서 깨어난 인현왕후는 마음을 고쳐 3일을 더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숙종으로부터 인현왕후를 서궁(덕수궁)으로 이전해도 좋다는 명이 내려왔다. 이후 서궁으로 입거한 인현왕후를 왕비로 복위시키기까지 했다. 조선조 이래 폐위된 왕비가 복위된 첫 번째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장희빈은 후궁으로 강등되며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운명은 다시금 바뀌게 되었다. 인현왕후는 복위 후 도움이 되었던 청암사에 큰 스님 기도의 영험으로 복권되었다는 서찰과 함께 수도산 일대를 보호림을 지정하고 전답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인현왕후길 스토리 구간에서 5개의 안내판을 통해 알려주는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이곳에서 스토리 구간이 끝나며 갈림길이 나오지만, 왼쪽 청암사로 가는 길은 뭇사람들의 방문을 꺼려서인지 진입금지푯말을 세워놓아 인현왕후길 이정표를 따라 하산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

수도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무흘구곡을 만나 걷는 구간도 있다.
수도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무흘구곡을 만나 걷는 구간도 있다.
무흘구곡 중 제9경인 용추폭포의 모습.
무흘구곡 중 제9경인 용추폭포의 모습.

인현왕후의 뒷이야기, 그리고 인현왕후길의 말미
인현왕후길에서 알려주는 이야기는 복위되어 궁궐로 돌아가는 역사에서 끝나지만, 이후 인현왕후의 삶이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었다. 5년 만에 되돌아간 궁궐. 그러나 폐위 기간 동안 이미 인현왕후는 몸에 병을 얻은 상태였다. 후대에 기록으로 보기에는 조선조에서 처음으로 복위가 된 왕비라 칭하지만, 당시 인현왕후로서는 폐위되었다는 현실 자체가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절망의 벽이었을 터. 그런 마음고생이 스트레스가 되어 인현왕후의 몸에 병을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인현왕후는 궁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4개월 동안 몸져눕게 되고 결국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왕후로서 가례식을 올릴 때만 해도 꽃길이 열릴 것 같았으나, 폐위된 20대 후반부터는 불안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세상을 뜬 것이다.

하산로를 따라 숲을 빠져나오면 수도리와 연결되는 도로와 만난다. 그곳에서 눈앞에 용추교를 건너면 인현왕후길의 나머지가 이어진다.

 

용추폭포 인근에 있는 인현왕후길 내 유일한 공중화장실.
용추폭포 인근에 있는 인현왕후길 내 유일한 공중화장실.
인근의 수도암과 청암사도 들를 만하다. 사진은 인현왕후가 머물렀다는 청암사 극락전 모습.
인근의 수도암과 청암사도 들를 만하다. 사진은 인현왕후가 머물렀다는 청암사 극락전 모습.

용추교 너머는 스토리존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숲길이 이어진다. 수도리에서부터 내려오는 옥동천이 길 옆 바로 아래에 흘러 세찬 물소리에 청량감이 느껴지는 길이다. 그리고 숲길 끄트머리에서는 용추폭포를 만난다. 용추폭포는 무흘구곡 중 9경으로 칭해지는 곳. 2단으로 폭포의 낙수소리에 세상만사가 잊힐 것 같은 절경을 지녔다. 당시 인현왕후가 청암사에 있을 때도 이 폭포는 세차게 흘렀을까? 그렇다면 잠시라도 근심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런 상황에 처한 입장에서는 이 폭포 소리마저 위안이 되지 못했을까? 단순히 용추폭포만을 보았다면 멋진 절경을 마주한 사실에 만족했을 테지만, 인현왕후길을 걷고 나면 괜히 그녀의 삶과 연관이 지어진다.

용추폭포를 감상하고 나면 출렁다리를 건너 다시 도로를 만난다. 나머지 구간은 도로 옆에 가지런히 정비해놓은 나무데크를 따라 수도리 공영주차장을 돌아가는 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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