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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섬 기행] 슬로시티 신안군 증도 느리고 불편해서 더 끌리는 섬
[섬 기행] 슬로시티 신안군 증도 느리고 불편해서 더 끌리는 섬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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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갯벌 체험 중인 관광객의 모습.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신안] 슬로시티 증도가 북적이고 있다. 지난 4월 증도에 연도교가 놓이면서 더 이상 증도는 섬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고즈넉함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증도는 여전히 아름답고 여유가 있다. 가는 길이 조금 빨라졌지만 한결같이 ‘슬로’를  고집하는 증도를 다녀왔다.

증도는 시간도 느릿느릿 쉬어가는 곳이다. 이른 아침 출발해 도착할 즈음엔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데도 바다엔 안개가 걷히지 않고 있다. 마치 이른 아침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아무리 안개가 끼고 날씨가 좋지 않아도 증도에 이르지 못할 일은 없어졌다. 지난 4월부터 증도와 사옥도를 잇는 증도대교가 개통한 덕분이다. 

그러고 보니 증도로 오기까지 무안을 지나 지도와 솔섬을 지났고, 사옥도를 지났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배를 탄 적이 없다. 이렇게 섬 사이를 자유롭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다녀도 되나 하는 미안함이 든다. 그래도 명색이 섬인데….

임시 개통한 증도대교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라 아직은 좀 번잡한 느낌이다. ‘만약 걸어서 다리를 지나다가 사고가 나면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눈에 띈다. 아직 완전한 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옥도와 증도를 잇는 증도대교. 현재 임시 개통 중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공터에 차를 대고 다리 위에 오른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지만 볼 것은 봐야겠다. 왼쪽 아래를 내려다보니 얼마 전까지 사옥도와 증도를 잇는 배가 다니던 지신개선착장이 보인다. 다리가 놓인 탓인지 유난히 한가해 보인다. 다리가 완공되고 정식으로 개통하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새로이 편리해지려면 무언가는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이치다. 

그 운명은 증도의 버지선착장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도로공사가 한창인 걸 보니 조만간 증도는 거제도나 강화도와 같이 ‘섬 아닌 섬’의 길을 걷게 될 게 분명해 보인다. 목포에서 증도까지 고속버스 노선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여느 육지로 가는 것처럼 편하게 증도를 찾게 될 것이다.

증도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태평염전이다. 요즘 질이 좋지 않은 소금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것이 신안의 소금이다. 물론 ‘나쁜 예’가 아닌 ‘좋은 예’ 쪽이다. 

신안의 천일염은 갯벌을 다진 토판에 바닷물을 끌어모아 최소 25일간 햇볕을 쫴 생산한다. ‘나쁜 예’에 속하는 질 낮은 소금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깨끗한 소금이다. 그중에서도 증도의 태평염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가장 많은 천일염을 생산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태평염전의 소금박물관 디오라마. 소금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한국전쟁이 끝나고 피난민들을 정착시킬 목적으로 물이 빠지면 건너다니던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를 막아 만들었다는데, 그 면적이 여의도의 두 배 정도라고 하니 감히 그 풍경을 한눈에 담으려 했던 계획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를 깨닫는다. 

안개가 가득한 날이라 간수 속에서 소금을 끌어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려볼까 하고 차를 돌리려는 찰나, 저 멀리서 힘차게 대파질을 하는 모습이 언뜻 보인다. 

태평염전에서는 소금을 모으는 체험을 해볼 수 있는데, 마침 서울에서 체험객들이 온 것이다. 고무장화를 신고 대파를 든 모습이 제법 폼이 난다. 대파를 바닥에 대고 이리저리 움직이니 금세 하얀 소금이 모인다. 마치 눈을 쓸어내는 듯한 모습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태평염전에서 대파질을 하는 체험객. 마치 눈을 쓸듯 대파를 힘차게 밀면 하얀 소금이 모아진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와~, 진짜 바닷물에서 소금이 나와요!” 
소금이 공장에서 나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대파질을 하면서 바다가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들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염전에 뚝뚝 떨어진다. 그러고 보면 태평염전에서 나는 소금은 바닷물뿐만이 아니라 염전을 일구는 사람들의 땀방울에서 나는 노력의 대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염부들은 한사코 소금을 ‘만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소금이 온다’ 또는 ‘살이 찐다’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바다에서 소금을 받는 사람들일 뿐, 소금은 만드는 것은 바다와 하늘이라 말한다. 쌀을 키우는 농부나, 고기를 잡는 어부나, 소금을 받는 염부나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은 매한가지다. 

