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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②] 남파랑길과 함께 걸어요, 제3코스 동대만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②] 남파랑길과 함께 걸어요, 제3코스 동대만길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1.01.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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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제3코스 동대만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제3코스 동대만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경남 남해는 아이를 무릎에 앉힌 엄마처럼 생겼다.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데, 이번에 걷게 될 창선은 남해의 동북쪽, 무릎 위 아이에 해당하는 섬이다. 창선의 북쪽은 사천시와 창선•삼천포대교로 연결됐고, 섬의 남쪽은 창선교와 삼동면으로 이어진다.

핫팩을 챙겨 오지 않은 게 생각났다. 강원도 일부 지역은 영하 20도 이하로 훌쩍 내려간 날이었다. 삼천포터미널에 내려 대합실로 들어섰는데, 이게 웬 횡재? 형광색 조끼를 맞춰 입은 분들이 교회 이름이 새겨진 마스크와 핫팩을 나눠주고 있었다. “혹시 창선으로 가는 25번 버스는 어디서 타나요?”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다.

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길 건너편 삼성전자 앞에서 타야 한단다. 길 맞은편 정류장에서도 또 물어본다. “여기서 창선 가는 버스 타나요?”맞다는 걸 재차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된다. 한 번만 묻고 실수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부터 1km는 도로를 따른다. 이정표의 빨간색과 파란색 화살표는 위치가 반대로 잘못 되어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 지점부터 1km는 도로를 따른다. 이정표의 빨간색과 파란색 화살표는 위치가 반대로 잘못 되어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물의 산과 남쪽 섬 사이에 바다가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뭍의 산과 남쪽 섬 사이에 바다가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람이 강하나 날엔 바다 쪽으로 너무 가깝게 붙어 가지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람이 강하나 날엔 바다 쪽으로 너무 가깝게 붙어 가지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도로에선 조심, 또 조심
삼천포를 떠난 시내버스는 모개도~초양도~늑도를 지나 남해로 들어섰다. 차창 밖 해상케이블카와 올망졸망 자리한 어촌풍경에 넋을 놓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버스는 어느새 창선대교의 빨간색 교각과 검문소를 지나 단항교로 향하고 있었다. 벨을 누르고 차에서 내린다. 강원도만큼은 아니지만 바다에서 몰아친 바람에 으스스 한기가 몰려왔다. 열심히 흔들어 열을 올린 핫팩을 주머니 안에 넣는다.

남파랑길 제36코스와 길이 겹치는 바래길 3코스 동대만길은 창선•삼천포대교의 남쪽 끝, 남해를 기준으로 했을 땐 창선의 북쪽 끝에서 시작한다. 총 거리는 15km이며 쉬엄쉬엄 5시간쯤 걸린다.

붉은 다리가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 길은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된다. “위험구간이니 차량 또는 우회로를 이용”하라는 안내판보단 남파랑길 이정표가 세 배쯤 더 크게 붙었다. 찻길은 1km쯤 이어진다. 차량을 이용하라지만 걸어온 이에겐 타고 갈 차가 없다. 택시도 드문 시골길이다. 우회로는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위험한 길이라면 처음부터 우회로 쪽으로 이정표를 세워야 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시점과 종점을 거꾸로 표시한 이정표였다. 순방향은 빨간색 화살표가 맞다.

도로에서 바다 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지리산과 하동 금오산이 너무 가까워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뭍의 산과 남쪽 섬 사이에 바다가 있었다. 파도는 추위만큼 거세게 넘실댔다. 그 바람 속에서 어르신 두 분이 밭일을 하고 있다. 남해의 겨울에선 흔한 풍경이다. 할머니는 쪼그려 앉아 시금치를 캤고, 할아버지는 시금치가 가득 담긴 자루를 경운기에 옮겼다. “어디서 왔노? 날도 추운데….”걱정을 하는 건 오히려 어르신들이었다.

마을 위쪽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된 왕후박나무가 있다. 500살 쯤 나이를 먹은 이 나무의 키는 9.5m, 밑동의 둘레는 11m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마을에 살던 고기잡이 노부부가 어느 날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고기 뱃속에서 이상한 씨앗이 나왔더란다. 그 씨앗을 뜰 앞에 뿌린 것이 자라 지금의 왕후박나무가 되었단 것.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 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고 쉬어 갔다는 얘기도 있다.

첫번째 임도를 나서며 만난 도로.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첫번째 임도를 나서며 만난 도로.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등산로 갈림길이 여럿 있지만 큰 길을 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등산로 갈림길이 여럿 있지만 큰 길을 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만만치 않은 산중임도
대벽마을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팔각정처럼 생긴 정류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배낭 안에 먹을 것을 넣어왔는데도 도저히 바람 부는 길가에선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작은 정류장 안으로 들어가 창문과 출입문을 모두 닫는다. 바람이 없으니 따스한 볕이 한결 더 돋보였다. 덜컹덜컹, 바람은 창문을 두들기며 열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와 도넛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는다. 이제부턴 연태산(340.2m)자락을 휘감아 도는 산중 임도다.

