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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 고향] 선자장(扇子匠) 김동식과 함께 하는 바람 여행, 바람이 시작되는 곳, 전주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 고향] 선자장(扇子匠) 김동식과 함께 하는 바람 여행, 바람이 시작되는 곳, 전주
  • 이동미 여행작가
  • 승인 2021.01.26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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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감영 선화당 앞에서 윤선을 들고 선 선자장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감영 선화당 앞에서 윤선을 들고 선 선자장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전주] 대숲에 부는 사각사각 바람 소리가 듣고 싶고, 동해안의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청명한 바람이 내 몸을 쓸어 여기저기 박힌 군더더기와 답답함을 걷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일 때도 있다. 그 바램을 품고 바람이 만들어지는 곳, 전북 전주로 가본다.    

전주 여행의 기억 한 조각을 떠올리면 경기전의 태조 어진보다 경기전 뜰의 대숲이 먼저 생각난다. 사그락사그락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이 참으로 청명했다. 곧고도 맑음이 가득한 대나무를 뒤뜰 가득 심어 질리도록 듣고픈 바람이 일었었다.

전주 라한 호텔 한옥 뷰 룸에서는 전주한옥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 라한 호텔 한옥 뷰 룸에서는 전주한옥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 라한호텔에서 바라보는 야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 라한호텔에서 바라보는 야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대나무와 한지, 장인이 만든 작품
경기전이 있는 전주는 곧고 단단한 대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다. 물론 결 고운 한지도 빠지지 않는다. 나무에 새들이 깃들 듯 전주에는 탁월한 감각과 손기술의 예인이 많았으니 대나무를 깎고 광을 내어 곱고 고운 전주 한지를 더해 부채를 만들었다.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것이 바로 맑은 바람이어라(竹紙相婚 生子淸風, 죽지상혼 생자청풍).”-전주 부채문화관-

그래서 전주에는 선자장(扇子匠)이 많았다.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선자장이라 하는데 그 중 으뜸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인 김동식 선자장이다. 그분의 손끝에서 조선 제일의 바람이 생겨난다. 전주에서 태어나 한평생 전주 부채를 만드신 선자장을 만나 전주 바람 여행을 해본다.

전라감영 안 비석군을 둘러보는 선자장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라감영 안 비석군을 둘러보는 선자장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라감영의 미복원 건물인 선자청 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라감영의 미복원 건물인 선자청 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부채 만드는 선자청이 있던 전라감영
김동식 선자장과 함께 찾은 곳은 최근 복원된 전라감영(全羅監營).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년간 지금의 전라남북도와 제주도에 있는 56개 군•현의 수령을 지휘 통솔하던 관찰사(감사)가 있던 곳이다. 전라감영의 건물은 총 41동이었는데, 현재는 집무처인 선화당(宣化堂)과 연회•휴식 공간인 관풍각을 포함해 7동을 복원하였다. 복원되지 못한 건물 중에 선자청(扇子廳)이 있다.

선자청은 부채를 제작하던 곳인데, 전라감영에 선자청을 두었던 이유는 부채가 전주지역의 특산물로 단옷날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전라감영의 옛 지도를 보면 선자청은 네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규모가 제법 큰 편이었으며, 한지(韓紙)를 만들던 지소(紙所)와 한지를 인출하는 인출방(印出房)이 인근에 배치되었다.

선자청에서의 작업은 부챗살을 만드는 초주방, 대나무를 붙여 부채 형태를 만드는 정련방, 때를 빼내고 빛이 나게 하는 광방, 합죽한 부채에 인두로 무늬를 새겨 넣는 낙죽방, 부채에 한지를 바르는 도배방, 부채의 목을 묶는 사북방으로 작업이 분업화되어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주 부채는 외교활동에 사용되는 등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전주팔경의 하나인 덕진연못이 그려진 합죽선. 김동식 작품.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팔경의 하나인 덕진연못이 그려진 합죽선. 김동식 작품.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는 조선 선비의 부채
옛날 선비들은 의관을 갖추고 손에 합죽선을 쥐어야 비로소 외출했을 정도로 당시 부채는 선비의 필수품이었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형태상 둥근 모양의 단선인 방구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摺)부채로 나눌 수 있다. 접부채의 일종인 합죽선은 대(竹)의 껍질을 종이처럼 얇게 깎아 맞붙여(合) 부챗살을 만드는데, 사대부 이상만 소장할 수 있는 고급 부채(扇)였다.

