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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제주 오름과 숲] 제주의 땅 끝에 우뚝 선 오름을 가다, 지미오름&말미오름
[제주 오름과 숲] 제주의 땅 끝에 우뚝 선 오름을 가다, 지미오름&말미오름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02.09 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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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봉 일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봉 일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옛적에 제주 사람들은 서쪽 끝을 섬의 머리로, 동쪽 끝을 꼬리로 여겼다고 한다.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마주보고 있는 그곳에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지미오름이 솟아 있다. 투명하리만치 맑은 쪽빛 바다와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을 품은 제주의 땅 끝에 선 오름이다. 
제주도는 형태가 고구마처럼 약간 길쭉하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내려오는 민담에 서쪽 한경면 두모리는 섬의 머리이고, 동쪽 끝에 있는 지미오름은 꼬리로 칭했다고 한다. 한자로 풀자면 지미(地尾), 이름 그대로 ‘땅 끝’이란 뜻이다. 오름 아래에는 옛 농가주택들이 모인 종달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종달(終達)’ 역시 ‘맨 끝에 있는 땅’이란 의미다. 옛적에 제주목사가 부임해 순시를 나설 때도 가장 마지막에 당도하는 고을이 종달리였다고 한다. 

지미오름의 일출. 우도와 성산일출봉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오름의 일출. 우도와 성산일출봉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오름 둘레길. 숲길을 걷는 듯하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오름 둘레길. 숲길을 걷는 듯하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올레길의 대미를 장식하는 땅 끝 오름 
중산간에 위치한 오름들과 달리 지미오름은 해안과 접해있어 표고(165.8m)와 비고(160m)의 차이가 크지 않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지만 지미오름이 품은 아름다움은 예상을 훌쩍 넘어선다. 땅끝 마을 종달리를 여행한다면 지미오름은 무조건 오르기를 권하는 추천 코스 1순위다. 

과거에는 오름 주변이 갯벌로 되어 있어 바닷물이 들고 나며 마치 섬처럼 보였다고 하는데 종달리 소금밭 간척사업 이후 지형이 바뀌면서 지금 같은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예전에 바닷물이 차올랐을 때의 모습은 정말 땅 끝에 선 오름 같았을 것이다.  

올레꾼이나 도보 여행자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던 지미오름은 이젠 제법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단정히 정비된 주차장 한쪽에는 깔끔하게 관리되는 화장실 건물까지 있다. 해안이나 일주도로를 지날 때 무심코 바라만 보던 지미오름에 사람들 발걸음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2012년도 올레길 21코스가 개장되면서 부터다. 올레길 말미에 지미오름 등정이 포함되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올레꾼들이 이곳을 지나간다. 

섬을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장소로 이보다 안성맞춤인 장소가 있을까. 올레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지미오름은 이듬해 예능 프로그램인 <아빠! 어디가?>에 소개되기도 했다. 만능 MC인 김성주와 어린 아들이 함께 정상까지 올랐는데 지미오름의 숨은 비경이 브라운관을 통해 펼쳐지면서 세간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지미오름 탐방로 입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오름 탐방로 입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푸른 바다와 정겨운 마을을 품은 비경
지미오름 탐방로는 주차장 바로 왼편에서 시작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오르막 구간이 계속되는 탓에 한두 번 쉬어갈 마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본다. 다행히도 정상까지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오르기가 어렵지 않다. 소나무가 많이 자라기 때문인지 탐방길 내내 마른 솔잎이 깔려 푹신한 느낌이다. 소나무 사이로 낮은 관목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탐방로 초입 구간은 나뭇가지들이 터널을 이뤄 햇빛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피해 시원하고 청량한 기분으로 오를 수 있다.  

비탈진 계단길을 오르다 보니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이 가빠온다. 정상까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나와 같은 이들이 많은 건지 탐방로 옆 빈터에 작은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올라올 땐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의자에 앉아보니 숲 사이로 종달리 마을과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삐죽 솟은 나뭇가지에는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마주보며 매달려 있다. 잠깐 올라왔을 뿐인데 이렇게 어여쁜 풍경이 펼쳐지다니, 과연 정상에는 어떤 비경이 숨어 있을까. 갑자기 마음이 바빠져 오래 쉴 수가 없었다. 

숨을 헉헉 대며 길을 재촉하는 동안 몇 번을 뒤돌아보며 정상까지 오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미오름은 여러 번 쉬어가며 천천히 오른다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체력이 좋다면 20분 만에도 정상을 밟을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던 계단이 끝이 나고 드디어 정상 입성. 가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탁 트인 기가 막힌 절경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멋진 광경 앞에선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같은 마음이 되는 것 같다. 이제 막 정상을 밟은 엄마와 초등학생 남짓한 아들이 나란히 선 채 연신 감탄사를 터트린다. 

