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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아날로그 기차여행] 영화 '편지' 속 아름다운 간이역, 춘천 경강역
[아날로그 기차여행] 영화 '편지' 속 아름다운 간이역, 춘천 경강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1.02.05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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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 그대로 남은 경강역 입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모습 그대로 남은 경강역 입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춘천]  영화 <편지>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했던 춘천 경강역.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서정적인 역사 풍경은 누구든 영원한 사랑을 믿었던 순수의 시절로 데려다준다. ‘춘천 가는 기차’는 이제 빠르고 세련된 전철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선 뜨거웠던 청춘 속으로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영화 편지 속의 아름다운 간이역 경강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화 편지 속의 아름다운 간이역 경강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개봉 당시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할 만큼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편지> 덕분에 경강역 입구엔 ‘영화 편지 촬영역’이라고 자랑스레 걸어두었다. 2010년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 되었지만 경춘선의 낭만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레일바이크가 선보이며 여전한 인기를 누린다. 근처 옛 백양리역과 강촌역도 경춘선의 추억을 더듬어 보기 좋다. 백양리역은 플랫폼 위에 역사가 들어선 모습이 흥미롭다. 대학생들의 MT 명소로 꼽히던 옛 강촌역 풍경도 뜨거웠던 청춘의 한 자락을 떠올리게 한다.     

1930년대 간이역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경강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1930년대 간이역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경강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추억 속으로 띄우는 <편지>
이성과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던 영화가 <편지>였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울적했던 나를 위로하겠다고 친한 오빠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는데, 영화 중반부터 어깨를 들썩이더니 결국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며 울었던 건 오히려 그였다. 열일곱의 난 부끄러운 마음에 어서 빨리 영화가 끝나길 바랐다. 

남자주인공인 환유(박신양 분)가 뇌종양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드디어 극장을 빠져 나갈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 그런데 웬걸, 슬픔에 빠진 여자주인공 정인(故 최진실 분)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환유가 쓴 애절한 편지가 한통, 두통 쌓일 때마다 내 짜증도 쌓였다. <편지>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마지막 비디오테이프가 건네지고 객석이 온통 울음바다로 물든 후에야 도망치듯 극장을 나왔다. 한국 최고의 멜로영화가 전혀 다르게 기억된 순간이다. 

영화 <편지>를 다시 만난 건 이십대 후반이었던 2008년의 가을.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앳된 얼굴의 배우 최진실을 만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건너야 할 사막을 가지고 있다”는 그녀의 담담한 내레이션과 함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십여 년이 흘러 이제야 정인의 마음으로 펑펑 울 수 있는데, 저토록 아름다운 배우는 이미 세상에 없다. 아마 내 또래에게 <편지>는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테다. 

기차 대신 플랫폼을 채운 레일바이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차 대신 플랫폼을 채운 레일바이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경춘선 철로 위로 달리는 전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경춘선 철로 위로 달리는 전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편지>로 기억되는 특별한 간이역
경강역은 영화 <편지>에서 정인과 환유를 연결해주는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다급하게 기차에 오르던 정인이 환유와 부딪혀 지갑을 떨어트린 곳도, 사실은 이미 정인을 마음에 두었던 환유가 그녀의 눈에 띄려고 예쁜 화분을 무료로 놓아두었던 곳도, 세상을 떠난 환유를 대신해 정인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곳도 모두 경강역이다. 개봉 당시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할 만큼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편지> 덕분에 경강역의 인기도 뜨거웠다. 입구엔 ‘영화 편지 촬영역’이라고 자랑스레 걸어두었다. 

강산도 두어 번 바뀌었을 세월 동안 한국 최고의 멜로영화란 찬사도, 멜로퀸의 타이틀도 여러 번 그 주인이 변했다. 김현철의 노래로 유명한 ‘춘천 가는 기차’마저 복선화되면서 2010년 경강역은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 되었다. 하지만 70여 년 동안 기찻길 위에 쌓인 무수한 추억을 마냥 버려둘 수는 없었다. 2012년 폐선된 경춘선 구간을 활용한 레일바이크가 선보였다. 