산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도 산속에선 잠잠했다. 여기저기 산행리본을 단 등산로가 보인다. 조금 헷갈리지만 큰길만 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푸드득, 돌아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라니 두 마리가 아래로 사라진다. 길 한쪽엔 수십 기의 무덤도 있다. 바람은 없어도 등줄기에 한기가 돈다. 그런 모습에 스스로 우습기도 하다. 어깨를 펴고 용기를 내어 남은 길을 걷는다. 50여 분쯤 걸었을까. 저 아래로 민가와 도로가 보였다. 마치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길 건너편으로 카페와 식당이 보였다. 먹을 걸 준비하지 못했다면 저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창선면소재지를 제하곤 이번 구간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좀 전에 먹었으니 이번엔 패스, 길은 펜션 뒤쪽으로 이어졌다. 산 아래로 그늘에 잠긴 수십 여 채의 건물들이 보였다. 벌집 같기도 하고 개미집 같기도 하다.

펜션단지인가? 마침 지나는 동네 어르신께 여쭤본다. 분양하는 집이지만 공사도 다 끝내지 못한 채 부도가 났단다. “서울에서 남해까지 살러 온 사람이 뭐 하러 저런 집을 사겠냐?”며 고개를 젓는다. “마당도 있고 텃밭도 있어야지, 저기 살 바엔 그냥 아파트 살지!”볕이 남은 이쪽과는 달리 저쪽은 벌써 어둡다. 지금껏 보아온 풍경과는 다른 곳이었다.

혼자 길을 걸을 땐 가끔 동네 어르신들의 호기심 대상이 된다. 어디서 왔는지, 왜 혼자 걷는지, 좋은 길 놔두고 굳이 산길로 가는 이유는 뭔지, 외지인의 모든 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길을 걷다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게 좋다. 흔쾌히 길을 내어준 분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다. 농작물에 손을 대서도 안 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일명 '셀카 놀이'를 함 걷는 산중임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일명 '셀카 놀이'를 함 걷는 산중임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겨우내 수확하는 남해 시금치. 달고 맛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겨우내 수확하는 남해 시금치. 달고 맛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더 힘든 두 번째 산중임도
산도곡고개(3.91km)까지 이어진 임도로 들어섰을 땐 스산한 산 그림자가 드리운 후였다. 바람이 적고 볕이 많았던 연태산 임도와는 달랐다. 정상까지 왔으니 이제 내려가겠지, 라는 생각은 틀렸다. 두 번째 임도는 속금산(358m)을 휘감아 돌았다. 내려가나 싶으면 다시 산허리를 감싸고 이어졌다. 앙상한 겨울 숲에 해까지 없으니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한다.

편백숲을 벗어나면 산도곡고개다. 산불감시용 차량 한 대가 서있다. 찻길이 저 아래 있는데 바래길은 임도를 따라 올라섰다. 평지 위주였던 1~2구간이 난이도 별 하나였다면 이번 구간은 세 개, 다음에 걷게 될 4코스는 네 개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자 대방산 안내판이 나온다. 대방산 정상에 서면 발아래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남해의 대표적 명산인 망운산과 금산, 북쪽의 사천 각산이 잘 보인다. 조망이 좋은 산에는 어김없이 봉수대가 설치됐다. 대방산 봉수대는 남해안 일대의 상황을 육지로 전달하는 중간 봉수였다. 스님 한 분과 하얀 개가 스쳐 지난다. 1시간 40분 만에 처음 만난 사람이다. 위쪽으로 올라가는 걸 보니 운대암에서 산책을 나왔나보다. 잘 깔린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내려서면 구간 종점인 창선면소재지가 금방이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와 사위가 어둑하다.

INFO 삼천포버스터미널
남해바래길 제3코스 동대만길은 남해시외버스터미널보단 사천시 삼천포터미널과 더 가깝다. 두 지점간 거리는 6.5km. 서울 부산 진주 등에 삼천포로 가는 버스가 있다. 터미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앞 정류장에서 25번 버스를 탄다. 하루 8회 운행한다. 삼포교통 055-832-1992

창선대교 남단.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창선대교 남단.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창선대교 남단
삼천포에서 25번 버스를 탔다면 늑도 또는 단항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한다. 바래길 3코스는 빨간 교각 옆 창선대교 남단 검문소에서 시작된다. 이후 단항~대벽~당항~속금산 임도~대방산 임도를 지나 구간 종점인 창선파출소 앞에서 끝난다. 총 15km로 쉬엄쉬엄 5시간쯤 걸린다.

남파랑길 36코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파랑길 36코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남파랑길 36코스
삼천포에서 시작된 남파랑길 36코스는 남해로 진입해 이후 창선면까지 바래길 3코스와 길이 겹친다. 따라서 남파랑길 이정표와 바래길 이정표가 함께 그려져 있다. 임도 갈림길에선 대체로 좁은 산길 대신 넓은 임도를 따라야 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숙식정보.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숙식정보.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숙식정보
걷다가 만나는 단항마을~당항마을~창선면에 묵어갈 수 있는 펜션과 호텔이 있다. 첫 번째 산중임도를 벗어나면 도로 건너편에 남해유자빵카페와 메밀짜장집이 보인다. 두 곳을 이용할 경우 차량에 주의해서 길을 건너야 한다. 바래길을 이으려면 다시 도로를 건너 류앤리펜션과 당항민박 쪽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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