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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제주 오름 여행 ①]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에 오르다,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제주 오름 여행 ①]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에 오르다,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01.26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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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사진 / 김도형 작가
다랑쉬오름. 사진 / 김도형 작가

[여행스케치=제주] 먼 옛적 달을 품었다는 거대한 굼부리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원의 상징처럼 보인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하나, 둘 잊혀져간 이야기들이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곳에 서면 한라산과 수많은 오름들이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펼친다.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다랑쉬오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제주 동부 구좌읍에 자리한 다랑쉬오름은 웅장한 산세와 온전히 보전된 분화구가 일품인 오름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위용스러운 자태는 동부의 수많은 오름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며, 서부의 노꼬메오름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으뜸으로 꼽힌다.

다랑쉬오름 분화구를 바라보고 있는 탐방객. 사진 / 김도형 작가
다랑쉬오름 분화구를 바라보고 있는 탐방객. 사진 / 김도형 작가
다랑쉬오름에서 보이는 용눈이오름과 풍력발전단지. 사진 / 김도형 작가
다랑쉬오름에서 보이는 용눈이오름과 풍력발전단지. 사진 / 김도형 작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동부 최고의 오름
동부에서 가장 높다 보니 이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대 역할도 담당한다. 제주의 대부분 오름이 비고 100m 안팎인 것을 감안할 때 다랑쉬오름은 무척 높은 편에 속한다. 섬을 통틀어도 비고가 200m 이상인 오름은 이곳을 포함해 어승생, 큰바리메오름, 노꼬메오름, 군산오름 등 다섯 개에 불과하다.

산체가 높은 만큼 탁 트인 시야는 다랑쉬오름을 올라야 할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정상에 오르면 올록볼록한 오름 군락과 너른 들녘,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 앞에선 누구라도 감탄사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이 빚은 작품은 그 어떤 예술품보다 감동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토록 수려한 경관을 품은 다랑쉬오름 앞에 ‘오름의 여왕’, ‘오름의 랜드마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명성에 걸맞게 다랑쉬오름은 탐방 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탐방안내소와 화장실은 물론 주차 공간도 여유로운 편이다. 탐방안내소는 제주 오름 전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며 필요하다면 전문해설사를 요청할 수 있다. 해설사가 상주하는 오름은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을 제외하고 이곳이 유일하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탐방안내소 운영이 중단되기도 하니 탐방로 입구에 세워진 안내석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탐방객. 사진 / 김도형 작가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탐방객. 사진 / 김도형 작가

한라산과 오름, 바다가 그려내는 황홀함
오랜만에 찾은 다랑쉬오름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다. 단지 예전에 비해 방문객들이 많아진 건지 오름 입구까지 이어진 길을 한창 확장하는 중이다. 고개를 한껏 들고 올려다보아도 오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 번 크게 심호흡 한 후 탐방로에 발을 내딛었다.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진 탐방로는 체력과 끈기만 있다면 아이들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바닥에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경사가 심한 구간은 친절하게도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가파른 길이지만 시간을 넉넉히 두고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닿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할 때는 잠시 멈춰선 후 고개를 돌려보자. 한발씩 내딛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기운을 북돋워준다. 마지막 걸음을 뗄 무렵엔 아끈다랑쉬오름의 분화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에 서면 수많은 오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에 있는 용눈이오름을 비롯해 멀리 보이는 안돌ㆍ밧돌오름, 높은오름, 백약이오름 등 일일이 다 세기도 힘들 정도다. 게다가 계절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푸릇푸릇한 밭들은 이곳이 제주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 너머로 햇살을 듬뿍 머금은 바다가 마치 금빛 쟁반처럼 반짝인다. 여기에 성산일출봉과 우도 전망까지 더하면 통쾌하다 싶을 만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복잡한 머릿속도 답답한 마음도 쏴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린다. 그저 흘러가는 구름을 잡아두고 한없이 평화로운 정경 속에 빠지고 싶어진다.

바다를 뒤로 하고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리면 섬의 기둥인 한라산이 나타난다. 한라산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값진 풍경이다. 흰 눈이 뒤덮인 한라산의 설경이 여느 때보다 더욱 신령스러워 보인다. 한라산 자락 아래 산그림자처럼 겹겹이 겹쳐 보이는 오름들도 유난히 신비롭게 느껴진다. 기회가 된다면 해질녘에 한라산을 바라보며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노을이 번져가는 하늘 아래 실루엣만 남은 한라산은 황홀하리만치 아름답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다랑쉬오름의 일출. 사진 / 김도형 작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다랑쉬오름의 일출. 사진 / 김도형 작가

백록담과 닮은 분화구, 그리고 신화와 역사
오름 중앙부에는 다랑쉬오름이 지켜온 귀한 보석이 숨어 있다. 원형이 그대로 남은 움푹 파인 분화구는 오로지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 둘레가 1.5km에 달하는 분화구는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만 30분가량 걸린다. 깊고 푸른 분화구는 종종 한라산의 백록담에 비견되는데 신기하게도 실제 깊이마저 115m로 백록담과 같다. 아쉽게도 백록담과 달리 이곳 분화구는 투수성이 높아 물이 고이지 않는다.

