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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8월호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고향] 카투니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 유환석과의 호반 여행, 길 잃은 고래를 품는 곳, 춘천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고향] 카투니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 유환석과의 호반 여행, 길 잃은 고래를 품는 곳, 춘천
  • 이동미 여행작가
  • 승인 2021.01.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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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이 한 눈에 들어오는 구봉산 전망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춘천이 한 눈에 들어오는 구봉산 전망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춘천] 춘천. 조그맣게 읊조리기만 해도 마술 같은 일이 펼쳐질 것 같은 곳이다. 새벽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고래를 만날 것 같고, 육림고개 언덕에서 어린 왕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그곳으로 어린 왕자를 만나러 간다.

처음 만난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그림 속에 있었다. 빨간 안감에 초록색 점이 가득한 롱코트를 입고 부스스한 노란 머리에 푸른색 스카프를 하고 있다. 구름과 산과 꽃이 그려진 스카프는 어찌나 길던지 점점 넓어지며 그림 밖으로 튀어 나가고 있었다.

유환석 화백의 작품 '어린왕자'.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유환석 화백의 작품 '어린왕자'.
유환석 화백의 작업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유환석 화백의 작업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어린 왕자>, <호반의 즐거움>을 탄생시키는 손
바오밥 나무와 행성, 장미꽃과 사막여우가 배경인 만화 컷 속에 ‘어린 왕자’가 서 있는 그림 옆에는 <호반의 즐거움>이라는 그림이 있다. 오선지 위에 음표가 출렁이듯 물결이 일고, 룰루랄라 자전거길 옆 호수에는 오리배가 떠 있다. 아! 그런데 오리배 옆으로 푸른 고래가 겸연쩍은 듯 잇몸을 드러내며 씨익 웃고 있다. 길을 잘못 든 모양인데 당황하기는커녕 즐기는 표정이다. 춘천에 살면 이렇듯 동화 같은 삶이 될 것 같아 그림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어린 왕자>와 <호반의 즐거움>을 그린 사람은 카투니스트(cartoonist) 겸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인 유환석 화백, 오늘은 춘천 토박이인 유 화백과 함께 그의 그림 속 춘천을 돌아보기로 한다. 유 화백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사 만화가로, 일간 <스포츠조선>에서 17년간 <헹가래>를 연재했다. <헹가래>는 정치, 사회, 경제를 아우르며 4개의 컷 속에 웃음과 가슴 찡함은 물론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주었다.

춘천 소양강의 아침 풍경.
춘천 소양강의 아침 풍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소양강 처녀 동상과 소양2교.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소양강 처녀 동상과 소양2교.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춘천의 젖줄, 소양강과 소양댐
‘춘천’하면 빠뜨릴 수 없는 곳이 소양강과 소양댐이다. 춘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유 화백에게 소양강 물줄기는 너무나 친숙한 존재다. 소양강 백사장에서 방송국 노래자랑이 열리면, 유 화백은 미술대회 스케치 연습하러 간다며 학교를 조퇴하고 봉의산을 넘어 노래자랑을 보러 가곤 했다.

강촌 모래사장에선 캠프파이어를 즐기며 통기타를 쳤고, 야외에서 전축을 틀어놓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한다. 현재 소양강 강가에는 <소양강 처녀(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라는 노래 속에 등장하는 소양강 처녀 동상이 서 있다. 소양강 위를 걷는 듯 나는 듯 감상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와 빨갛고 파란 소양 2교가 배경처럼 소양강 위에 떠 있다.

소양강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양댐이다. 여름철 집중 호우로 물이 많아져 거대한 물줄기를 방류하면 소양댐에는 산보다 큰 무지개가 만들어진다. 소양댐 안쪽 소양호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천년 사찰 청평사로 향하게 된다. 아름다운 공주님을 사랑하던 청년 이야기가 서린 청평사 가는 길은 뽀드득뽀드득 눈밭이 흥겹다. 뽀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길동무가 되어준다.

신문 만화에 꿈을 키운 중학 시절
춘천은 남쪽으로 김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금병산이 있고, 남서쪽으로 붕어섬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삼악산이 있으며, 동쪽으로 전망 좋은 카페가 늘어선 구봉산이 있다. 유 화백과 구봉산 전망대에 오르니 춘천 시내와 더불어 도심 속 봉의산이 한눈에 보인다. 미니어처처럼 오밀조밀 예쁘장한 춘천을 내려다보며 어린 왕자가 살던 소혹성 B612호를 떠올려 본다.

유 화백이 시사 만화가가 된 건 ‘신문이 되어 나오기까지’라는 중학 교과서 단원 때문이다. 신문사 견학을 하였는데,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한다. 그때부터 신문 만화와 일러스트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만화도 예술로 인정을 받을 것’이란 미술 선생님 말씀이 힘이 되었다.

출판만화가 아닌 시사만화에 관심을 둔 건 당시 만화방 만화 보다 집으로 배달되는 서너 개 신문 만화와 기사 삽화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청소년 잡지인 <학원>과 <진학>에 만화를 투고해 전국의 여학생에게서 팬레터를 받았으니, 시사 만화계의 큰 기둥이 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유환석 화백의 작품 '호반의 즐거움'.
유환석 화백의 작품 '호반의 즐거움'.

어린 왕자와 푸른 고래의 비밀
유 화백이 그린 작품 속에는 공지천의 오리배, 책 읽는 소양강 처녀, 쏘가리 다리, 춘천대교, 봉의산뿐 아니라 약사천으로 가려는 고래, 어린 왕자가 등장한다. 춘천을 여행하다 보면 반갑게 인사하는 춘천 여행의 친구들이다.

