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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①] 10년 만에 열린 길, 보물섬을 하나로 잇다, 바래오시다길과 비자림해풍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①] 10년 만에 열린 길, 보물섬을 하나로 잇다, 바래오시다길과 비자림해풍길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12.28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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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2010년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남해바래길이 개통 10주년을 맞아 지난 11월, 총 19개 코스(본선 16개+지선 3개)로 시범 개통됐다. 기존 101.3km에서 두 배 이상 거리를 늘린 ‘남해바래길2.0’은 군내 10개 읍•면에 골고루 분포돼 도보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남해군 지형상 완벽한 동그라미는 아니지만 10년 만에 완성된 남해바래길2.0은 띄엄띄엄 일부만 열렸던 이전과는 달리 남해의 외곽을 한 바퀴 이어 걷는 종주형으로 완성됐다. 평촌항에서 가천다랭이마을로 이어진 옛 1코스는 남해버스터미널에서 이동면까지 새롭게 열린 ‘바래오시다길’에 1코스 자리를 내어주고 11코스로 밀려나는 등 거리가 늘면서 기존 노선 조정은 물론 로고와 안내체계, 운영시스템까지 업그레이드 되었다. 본선 16개 코스 중 절반이 넘는 11개 코스는 ‘남파랑길’ 36~46코스와 길이 겹친다.

청년창업거리의 예쁜 담벼락. 카페와 식당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청년창업거리의 예쁜 담벼락. 카페와 식당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청년창업거리의 예쁜 담벼락. 카페와 식당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청년창업거리의 예쁜 담벼락. 카페와 식당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2.0 앱을 깔아주세요
남해버스터미널 앞에 바래길 출발지를 알리는 커다란 갈색 안내판이 서있다. 기존 서면 노구마을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와 바꾼 것이라는데 옛것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끔하게 단장됐다. 안내판 왼쪽 상단엔 “엄마의 길 231km”라고 적혔다. ‘바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물때에 맞춰 바다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던 남해 여인들의 고단한 삶을 이르는 말이다.

 ‘오시다’는 “(어서)오세요”의 남해 말로 이곳이 남해바래길의 첫 관문임을 알리는 이름이다. 1코스 북쪽엔 정규 코스 마지막인 16코스(대국산성길)이, 남쪽엔 순서대로 2코스(비자림해풍길)이 있다. 이번엔 1코스(12.2km)와 2코스(9.3km)를 한 번에 이어 걷기로 한다. 합하면 20km가 넘지만 난이도 하의 평지 위주여서 크게 힘들지 않다.

터미널을 벗어난 길은 철쭉으로 유명한 망운산(786m)을 저 멀리 둔 채 전통시장 안으로 이어진다. 제철을 맞은 샛노란 유자와 싱싱한 굴, 팔딱대는 바다의 생명체들이 뭍에서 온 이들의 걸음을 맛깔나게 어지럽혔다. 남해의 특산품으로 만들었다는 찐빵에도 마음이 간다. 눈동자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시장 끝까지 나왔는데, 아무리 봐도 바래길 화살표와 리본이 없다. 두 개의 표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증거다. 시장 안으로 돌아간다. 바래길은 (입구 기준) 왼쪽의 수산물코너로 연결됐다.

“아, 저기 있다!” 남해읍을 관통한 1코스 초반은 걷기여행보단 재미있는 미로 찾기 게임 같다. 길은 골목과 골목 사이로 이어졌고, 큰길과 큰길 사이를 건너 남쪽으로 뻗어 나갔다. 옆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럴 땐 남해바래길 앱을 깔아두면 도움이 된다. ‘따라가기’ 메뉴를 사용하면 기존 길에서 30m 이상 벗어날 경우 경고음이 들린다. 앱 인증 완주자에 한해 코스별 배지도 준다. 1코스엔 버스터미널 건물, 2코스 배지엔 비자나무 그림이 각각 그려져 있다.

습지생태탐방로를 벗어나면 바다와 만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습지생태탐방로를 벗어나면 바다와 만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제1코스 바래오시다길
그늘로 어두워진 골목(망운로1-1)과 오래 된 건물들 사이를 지나면 갑자기 알록달록 거리가 밝아진다. “오데 가니?” “나, 매력 있지?” “할멈, 이쁜 것만 보고 사시게” 등의 글귀가 적힌 낮은 담벼락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 핸드메이드 소품과 디저트카페, 남해의 특산물로 요리한 퓨전레스토랑 등이 밀집된 거리다. 1코스는 남해터미널을 출발해 전통시장(어시장)~청년창업거리~유배문학관~습지생태탐방로~쇠섬입구(해안로)~이동면행정복지센터로 이어지는데, 여기가 청년창업거리다.

남해유배문학관 앞에도 예쁜 카페가 두어 개 있다. 마음 같아선 걸음을 멈추고 잠시 들어가 쉬고 싶지만 거리가 길면 그럴 여유가 없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문학관으로 향한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유배문학관은 향토역사실,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또 서포 김만중을 비롯한 6명의 대표 유배객을 소개한 남해유배문학실로 구성됐다. 왠지 건물 안이 어둡다 했더니 하필 월요일이라 문이 닫혔다. 문이 열렸다 해도 시간이 없으면 지나칠 곳이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한 번에 한 구간씩 쉬엄쉬엄 걷는 게 제일 좋다.

길은 김만중 동상이 세워진 문학관 앞에서 뒤쪽 거리로 이어졌다. 올리다 버려진 회색의 연립주택 건물이 을씨년스럽다. 유자나무를 가로등처럼 심은 낮은 집에선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개에겐 낯선 방문객의 체취가 반갑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 마을을 지나면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다. 신호등 불이 초록으로 바뀔 때를 기다렸다 도로를 건넌다. 갈대가 빼곡한 습지생태탐방로로 들어서면 세상은 한결 조용해진다.

