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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테마여행] 역사와 풍경 찾아 떠나는 강화도 돈대 여행, 한국의 몽생미셸을 아시나요?
[이달의 테마여행] 역사와 풍경 찾아 떠나는 강화도 돈대 여행, 한국의 몽생미셸을 아시나요?
  • 이동미 여행작가
  • 승인 2021.01.29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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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을 연상케하는 강화도 계룡돈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몽생미셸을 연상케하는 강화도 계룡돈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여행스케치= 강화] 백년전쟁이 일어났던 14세기, 프랑스 노르망디에는 바위산 꼭대기에 성을 쌓아 요새화한 몽생미셸이 만들어졌다. 강화도 서쪽 해안에도 이와 흡사한 17세기 요새 계룡돈대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강화섬 곳곳에 숨겨진 한적한 돈대를 찾아보자.

파리에서 서쪽으로 끝까지 달리면 프랑스 서북 해안과 노르망디 해안 사이에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이 있다. 화강암 위에 우뚝 선 몽생미셸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바다 위에 든 환상의 섬 같기도 하고, 들판 위에 갑자기 나타나는 요새 같기도 하다. 서울에서 서쪽으로 끝까지 달리면 강화도 서북 해안에 돈대가 하나 나타난다. 드넓은 강화도 간척 논 중 하나인 망월평야에 갑자기 나타난 요새 같기도 하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기도 한 계룡돈대(鷄龍墩臺)다.

암석 위에 세워진 계룡돈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석 위에 세워진 계룡돈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계룡돈대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본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계룡돈대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본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강화도 계룡돈대
돈(墩)은 봉화를 올리는 곳이고, 대(臺)는 적의 동정을 살피는 곳이니,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시설이다. 강화도에는 관방유적인 진(鎭), 보(堡), 돈대(墩臺)가 있는데 돈대는 진과 보에 비해 규모가 작다. 강화도 해안선은 약 100km 정도, 여기에 53개의 돈대가 자리한다.
해안지역에 지형지물을 활용해 높은 곳에 설치한 돈대는 밖으로 성곽을 쌓고, 안에는 포안(砲眼)을 설치하였다.

계룡돈대 역시 바윗덩어리를 기반으로 하면서 성돌을 쌓고 성곽을 만들어 요새화하였다. 게다가 계룡돈대가 위치한 곳은 해변의 돌출 부위, 삼면이 해변을 향해있어 천연의 요새다. 해변은 서해안 갯벌이라 밀물이든 썰물이든 접근이 만만치 않고, 반대쪽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라 숨을 곳이 없어 역시 접근이 어렵다.

무태돈대 너머로 교동대교가 보인다. 계룡돈대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본 모습
무태돈대 너머로 교동대교가 보인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연미정이 있는 월곶돈대 위에 낮달이 걸려있다. 계룡돈대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본 모습
연미정이 있는 월곶돈대 위에 낮달이 걸려있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숙종 5년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는 계룡돈대 명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숙종 5년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는 계룡돈대 명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강화 53돈대 중 유일하게 축조연대 표시
계룡돈대에 오르면 입구 왼쪽 석축 하단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강희일십팔년사월일경상도군위어영(康熙一十八年四月日慶尙道軍威御營)’으로 강희18년은 숙종 5년인 1679년을 의미한다. 이해 4월에 계룡돈대를 완성했다는 표시이며 경상도 군위(軍威)의 어영군사(御營軍士)들이 축조했다는 말이다. 강화도 돈대 축조를 위해 경상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조선 숙종(제19대 왕, 재위:1674~1720) 때는 병자호란에 강화도가 함락되었던 터라 강화도 해안마다 돈대를 설치하고 해안경비를 강화하도록 하였다. 당시 병조판서인 김석주(金錫胄)에게 강화도 지형을 순찰하게 한 뒤, 어영청 소속 어영군 4,300명과 황해도ㆍ강원도ㆍ함경도 승군 8,000명을 동원하여 6진(鎭) 7보(堡) 9포대(砲臺) 53보루(堡壘)를 축조하였다.

당시로는 대규모의 국책사업인 셈이다. 이때 48개의 돈대가 축조되었는데 명문이 발견된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돈대 축조에 80일이 걸렸다고 하는데, 채석 및 운반과 준비기간을 포함하면 6개월 정도 소요되었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하였다.

후애돈대 여장 사이로 보이는 풍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후애돈대 여장 사이로 보이는 풍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강화나들길 16코스로 연결되는 비경
돈대 안으로 들어가면 길쭉한 장방형의 내부 공간이 펼쳐지며 해안을 향해 포를 쏠 수 있도록 포안이 설치되어 있다. 계룡돈대의 크기는 30m吐m 정도이며 한 면의 석축 높이는 2m 정도 된다. 돈대에 올라서면 서해안 갯벌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물결 위에 햇살이 반짝이는 것도 아름답지만, 진한 잿빛 갯벌 위에 햇살이 떨어지는 반짝임은 이색적인 광경이다. 바람 소리와 물새 소리, 갯벌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이 한가롭다.