경강역에서 출발한 레일바이크는 싱그러운 느티나무터널을 지나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높이 30m의 아찔한 철교를 횡단한다. 경춘선의 낭만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코스뿐 아니라 추억의 명화 <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경강역의 서정적인 풍경 덕분에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여행지가 됐다. 

경강역의 역명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란 의미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영화 속에서 정인과 환유를 연결해줬던 것처럼, 경강역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수많은 연인과 가족을 잇는 공간으로 남은 셈이다.      

영화 편지 촬영역 안내판.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화 편지 촬영역 안내판.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경강역
주소 강원 춘천시 남산면 서백길 57  

활짝 핀 진달래꽃 옆으로 달리는 레일바이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활짝 핀 진달래꽃 옆으로 달리는 레일바이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강촌레일파크
홈페이지www.railpark.co.kr
운행시간 09:00 10:30 12:00 14:00 15:30 17:00  *경강역 하절기 기준
요금 4인승 3만5000원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강촌역 포토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강촌역 포토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백양리역의 옛 풍경을 담은 사진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백양리역의 옛 풍경을 담은 사진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플랫폼에 역사가 자리한 독특한 형태의 옛 백양리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플랫폼에 역사가 자리한 독특한 형태의 옛 백양리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경춘선의 낭만이 그립다면 옛 백양리역ㆍ강촌역
과거 경강역에서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실으면 백양리역과 강촌역을 거쳐 춘천시내로 향했다. 아마 <편지> 속 정인도 이 노선을 따라 춘천의 대학을 오갔을 것이다. 경춘선 복선화와 함께 백양리역과 강촌역은 멀끔한 신역사로 옮겨갔지만 다행히 옛 기차역은 그 자리에 남았다. 

백양리역은 플랫폼 위에 역사가 들어선 모습이 흥미롭다. 이런 형태는 일본에서도 모두 사라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옛 팔당역과 백양리역이 남아 있다. 같은 형태로 지어졌던 삼척 마차리역과 남양주 평내역, 부산 거제역은 안타깝게도 모두 철거됐다.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한 팔당역과 달리 백양리역은 주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널찍한 앞마당엔 다양한 휴식공간도 설치되고 역사 앞 일부 철로도 복원해 옛 풍경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역무실과 대합실은 백양리역에서 사용했던 철도 관련 물품과 사진들을 전시한 공간으로 개방된다. 2016년엔 한 통신회사 TV광고에도 등장했는데, 당시 핫한 여배우였던 김고은을 모델로 내세워 간이역 특유의 감성을 물씬 뽐냈다. 

옛 강촌역은 경춘선의 화룡점정 같은 곳이었다. 대학생들의 MT 명소로 꼽히면서 수많은 젊음들이 몰려들었고, 청량리역을 출발한 열차가 강촌역에 도착할 때까지 덜컹이는 기차에선 노래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는 좌석이 없어 열차와 열차 사이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 가는 신세였음에도 마냥 즐거워 깔깔거렸다. 

주말이면 기차가 도착할 때마다 우르르 쏟아냈던 청춘들을 이제는 만나기 어렵다. 당시에도 제법 큰 규모였던 강촌역은 기차가 다니지 않으니 더욱 썰렁해졌다. 이곳 역시 레일바이크역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강촌역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아쉬움만 남는다. 그럼에도 낡은 역사 구석구석 자꾸 돌아보게 되는 건 뜨거웠던 우리 청춘의 한 자락이 그곳에 묻어 있기 때문이리라.   

과거 경강역과 강촌역 사이에 자리했던 백양리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과거 경강역과 강촌역 사이에 자리했던 백양리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구 백양리역
주소 강원 춘천시 남산면 북한강변길 910-14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한 채 썰렁하게 남은 옛 강촌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한 채 썰렁하게 남은 옛 강촌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구 강촌역
주소 강원 춘천시 남산면 강촌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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