증도에서는 건강도 친환경이다. 태평염전에서는 소금을 이용한 소금동굴힐링센터라는 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바닥과 천장을 모두 태평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으로 만들어 미세한 소금가루가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폐까지 들어가 노폐물을 없애는 효과가 있단다.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바르고 씻는 것까지 ‘웰빙’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증도갯벌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증도의 명물 짱뚱어다리. 사진 / 손수원 기자

신안이 위치한 서남해안은 캐나다 동부 해안과 미국 동부 조지아 해안, 아마존강 하구, 북해 연안과 함께 세계 5대 갯벌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짱뚱어다리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470m) 이 다리 위에 서면 갯벌 위 별천지를 보게 된다. 물이 빠지면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갯벌이 드러나는데, 그 위에는 미꾸라지의 사촌쯤 되는 짱뚱어가 천지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놈, 구멍을 파고 대가리를 푹 처박고 있는 놈, 유유히 펄스키를 타는 놈 등 수천, 수만 마리는 됨직한 짱뚱어들이 뛰논다.

요놈들만 살고 있다면 심심할 텐데, 손바닥만한 놈, 엄지손가락만한 놈 등 다양한 크기의 칠게와 농게 등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녀석들이 동시에 움직이면 마치 갯벌이 꿀렁대고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대자연이 움직이는 광경이다. 

섬 곳곳에서는 펄스키를 타고 갯벌로 나가 훑치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주민들이 짱뚱어를 잡는 것이다. 낚싯줄을 휘하고 내던지면 기다릴 것도 없이 짱뚱어 한 마리가 걸려 들어온다. 숙련된 솜씨 덕분일 수도 있지만 워낙 갯벌에 짱뚱어가 천지라 던지면 던지는 대로 걸려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못생긴 게 맛은 좋은’ 짱뚱어. 사진 / 손수원 기자

슬로시티 증도는 친환경 농산물로도 유명하다. 지난 5월부터는 매주 토·일요일과 공휴일에 짱뚱어다리 광장에서 친환경 녹색장터를 열고 있다. 사실 증도는 작년부터 섬 내의 모든 농산물을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또한 증도의 모든 가정에 친환경 세제를 보급해 일상생활에서도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증도에 흐르는 강은 여전히 맑으며 풀숲 곳곳에선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말로만 ‘슬로시티’, ‘친환경 섬’을 부르짖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증도는 ‘자전거 섬’, ‘깜깜한 밤 별 보는 섬’, ‘금연의 섬’ 등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돌아다니는 길 곳곳에 ‘증도는 담배가 없는 섬입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섬에 들어와서 이제껏 담배를 피우는 주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떨이는커녕 담배 냄새도 맡지 못했다. 단지 깨끗한 공기 덕분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게다. 

“우덜은 담배 끊었당게요. 첨에는 우에서 하도 머랑께 그랬는데, 지금은 우덜끼리 알아서 이참에 담배 끊어부자는 게 유행이 되불서 앵간하믄 안 피지라.”

사진 / 손수원 기자
짱뚱어는 훑치기 낚시로 잡는다. 줄을 던지기만 하면 걸려드니 한 마리 잡는 데 10초면 족하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식당에서 만난 한 어부는 점심 참에 반주 한잔을 곁들이면서도 증도는 명실상부한 금연 섬이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근디 다리가 나고 나서부텀 쬐끔 골치제. 사람들은 많이 오는디 여그서 담배를 푸면 안 된다는 걸 잘 모른게…. 관광 온 사람들헌티 머라고 헐 수도 엄꼬…. 그저 홍보가 많이 돼서 사람들이 알어서 하는 수밖에 없제.”

증도에서는 이미 담배를 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군에서 보상금을 주고 담배 판매를 하지 않도록 한 덕분이다. 하지만 다리가 놓이고 수시로 외지로 오갈 수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의지이다. 주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관광객들의 무질서는 여전히 골칫거리다. 

불법주차는 보통이고, 쓰레기를 여기저기 버리면서 슬로시티 증도도 중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래서 증도는 담배 없는 섬에 이어 오는 7월부터는 ‘차 없는 섬’도 만들어볼 예정이다. 다리 근처에 대규모 주차장을 만들어 차를 세우고 증도 안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한반도의 지형을 닮은 해송 숲.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자전거 섬’ 증도엔 곳곳에 빌려탈 수 있는 자전거가 마련돼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그 의미도 좋고,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인데, ‘느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불편함’을 외지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그마저도 여행의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할 터이다. 

현재도 증도엔 자전거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곳곳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고 다리가 놓였으니 얼마든지 차로 자전거를 싣고 와 탈 수 있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 소금박물관에서 송원대유물발굴해역까지 이르는 길은 보물섬 해안 드라이브 길이라 하여 증도의 속살을 두루두루 감상하며 달릴 수 있는 길이다. 여기에서 짱뚱어다리를 지나 엘도라도 리조트, 우전리 해송숲, 화도에 이르는 길은 증도를 자전거로 다니는 이들 사이에선 환상의 라이딩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증도는 앞으로 사람들로 더욱 북적일 것이다.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섬 곳곳도 생채기가 날지 모른다. 하지만 불편함을 무릅쓰고 찾은 섬이니 만큼, 그 불편함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 이들도 자연히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될 것이다. 왜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증도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느림의 아름다움도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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