“화백님, 그림 속 어린 왕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린 왕자>는 어릴 때 읽었고 지금도 가끔 읽는 생텍쥐페리의 동화책이라 한다. 어릴 때는 ‘그냥 동화’로 읽었는데, 나이 들어가며 다시 읽으니 철학적 의미와 말의 깊이, 느낌이 달라지며 새로운 해석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문득 몸은 어른인데 어린아이처럼 사는 것 같아 그림 속에 어린 왕자를 그리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안경 너머 화백님의 눈동자가 어린 왕자의 눈처럼 새까맣고 동그란 것이 똑 닮았다.

“그런데 화백님, 고래는 바다에 사는 거 아녜요?”

큰 고래가 되어 바다로 가고 싶었는데 몸집만 커진 채, 바다로 가지 못하고 강에서 좌충우돌하는 고래의 모습이 확고한 철학 없이 웃으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라 하신다. 춘천에서 만난 두 번째 어린 왕자가 유환석 화백이고, 그림 속 어린 왕자가 유 화백이며, 유 화백이 그림 속 푸른 고래였다!

푸르른 초승달 아래의 실레 책방.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푸르른 초승달 아래의 실레 책방.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마술적 사실주의가 꿈틀대는 춘천의 어린 왕자
다음은 실레마을, 1908년 김유정이 태어난 곳으로 그의 작품 속 무대이자 금병의숙을 지어 농촌계몽 활동을 하던 곳이다. 김유정 문학관과 이야기 집을 둘러보고 실레마을 이야기 길을 걷고, 김유정역에서 잠시 쉬며 춘천의 옛모습을 반추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곳에 한옥을 예쁘게 손본 독립서점 실레 책방에 들렀다. 전자책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잉크 냄새가 나는 책의 질감과 종이 책장 넘어가는 소리, 켜켜이 쌓여있는 책에 둘러싸여 나누는 이야기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대들보가 살아있는 새하얀 책방에서의 시간은 흘러 푸르른 밤 풍경과 손톱 모양 초승달이 신비한 풍경을 만든다.

화백님과 책방 주인과 더불어 어울렁더울렁 닭갈비를 먹으러 간다. 김유정의 <봄봄>에 등장하는 점순이 이야기에서 시작해, 미술실에서 물감 접시를 크기별로 늘어놓고 드럼 스틱 대신 붓을 두드리며 놀던 이야기, 그림 이야기, 책 이야기, 영화 이야기로 흘러간다. 점순이네 닭갈비는 지글지글 익어가고, 밤하늘의 초승달은 더욱 새초롬해지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춘천은 이 세상의 시공간과는 조금 다른 곳이다. 중남미 작가들이 추구하던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를 연상케 한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어느 순간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현실과 마술적 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그런 곳 말이다. 시사 만화가는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디디고 치열하고 집요하게 본질을 파헤치는,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았는데 이곳 춘천에서 만난 유 화백은 소양강을 거슬러 온 푸른 고래이고 푸른 스카프 휘날리는 어린 왕자였다. 춘천은 그런 곳이다.

춘천 여행! 유환석 화백의 Pick 5.
1. 공지천 산책길 조각공원과 분수대, 보트장이 있는 춘천의 명소, 호반의 도시를 만끽할 수 있다.

2. 망대 골목길 : 30년 전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약사동 골목으로 춘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3. 청평사 소양호에서 배를 타거나 자동차를 이용해 갈 수 있는 고즈넉한 사찰이다.http://cheongpyeongsa.co.kr

4.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 의암호 호숫가에 있다. http://www.animationmuseum.com

5. 실레 책방 김유정 문학관 가는 길에 들르기 좋은 독립서점이자 한옥 책방이다. 033-262-1508.

 

미니 인터뷰. 유환석은 누구?

유환석 화백.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유환석 화백.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유환석은 1990년 <스포츠조선> 창간 멤버로 <스포츠조선> 시사만화 <헹가래>를 비롯해 스포츠 만평을 5,000회, 17년간 연재했다. 강원일보 시사만화 <공수래>는 7년 연재, 어린이 강원 만화는 15년을 연재하였고, 각종 매거진에 만화와 일러스트를 연재하는 등 시사 만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2018년부터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 직도 맡고 있다.

시사만화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포인트를 짚어야 하며 가로 3.5cm, 세로 15cm 크기의 지면에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게다가 매일같이 신문 마감에 맞춰야 하니 녹록치 않은 일이다. 시사만화는 사회 비판과 은유와 풍자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며 특히, 정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항의와 섭섭함을 표하는 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데뷔한 지 45년, 매일 같이 그 힘든 시사만화를 그렸다고 하니 경이로울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념엽서 12종을 발행했으며, UNESCO 세계문화유산 만화공모전을 심사했고, 개인전을 비롯해 프랑스, 호주 초대전 등 전시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다. 매일매일 시사만화를 마감하면서 이렇듯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또 체력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싶다.

유환석 화백의 작품 '망대가 있는 마을'.
유환석 화백의 작품 '망대가 있는 마을'.
작업실에서 일러스트 작업 중인 유환석 화백.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작업실에서 일러스트 작업 중인 유환석 화백.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이제 유 화백은 언론사를 떠나 춘천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 중이다. 시사만화를 넘어서 2m×1.2m의 커다란 종이에 어린 왕자와 인어공주, 아이들과 자연, 춘천의 기억을 불러 신나고 즐겁게 마음껏 그림을 그린다. 강원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춘천을 만화 도시로 만드는 꿈도 키우는 중이다.

이제 그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일이나 특별하지 않지만 공감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려 한다. 편안한 그림을 그리는 카투니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넉넉한 모습과 반짝이는 눈빛에 다음 전시회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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