임금님은 백접선(百摺扇)을 사용했는데 부챗살을 50개 사용해 완전히 접으면 접힌 선면의 칸이 100개라 백접선이라 했다. 사대부는 사십선, 중인과 상민은 그보다 살이 적은 부채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평민들은 단선인 방구부채를 사용하는 등 부채는 신분과 직책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물건이기도 했다. 또 부채 끝에 다는 매듭 장식을 '선추(扇墜)'라 하는데 선추에 침통이 달리면 한의사, 나침판이 달리면 지관으로 직업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선비들은 자신의 호를 새겨 자신만의 부채로 만들었고, 손때가 묻은 부채를 분신처럼 아꼈으며 대를 물려 전하기도 했다.

고종 황제 진상품을 만든 외조부 라학천 선자장의 사진.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고종 황제 진상품을 만든 외조부 라학천 선자장의 사진.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겉대를 포개 만들어 탄력 바람이 솔솔
해방 후 선자청이 사라지며 선자장들은 석소마을(아중리), 가재미마을(인후동), 새터, 상황당, 안골 등에 부채마을을 형성했다. 김동식 선자장은 가재미 마을에서 태어나 14살부터 석소마을로 부채 만들기를 배우러 다녔다.

 당시 석소마을에는 고종황제 진상품 부채를 만들던 외가댁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부채 만들기는 외증조부 라경옥(羅敬玉)-외조부 라학천(羅鶴千)-외삼촌 라태순(羅泰淳)-선자장 김동식(金東植)으로 4대를 이어 왔다. 그리고 이제 아들 김대성(金大成)이 선자장 이수자로 5대째 맥을 이으며 결 곧고 단단한 합죽선을 만든다.

“합죽선은 튼튼한 겉대 두 개를 포개어 만들기 때문에 탄력이 있고 바람도 잘 일지요. 대를 물려 몇백 년도 쓸 수 있고요. 속대만 사용하는 일본이나 중국 부채와는 비교가 안 되지요.”

덕진공원에서 어릴 적 단옷날을 회상하는 선자장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덕진공원에서 어릴 적 단옷날을 회상하는 선자장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목살 자르기 과정.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목살 자르기 과정.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목살 자르기 과정.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목살 자르기 과정.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한벽당 아래 전주천과 덕진공원은 부채와 연관된 장소
선자청에서는 분업화가 이루어졌지만, 지금의 김동식 선자장은 모든 공정을 혼자 해낸다.
“합죽선 하나를 만드는데 150번은 손이 갑니다.”

대나무를 잘라 얇게 깎아내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데, 대나무 살을 잘못 깎으면 부채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나무 겉껍질을 두 장씩 붙일 때는 민어 부레를 끓여 만든 ‘어교’와 동물 가죽, 힘줄, 뼈를 고아 만든 ‘아교’를 적당히 섞어 사용한다. 지금의 국립무형유산원 아래에 전주천이 흐르고 건너편으로 한벽당이 있는데, 한벽당 아래 냇가에서는 아교와 어교를 만들었다. 한지도 이곳 냇가에서 만들었으니 전주천은 전주 부채를 만드는 중요 재료의 산실이었다.

부채 다듬는 도구인 줄.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부채 다듬는 도구인 줄.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부채살을 살피는 과정.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부채살을 살피는 과정.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완성된 합죽선을 검수하는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완성된 합죽선을 검수하는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 부채 제작 의뢰는 봄에 가장 많았다. 모내기가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 단옷날(음력 5월 5일)이 되면 여름을 시원하게 넘기라고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 때문이다. 특히 임금이 신하에게 ‘단오선(端午扇)’을 하사하기 위해 전주 부채를 많이 주문했다. 단옷날이면 전주 사람들은 부채를 들고 덕진공원에 모여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고, 남자들은 씨름하며 하루를 보냈다.

전주 사람들이 모두 덕진공원에 모여들었으니 덕진공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방죽을 쌓은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흐르는 물을 맞는 물맞이를 했었다. 김동식 선자장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덕진공원을 찾아 물맞이를 구경하며 물장난을 치곤 했다.