아니, 소리는 여전히 들렸지만 도로에서 듣던 소리와는 달랐다. 찬바람 속에서 서로의 깃을 부닥치며 흔들리는 갈대와 매립지 호수 위에 몸을 띄운 철새들의 지저귐. 새들은 가끔씩 전조 증상도 없이 날아올랐다. 푸드득, 수십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비상할 땐 깜짝 놀랄 만큼 소리가 크다. 이 습지를 벗어나면 바다다.

노량대교나 삼천포대교로 뭍과 이어졌지만 남해는 엄연한 섬이다. 조선의 많은 선비들이 한양을 떠나 멀고 먼 남해로 유배를 오곤 했다. 다행히 한양으로 돌아간 이도 있지만 결국 섬 안에서 생을 마감한 이도 있었다. 그때의 선비들은 이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겨울바다는 파도도 없이 잔잔하다. 짭조름한 해풍과 남해의 풍부한 햇살을 받고 자란 유자와 시금치가 식욕을 자극하는 길이기도 하다. 남해의 겨울은 황량하지 않다. 미리 핀 봄꽃과 미처 떠나지 못한 가을꽃, 사계절 초록으로 색칠 된 채소들까지, 걷는 재미가 쏠쏠한 길이다.

대학나무로 불렸던 유자. 스치기만 해도 진한 향이 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대학나무로 불렸던 유자. 스치기만 해도 진한 향이 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의 해풍과 풍부한 햇살을 받고 자란 시금치.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의 해풍과 풍부한 햇살을 받고 자란 시금치.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제2코스 비자림해풍길
이동면행정복지센터는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출발점이다. 사무소에 들러 바래길 지도도 받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터미널 앞에서 봤던 종합안내판이 보이지 않아 잠시 헷갈렸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시범개통이고 2021년 11월엔 정식으로 길문을 연다니, 다시 늦가을이 되기 전까진 추가 시설이 구비될 것 같다. 면소재지인 만큼 식당과 카페도 있지만 시골의 여느 면보다도 작아 보인다.

도로를 따라 중심지를 벗어나다 “아, 여기야, 여기!” 앞서 걷는 일행을 불러 세운다. 앱을 깔기 전이라 역시 또 화살표를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귤색 조립식건물 옆으로 방향을 틀면 두 구간을 통틀어 유일한 숲이 나온다. 겨울 찬바람에도 생생한 비자나무 숲이다.

아직 비자림 속으로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차가운 공기에선 새콤한 냄새가 난다. 솔향 같기도 하고 내내 보았던 유자향 같기도 하다. 실제 비자나무는 향이 좋고 탄력이 있어 귀하게 쓰이는 목재다. 주로 바둑판이나 배의 중심 재료로 사용된단다. 쉬운 대신 포장도로가 대부분이어서 발바닥이 아프던 참이었다. 간만에 만난 오르막에 잠시 헐떡대던 숨은 계절을 비껴난 비자림 안에서 간신히 진정을 한다.

나뭇잎 사이사이에 숨은 새들이 연신 지저귀고 초겨울 볕은 잘게 벌어진 잎 사이로 따스하게 쏟아졌다. 비자나무 숲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신다. 차를 타고 올 수도 있지만 걷다가 만난 풍경은 몇 곱절 더 어여쁘다.

1코스와 2코스는 합쳐서 20km가 넘지만 대부분 평지여서 크게 힘들진 않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1코스와 2코스는 합쳐서 20km가 넘지만 대부분 평지여서 크게 힘들진 않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21.5km의 길 중 유일한 숲을 벗어나면 다시 움푹한 강진만 바다다. 남쪽으로 내리꽂혔던 길은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섬과 장구섬, 카페가 있는 농가섬을 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죽방렴이 펼쳐진 지족이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죽방렴은 물살이 좁고 빠른 지족해협에 대나무발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원시어업이다. 멸치는 보이질 않고 바닷물 위에 드리운 창선교의 붉은 반영만이 너울너울 흔들리고 있었다.

2코스는 창선교 옆 하나로마트 앞에서 끝을 맺는다. 고관절이 뻐근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다음에 걷게 될 3코스(동대만길)를 그려보며 차를 세워둔 버스터미널로 돌아간다.

남해버스터미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버스터미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남해버스터미널
서울 부산 진주 등에 남해를 오가는 버스가 있다. 터미널에서 택시 타는 곳으로 나오면 1코스 출발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자가용의 경우 터미널 지하와 뒤쪽에 약간의 주차 공간이 있다. 2코스 종점인 삼동면 하나로마트 앞에서 터미널까지 돌아오는 택시비는 약 17,000원이다.

남해바래길2.0.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2.0.

INFO 남해바래길2.0
스마트폰에서 남해바래길 앱을 다운받는 게 좋다. 각 구간별 거리, 교통편, 숙박시설 등 바래길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구간별 ‘따라가기’ 기능을 이용하면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가기를 하다 경로에서 벗어나면 경고음이 들린다.
문의 055-863-8778

남해바래길 이정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이정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남해바래길 이정표
1구간부터 순서대로 갈 땐 빨간색 화살표를, 종점부터 역방향으로 갈 땐 파란색 화살표를 따른다. 노란색과 다홍색이 한 세트로 묶인 얇고 긴 리본도 있다. 수시로 보이는 이 표식이 1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길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절믄나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절믄나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절믄나매
1코스 청년창업거리에 있는 퓨전레스토랑이다. 남해마늘함박스테이크 16,000원, 남해시금치고사리감바스 15,000원, 남해화전한우불고기덮밥 13,000원이다. 화요일 휴무.
주소 경남 남해군 남해읍 화전로38번가길 6
문의 055-864-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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