능선 중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진 산불감시초소는 분화구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예전에 귀동냥으로 들었던 신화가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제주도의 창조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치마에 흙을 채워 나르는 길에 한줌씩 놓아 오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너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있어 주먹으로 한 번 쳤더니 꼭대기가 푹 들어가 버렸다. 그것이 바로 지금 서 있는 다랑쉬오름이다. 설문대할망이 주먹으로 친 곳은 분화구가 되는 셈이다. 옛 사람들의 재치 가득한 이야기에 덩달아 발걸음이 유쾌해진다.

다랑쉬오름이란 이름도 분화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과거엔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해서 월랑봉(月郞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추석 보름날에는 세화리 주민들이 이곳에서 축제를 열기도 한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지금도 분화구에는 밤마다 신비로운 달빛이 비쳐든다. 상상하고 있자니 금세라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사실 다랑쉬오름이 아름답고 근사한 풍경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들녘 가운데 우뚝 서 듬직해 보이는 이 오름은 제주4.3사건의 아픔까지 묵묵히 껴안고 있다. 광복 이후까지도 오름 아래쪽에 다랑쉬마을이 있었다고 하나 4.3때 모두 불에 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잊혀져가는 역사였던 4.3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근처의 다랑쉬굴에서 당시 피란했던 사람들의 유해가 발굴되기도 했다.

오름이 품은 슬픈 역사를 되새기며 걷는 동안 어느새 발걸음이 능선 말미에 닿았다. 분화구 남쪽 사면은 특이하게도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능선 둘레로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터널을 이뤘는데 그 모습이 참 이채롭다. 이 터널을 지나면 다랑쉬오름 탐방은 마무리에 접어든다.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 김도형 작가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 김도형 작가
아끈다랑쉬오름의 분화구를 가득 메운 억새 너머로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사진 / 김도형 작가
아끈다랑쉬오름의 분화구를 가득 메운 억새 너머로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사진 / 김도형 작가
아끈다랑쉬오름 정상 부근에 홀로 서 있는 나무. 사진 / 김도형 작가
아끈다랑쉬오름 정상 부근에 홀로 서 있는 나무. 사진 / 김도형 작가

겨울날의 서정을 품은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아끈다랑쉬오름은 모양새나 형태가 마치 형과 아우를 떠올리게 한다. 높낮이만 다를 뿐 오름 중앙에 원형 굼부리가 있는 것과 그 둘레로 탐방길이 난 것까지 둘이 꼭 닮았다. 아끈은 제주어로 ‘작은’, ‘새끼’란 뜻을 갖고 있는데 풀이하자면 아끈다랑쉬오름은 다랑쉬오름의 동생격이 되는 셈이다.

오름이 낮다고 볼 만한 풍경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 ‘오름은 올라야 제 맛’이라고 했는데 아끈다랑쉬오름이야 말로 그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오르지 않으면 아끈다랑쉬오름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름이 나지막해도 경사면을 직선으로 올라야 하는 까닭에 5분 정도는 애를 써야 한다. 이곳 정상에 펼쳐진 풍경은 기대 이상이다. 마치 보란 듯이 굼부리 안팎을 가득 메운 억새꽃 무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있다. 억새는 가을에 절정을 이루지만 겨울이 되어도 활짝 핀 그대로 마른 억새꽃을 볼 수 있다.

능선을 따라 난 오솔길은 억새와 나란히 걷는 길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들이 사락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분화구 가장자리에 서면 겨울에도 생명력 넘치는 밭들이 내려다보인다. 한창 수확철인 지금은 월동무와 당근을 캐는 제주 농부들을 볼 수 있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한 폭 그림이라면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생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다가온다. 하늘 아래 펼쳐진 억새밭은 햇살이 비치는 곳마다 노르스름하게 빛난다. 곁에 다랑쉬오름이 지키고 있어 더 든든한 느낌이다.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보낸 한 때는 포근함과 평화로움이 흐르는 겨울날의 서정으로 남는다.

Info 다랑쉬오름안내소
주소 제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산6

TIP 다랑쉬오름에서 맞는 일출도 최고!
겨울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랑쉬오름을 오른다. 동부에서 이름난 일출 명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새해에 다랑쉬오름을 올랐는데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찬란히 떠오르던 태양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물론 평소에도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탐방로를 오르는 사람들이 적잖다. 굳은 다짐이나 마음가짐을 새로 할 때에 다랑쉬오름은 최고의 선택지가 된다. 2021년 새해 일출을 놓친 아쉬움을 다랑쉬오름에서 달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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