부채 변죽에 인두로 낙죽을 한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부채 변죽에 인두로 낙죽을 한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합죽선 제작과정 일부와 도구들. 1. 등 동이기를 한 모습. 2. 부하기한 부채에 구멍을 뚫어 암 못과 숫 못으로 고정해 놓은 모습. 3. 교할(풀 바르는 작업에 쓰는 대나무 붓). 4. 대나무 못(부챗살을 광 낼 때 사용하는 대나무 못). 5. 짚 솔(부챗살을 문지르는 도구). 6. 전지(합죽선의 전체 모양을 잡을 때 가운데 끼우는 도구).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합죽선 제작과정 일부와 도구들. 1. 등 동이기를 한 모습. 2. 부하기한 부채에 구멍을 뚫어 암 못과 숫 못으로 고정해 놓은 모습. 3. 교할(풀 바르는 작업에 쓰는 대나무 붓). 4. 대나무 못(부챗살을 광 낼 때 사용하는 대나무 못). 5. 짚 솔(부챗살을 문지르는 도구). 6. 전지(합죽선의 전체 모양을 잡을 때 가운데 끼우는 도구).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손끝에서 바람을 만드는 전주
부채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든 건 분명하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자리하는 시대에 부채는 더 이상 생활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채는 그 자체가 우리의 전통이며 자존심이고 공예품이다. 인두로 지져 낙죽(烙竹)을 새긴 합죽선의 변죽은 그 문양이 너무나 아름답고, 반들반들 합죽선의 등(뼈)과 나풀나풀 선추의 어울림은 벽에 걸어놓고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을 예술 작품이다.

겹겹이 접힌 합죽선을 펴면 선지가 펼쳐지는 순간 바람이 만들어지는 모양이 보인다. 왜구를 무찌르고 오목대에서 연회를 하던 이성계는 대풍가(大風歌)를 부른 후 조선을 일으켰고, 전주의 수많은 선자장은 손끝에서 바람을 만들었다. 전주는 바람이 시작되는 곳, 바람을 만드는 곳이다. 바람은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는 곳이 전주다.

전주부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주부채문화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부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주부채문화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부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주부채문화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부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주부채문화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주 바람 여행! 선자장 김동식의 Pick 5.
1. 전라감영 조선 시대 전라감영의 모습을 실물과 AR로 접할 수 있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27. 문의 063-287-5002
2. 덕진공원 연꽃 가득한 공원은 힐링 나들이 코스로 좋다. 덕진구 권삼득로 390. 문의 063-232-6293.
3. 경기전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으로 어진 박물관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 문의 063-287-1330.
4. 국립무형유산원 무형문화유산을 보존, 전승하기 위해 전시, 공연, 교육이 진행된다. 완산구 서학로 95. 문의 063-280-1400.
5. 전주 부채문화관 전주 부채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문화사적 의미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93. 문의 063-231-1774.

 

미니 인터뷰.
다산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다산 김동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다산 김동식은 누구?

다산 김동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인 선자장이다. 1943년 선자장들이 모여 살던 전주 가재미 마을(현 인후동)에서 태어나 14살부터 고종황제 진상 부채를 만들던 석소마을 외갓집으로 부채 만들기를 배우러 다녔다. 손재주가 좋고 성실하며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열심히 부채를 만들다 보니 한평생 부채와 함께하고 있었다. 부채를 만든 세월은 어느덧 65년, 2015년 7월 8일에는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이 되었다. 선자장은 여럿이지만 지방무형문화재와 달리 국가무형문화재는 김동식 선자장이 유일하다.

손 안에 쏙 들어가는 미니선.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손 안에 쏙 들어가는 미니선.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손 안에 쏙 들어가는 미니선.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손 안에 쏙 들어가는 미니선.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한평생 합죽선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윤선(輪扇)과 미니선은 조금 특별한 합죽선이다. 윤선은 햇볕을 가리는 일산용의 기능이 큰데 180도로 펼쳐지는 합죽선과 달리, 윤선은 부채를 온전히 펴면 360도로 원을 이룬다. 크기가 큰 것은 대륜선, 변죽에 화각 장식을 하면 화각 윤선이 된다. 미니선은 여성용 부채로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에 색상이 화려하다. 어느 공정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부채 만들기, 그중에서도 합죽선 만들기는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세련미가 있어야 하는 공예품으로 고려 시대부터 나전, 금속, 칠, 옥공예 등과 함께 전승되고 있다.

이제 선자장 김동식은 손끝과 가슴으로 익힌 기술을 아들에게 전하고 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지만, 자신의 이수자이기도 한 아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과 착착함을 전한다. 옆 모습이 판박이같이 닮은 선자장 김동식과 이수자 김대성의 마주 선 모습은 단단한 변죽 두 개가 마주한 듯 보인다. 그사이에 수많은 대나무 살과 정갈한 선지가 켜켜이 접히는 근사한 합죽선 작품 하나가 숨어있는 듯하다. 전통은 지켜야 하지만 전통을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다. 자칫하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합죽선을 지켜나가는 두 사람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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