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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Special 休캉스] 충남 서산 웅도 바다가 열리면 나만의 산책이 시작된다
[Special 休캉스] 충남 서산 웅도 바다가 열리면 나만의 산책이 시작된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7.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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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캠핑하기 좋은 웅도.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서산] 서해안의 작은 섬 웅도.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바쁜 일상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에 휴식이 절실한 순간, 바다가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길이 드러나면 나만의 한가로운 산책이 시작된다. 몸과 마음에 작은 쉼표 하나를 만드는 것도 피서의 방법, 근심ㆍ걱정은 육지에 맡겨두고 한적한 섬 길을 따라 걸어보자.

웅도는 그 자체로 훌륭한 트레킹 코스다. 굳이 차를 타고 들어가겠다면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지만 그보다는 온전히 맨몸으로 자분자분 걷는 편이 낫다. 그도 그럴 것이 웅도의 큰길이라곤 고작 두 갈래뿐이기 때문이다. 

섬으로 들어와 교회가 있는 삼거리에서 곧바로 걷다가 다시 돌아와 다른 길까지 마저 다 둘러보면 끝이다. 더 돌아다니고 싶어도 길이 없어 갈 곳이 없다. 해안선이 고작 5km에 불과하니 섬 안에 길을 모두 걸으며 전부 둘러봐도 채 7km를 걷지 못한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웅도를 크게 나눠 쓴다. 이 작은 섬 안에도 장골마을, 큰골마을, 큰마을, 동편마을 등 네 개 마을이 있다. 

섬에 들어서자 눈이 부시다. 바다에 속살을 다 내놓고 반짝이는 갯벌 덕분이다. 빛의 사금파리들이 얼마나 강렬한지 섬이 자체발광하고 있는 기분이다. 통통하게 살이 찌고 골이 진 웅도의 갯벌은 서해안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름다움이다. 옅은 안개 사이로 펼쳐지는 수평선 위에는 고파도와 조도 등의 작은 섬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동해안 못지않은 에메랄드빛 바다에 오랜만에 눈이 호사를 하는 느낌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갯벌에 깔린 자갈길. 사진 / 손수원 기자

웅도는 한때 ‘스타섬’이었다. 소달구지를 타고 일터인 갯벌로 나가는 어부들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장관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런 관심은 또 변덕스레 식는 법. 여기에 2년 전 서해안에 기름이 둥둥 떴을 때 웅도는 그 중심에 있었다. 주민들의 일상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재앙이 사라진 이후 주민들의 일터는 점점 더 먼 갯벌로 향하게 되었다. 

더불어 소달구지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외지 사람들이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고달픈 일상을 보내는 주민들에게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밀어 혀를 끌끌 차게 했다. 무례를 범하는 것도 모자라 갯벌을 마구 파헤쳤다. 

결국 갯벌에 자갈길이 깔렸다. 이제는 소달구지가 없더라도 걸어서, 작은 트럭을 타고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달구지를 끌던 소들은 대부분 팔아치웠다. 사람의 실수 때문에, 사람의 욕심 때문에 그렇게 웅도는 스스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을 알고 나니 이렇게 섬 풍경을 둘러보는 것이 미안해진다. 이렇게 한가로이 나만의 휴식을 즐기러 오는 것조차 사사로운 욕심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수평선 너머 빛의 사금파리들이 내려앉은 갯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온갖 사념은 잊혀지고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진다. 그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한적한 어촌 풍경이 손에 잡힐듯 프레임에 들어온다. 소달구지의 모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여전히 웅도는 가슴에 새겨지는 풍광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갯벌에서 조개를 줍는 주민. 웅도에서는 굴과 바지락이 많이 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어디선가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방금 전까지 운동장에서 한껏 뛰어놀았는지 그네가 삐걱대며 홀로 흔들리고 있고 자전거며 축구공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학교 입구엔 여섯 명의 아이들과 세 명의 선생님이 “웅도에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고 적은 액자를 붙여놓았다. 

뜻하지 않은 환영에 웃음이 난다. 요즘 도시의 학교에는 외부인이 멋대로 드나들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고, 그로 인해 학교 문을 꽁꽁 닫아놓는 추세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나 어릴 적 다니던 학교도 그랬다. 학교는 온 동네 주민의 쉼터이자 광장이었다. 마을 잔치의 중심엔 항상 학교가 있었고, 학교가 있어 마을 공동체도 끈끈한 정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 풍경이 이곳엔 아직 남아 있다.  

학교에서 나와 큰 당산나무를 지나 길을 걸으면 이내 바다가 앞을 가로막는다. 여기저기에서 눈을 사로잡는 풍경들 덕분에 몇 걸음 가지 않은 기분이 드는데도, 벌써 섬의 한쪽 끝을 다 걸어버린 것이다. 

곳곳에 조개껍데기를 그물처럼 엮어놓은 것은 굴을 양식하기 위한 도구다. 어떤 것은 가리비 껍데기를, 어떤 것은 소라 껍데기를 엮어놓았다. 이것들을 바다에 뿌려놓으면 굴들이 집을 만들고 산다. 웅도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책임지는 귀중한 보물들이다. 하지만 여름에는 바지락이나 굴이 좋지 않으니 이즈음에는 갯벌에 나가기보다는 땅 위에서 밭을 일군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웅도에서 놓치면 후회할 일몰의 장관. 빨간 노을이 갯벌에 반사되는 풍경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이즈음 잡히는 밀국낙지를 넣고 끓이는 박속밀국낙지탕. 웅도에서 조금 밑으로 내려간 왕산포구가 유명하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다른 길로 오르면 제법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황소를 보며 웅도의 옛 모습을 상상해본다. 집집마다 물이 빠져나갈 즈음이면 달구지에 소를 묶고 바다로 나갈 준비를 했을 것이고, 그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같았을 것이다. 만약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하얀 종이에 쓱싹쓱싹 풍경을 그려내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니 연방 카메라만 들이댈 뿐이다.

오르막길의 끝엔 웅도의 백미가 숨겨져 있다. 소달구지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던 바로 그 갯벌이다. 절벽에 비스듬히 자란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퍼질러 앉는다. 짭조름한 갯내음이 코끝을 간질이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등줄기의 땀을 식혀주니 절로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돗자리 하나 펼쳐놓고 책 한 권 읽으며 잠이 들면 그만일 듯싶다. 

이곳에서는 놓치면 후회할 장관이 있는데, 갯벌을 빨갛게 물들이는 웅도의 일몰이 바로 그것이다. 서서히 수평선에 내려앉으며 갯벌을 물들이는 해는 그 어느 곳보다 붉다. 이 일몰을 배경으로 소달구지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예전 풍경을 그려본다. 

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주위가 어두컴컴해지면 이제부터는 달과 풀벌레들이 주인공이다. 삼거리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작은 숲으로 들어가면 온갖 작은 생물들이 대화를 나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들만의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서 있는 힘껏 대화를 나눈다.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여름날의 대화를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속 쉼터를 하나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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