계룡돈대에서 바라보면 바다와 논 사이에 제방을 쌓은 경계가 뚜렷한데 이는 고려 시대부터 땅을 간척해 온 흔적이다. 바다와 논 사이 제방길은 창후리에서 외포리까지 이어지는 강화나들길 16코스(13.5km)의 일부로 도중에 망월돈대와 계룡돈대가 있다. 망월평야에서는 먹이를 찾아온 철새 무리가 동시에 날아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바다와 평야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나들길 16코스의 이름은 ‘서해 황금 들녘길’이다. 망월평야가 황금 들녘이 되었을 가을철에 최고의 경관을 제공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월곶돈대에서 사진 촬영 중인 방문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월곶돈대에서 사진 촬영 중인 방문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북녘땅이 한눈에 보이는 월곶돈대
아름다운 강화 팔경 중에 ‘연미정 달맞이’가 있다. 연미정은 강화도 동북쪽 해안 모퉁이에 세워진 정자다. 연미정에서 보면 물길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 앞을 지나는데 그 모양이 제비 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 되었다. 연미정은 그 역사가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골항쟁을 위해 강화로 천도한 고려 고종(제23대 왕, 재위:1213~1259)이 구재생도(九齋生徒)를 모아놓고 하과(夏課)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돌기둥 10개 위에 팔각지붕이 올려진 연미정에 앉으면 연미정을 빙 둘러싼 성곽이 보인다. 동그란 형태가 아름다운 월곶돈대로 30~40명의 병사가 주둔했던 곳이다. 돈대 성벽 아래쪽에 불랑기포 등을 쏠 수 있는 포안이 있고 위쪽 여장에는 소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설치되어 있다. 다른 돈대와 달리 출입문이 동그란 홍예문이라 군사시설 같지가 않다. 아래쪽으로 월곶진이 보이는데 문수산성과 마주 보며 강화해협 상류이자 한강 입구를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다른 진, 보에 비해 계급이 높은 종3품인 첨사가 담당했다. 월곶진 산하에는 옥창돈, 월곶돈, 휴함돈, 적북돈이 있었다.

월곶돈대에 서면 북쪽 바다 건너로 육지가 보이는데 북녘땅인 황해도 개풍군이다. 그 사이에 우리 땅도 북한 땅도 아닌 ‘유도’가 있다. 월곶돈대는 강화도 북단 민통선 지역에 위치하기에 해안선에 철조망이 처져 있고 경계가 삼엄하다. 북쪽이나 초소, 철조망 등 군사시설을 사진 촬영하면 경고 방송이 나오니 신경 써야 한다.

분오리돈대 아래 쪽 바다에 설치된 산책데크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분오리돈대 아래 쪽 바다에 설치된 산책데크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분오리 돈대 아래로 분오리항이 보인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분오리 돈대 아래로 분오리항이 보인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동막해변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는 분오리돈대
강화도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는 동막해변은 활처럼 휘어진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동막해변 남쪽에 있는 분오리돈대는 강화도 가장 남쪽에 있는 돈대로 남쪽 바다 전체를 책임진다. 때문에 관아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관리하던 군사시설이다.

자연 지형을 이용했기에 분오리돈대는 반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바다 쪽으로 툭 돌출된 곳에 조성되어 시야가 매우 넓다. 삼면 아니, 사면이 바다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오른쪽으로 동막해변이 있고, 정면으로 강화도 남쪽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며, 왼쪽으로는 자그마한 배들이 떠있는 곳에는 분오리 항이 있다. 물이 빠져나가면 세계 5대 갯벌에 속하는 강화 남단 갯벌이 4km 정도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이때가 되면 분오리 항의 배들이 갯벌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재미난 광경을 볼 수 있다.

분오리 돈대 아래쪽에는 돈대로 올라가는 진입로 입구에서 분오리 항까지 이어지는 해안 산책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중간에 사진 촬영 포인트와 바닷가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굴암돈대 여장에 걸린 석양.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

포안에서 바라보는 서해안 최고의 낙조, 굴암돈대
굴암돈대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요새화된 돈대로 아는 사람만 찾는 곳이다. 모양은 타원형이며 최근까지 군부대 관할 하에 있던 돈대다. 막힘없이 탁 트인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돈대의 여장과 성벽에 걸쳐지는 낙조는 황홀함 그 자체다.

강화도 서북쪽 창후리 선착장 인근의 무태돈대 역시 낙조 포인트다. 무태돈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창후리 항, 정면으로 석모도, 오른쪽으로 교동도와 교동대교가 보인다. 그 외 화도돈대는 돈대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접근성이 좋고, 후애돈대는 투박하지만 바다 쪽으로 놓인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운 좋으면 천연기념물 노랑부리저어새도 볼 수 있다.

무태돈대 아래쪽에는 군부대 초소가 억새 풀 사이로 보인다. 후애돈대, 월곶돈대도 과거 군사시설이었던 돈대 옆에 현재의 군사시설인 초소가 함께한다. 한양도성으로 향하는 물길의 길목에서 외세의 침략을 온몸으로 막아내던 돈대는 격랑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에게 질곡의 세월을 보여주는 역사의 흔적이다. 수많은 젊은이가 밤낮으로 바다를 지키던 자리에 앉아 상념에 잠겨본다. 쉼 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물새들의 울음소리는 돈대 벽에 부딪쳐 더욱 크게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그 소리는 여전할 것이다.

추천! 강화도 돈대 7곳
분오리돈대 인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 185-1
후애돈대 인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
화도돈대 인천 강화군 선원면 연리 54
굴암돈대 인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487
월곶돈대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
무태돈대 인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산151-4
계룡돈대 인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282

 

강화도 관방유적
강화도에는 삼국시대부터 17ㆍ18세기, 최근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요충지로 6진(鎭) 7보(堡) 9포대(砲臺)와 더불어 53돈대가 축조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5진(초지진, 덕진진, 용진진, 월곶진, 제물진)과 7보(광성보,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철곶보, 승천보)를 합쳐 강화 12진보(鎭堡)라 한다. 진과 보는 대대, 중대 규모이며 53개의 돈대는 초소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세월이 흐르며 허물어지고 유실되었으나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은 돈대가 많다. 이러한 강화도 관방유적(關防遺蹟)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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