지미오름은 분화구 한 쪽이 무너져 내린 말굽형 형태여서 분화구 둘레는 도는 탐방로는 없다. 대신 정상에 위 아래로 나뉜 두 개의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어느 쪽이건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엷은 코발트빛으로 물든 바다에는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보석처럼 빛나고 봄의 기운을 받은 푸릇한 밭들과 정다운 마을이 발랄하게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속에 빠르게 움직이는 건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들 뿐이다. 하늘의 구름도,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도, 정갈하게 가꿔진 밭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도 모두 평온한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듯하다. 고요한 풍경에 취해 있다 보면 시간이 하릴없이 흘러간다.  

올레길과 둘레길까지 두루 섭렵해볼까
전망대 사이에는 산불감시초소와 국토 측량 기준 자료가 되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이 있는 곳은 옛 봉수대 터로 추정되고 있다. 지미오름은 흔히 지미봉으로도 불리는데 이름 뒤에 봉(峰)이 붙으면 대부분 봉수대가 설치된 경우가 많다. 옛날에는 높은 산에 봉수대를 설치해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했으며 제주에서는 오름들이 이런 역할을 담당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종달리 해안에 인접한 지미봉에도 봉수대가 있어 북서쪽으로 왕가봉수, 남동쪽으로 성산봉수와 교신했다고 한다. 섬을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담당했던 봉수대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봉수를 올렸던 그곳에서 후손들은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날을 다짐한다. 지미오름은 다랑쉬오름과 더불어 동부에서 이름난 일출 명소이다. 특히 우도와 성산일출봉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은 이곳만의 특별한 해맞이를 선사한다. 계절에 따라 태양의 위치가 조금씩 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감동의 크기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꿀맛 같은 아침잠을 포기하고 나선 발걸음을 결코 헛되지 않게 해준다.  

내려갈 때는 올레길 표식을 따라 반대쪽 길을 이용해도 된다. 경사가 좀 더 심한 구간도 있지만 탐방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길이다. 올레길로 내려오면 탐방로 반대편으로 도달하게 되는데 지미오름 아래쪽에 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주차장까지 어렵지 않게 되돌아올 수 있다. 올레길과 맞닿은 둘레길은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거리가 비슷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주차장까지 약 20~30분 정도 걸린다. 

오른쪽 길은 무너져 내린 분화구 안쪽 숲길을 거쳐 가며 걷는 이가 별로 없어 호젓하게 사색하며 걷기 좋다. 무성한 나무 가지 사이를 훑어가는 바람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름 한쪽 면에 무덤이 가득한 종달리 공동묘지를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오름은 삶을 영위하는 공간인 동시에 망자를 위한 안식처임을 말해주고 있다.     

철새도래지에서 본 지미봉.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철새도래지에서 본 지미봉.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지미오름 
주소 제주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3-1 

말미오름에서 바라본 그림 같은 풍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말미오름에서 바라본 그림 같은 풍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오름 아래 옹기종기 집들이 모인 종달리 마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오름 아래 옹기종기 집들이 모인 종달리 마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지미오름과 닮은 꼴인 말미오름 
종달리 마을을 사이에 두고 지미오름과 마주보고 있는 말미오름은 여러모로 닮은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이름에 담긴 뜻이 비슷하다. 말미오름 또한 땅 끝에 있어 말 미(尾)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밖에 오름 형태가 됫박 같다고 해 두산봉(斗山峰)이라 부르며, 혹자는 동물의 머리처럼 보인다고 해 머리 두(頭)자를 쓰기도 한다. 또한 지미오름과 말미오름 모두 올레길이 거쳐 간다. 지미오름이 올레길의 피날레를 장식한다면 1코스에 위치한 말미오름은 올레길을 열어나가는 오름이라 할 수 있다. 

말미오름은 종달리와 시흥리에 걸쳐 있는 이중식 화산체로 봉긋하게 솟은 여느 오름들과 달리 수십 미터에 걸쳐 절벽을 이루고 있다. 오름 안쪽은 완만한 구릉 지대로 소와 말을 방목해 키우는 터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때때로 오름을 걷다 마소 무리를 만나기도 하는데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길을 비켜주면 된다. 말미오름은 비고가 101m 밖에 되지 않은 데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들이는 수고에 비해서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다. 약 10~15분 정도면 전망대에 닿는데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에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가로 세로 반듯한 밭담과 알록달록한 집들 너머로 파랗게 펼쳐진 바다는 지미오름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에 젖게 한다. 내친 김에 말미오름과 이어진 알오름까지 다녀와 보자. 너른 들판을 품은 알오름은 시야에 가리는 것이 없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절경을 뽐낸다. 특히 봄날에도 여전히 흰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이 백미를 이룬다.  

두산봉 입구 밭담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 입구 밭담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말미오름(두산봉)
주소 제주 제주시 성산읍 시흥리 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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