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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 고향] 시인 서봉교와 함께 하는 신선 여행, 신선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곳, 무릉도원, 영월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 고향] 시인 서봉교와 함께 하는 신선 여행, 신선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곳, 무릉도원, 영월
  • 이동미 여행작가 
  • 승인 2021.03.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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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선정에서 시를 읽는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정에서 시를 읽는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영월] 흰 눈이 내린 겨울, 한 사내가 개울물에 떠내려 오는 복숭아 꽃잎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갔다. 버드나무 아래에선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바둑을 두고, 여인과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는 곳. 사흘을 놀다 돌아오니 삼십 년이 흘렀다는 그런 곳이 정말 있을까?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그곳을 찾아간다.

한반도의 지도를 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릉도원’이라는 곳이 정말 있다! 행정구역명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하회마을처럼 물줄기가 부드럽게 마을을 휘감아 돌고 그 안에 산과 들, 논과 밭이 춤을 추듯 어우러지는 그런 곳이다. 

서강 물줄기 앞의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서강 물줄기 앞의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국 아름다운 하천 중 한 곳인 무릉도원 강줄기.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전국 아름다운 하천 중 한 곳인 무릉도원 강줄기.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서강 줄기 깊숙한 곳에 안긴 마을
삼천리 금수강산은 비단에 금실로 수를 놓은 듯 물과 산이 어우러진다. 강원도 영월 역시 첩첩산중에 골골이 물줄기가 굽이친다. 서울의 젖줄인 남한강 상류의 아름다운 동강(東江)은 영월 합수머리 동쪽에서 흘러오고, ‘서강(西江)’은 서쪽에서 흘러든다. 동강과 비교해 덜 알려진 서강은 사람의 손을 적게 타 그런지 비경이 곳곳에 숨어있다. 

향기로운 술이 샘솟는다는 주천(酒泉)이 있고 호랑이 무덤이 봉긋하며, 더 들어가면 무릉도원이 있다. 흰 수염 날리며 바둑 두는 노인이 있었다던 신선마을, 무릉도원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선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무릉도원에서 태어나 무릉도원의 풍광을 시(詩)로 지으며 사는 서봉교 시인이 그중 하나, 오늘은 서봉교 시인과 무릉도원에서 신선놀음을 해본다.

요선정 석탑의 범어를 살펴보는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정 석탑의 범어를 살펴보는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정에서 바라보는 풍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정에서 바라보는 풍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정에 걸린 숙종대왕 어제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정에 걸린 숙종대왕 어제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신선을 맞이하는 정자, 요선정

첫걸음 한 곳은 요선정(邀僊亭)이다. 맞을 요(邀), 선인 선(僊) 자를 쓰니 ‘신선을 맞이하여 함께 노니는 정자’라는 뜻이다. 신선과 마주 앉아 시를 읊고 바둑을 두기에 딱 좋은 팔작지붕의 아담한 정자는 구불구불 물줄기와 우아한 산세를 바라보며 신선처럼 앉아 있다. 그곳에서 시집을 읽으며 청명한 바람을 즐기는 시인의 모습은 신선과 다름이 없다. 20세기에 사는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겉모습만 현대식 의복을 입었을 뿐, 신선이 분명하다. 

시인이 앉은 요선정 정자에는 세월의 흔적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현판이 가득 걸려있다. 요선정기(邀仙亭記), 중수기(重修記) 등 낡은 현판 사이에 금박 현판이 있으니 조선 숙종(肅宗ㆍ제19대 왕, 재위 1674∼1720)의 어제시(御製詩)로 숙종이 읊은 것을 영조(英祖ㆍ제21대 왕, 재위 1724~1776)가 친필로 썼다 한다.

‘… 높은 석벽은 구름에 닿았고 / 맑은 강물은 짙푸르게 이어지도다. / 숲속에는 아름다운 산새가 우짖고 / 봄날 들꽃은 뜰아래에 비추네 / 술 가지고 올라 동자로 하여금 따르게 하니 / 취한 체 난간에 기대어 낮잠이 드네.

’한나라의 임금이 이리도 감탄했으니 요선정의 경관은 가히 신선 세계의 그것임이 틀림없다. 정자 옆에는 3.5m의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과 탑 한 기가 있다. 마애여래상은 머리에 갓 모양의 바위가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방금 단장한 듯 해사한 낯빛이고, 탑에는 뜻을 알 수 없는 범어가 새겨져 있다. 

요선암의 겨울 풍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암의 겨울 풍경.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암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각자.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요선암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각자.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선녀가 목욕하는 바위, 요선암
요선정 아래에는 요선암(邀仙岩)이 있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올록볼록 동그란 바위의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그중 하나에는 세월에 깎여 흔적만 희미하게 남은 글씨가 있다. 조선 중기 문장가이자 풍류가인 봉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이곳 경치에 반해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고 한다. 깊고 동그란 돌개구멍에서는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한다. 또 동글동글 웅덩이에서 신선들이 족탁(足濯)을 즐기며 담소했다고도 한다. 서봉교 시인 역시 시를 한 수 지었다.

“보름이 지나고 달 숨으면 / 요선암(邀仙岩)엔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 신선들 서너 분 요선정 마루에서 바둑을 두는데 …(중략)… 그 신선들은 온데간데없고 / 요선정 마당 한가운데 / 5층 靑석탑만 덩그러니 서 있더라.”

천연기념물 제543호인 요선정 돌개구멍.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천연기념물 제543호인 요선정 돌개구멍.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서강 줄기에서 만나는 짜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서강 줄기에서 만나는 짜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서강 줄기는 시상(詩想)의 보고(寶庫)
서봉교 시인은 이곳 요선암에서 미역을 감으며 놀았고, 요선정으로 소풍을 왔었다. 무릉도원에서 태어난 사람은 ‘신선’이고 ‘신선증(神仙證)’이 있다는 농담 같은 진담이 전해지니 시인은 어릴 때부터 신선이었다. 친구들과 숨바꼭질하고 물장구를 치며 놀던 장소가 신선들의 놀이터였고 선녀들의 물놀이장이었다. 

요선암 돌개구멍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란 뜻으로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543호다. 화강암반의 틈이나 오목한 곳으로 모래나 자갈이 들어가 물살로 인해 소용돌이치면서 바위가 둥글게 움푹 파이는 것이다. 요선암 돌개구멍의 크기는 지름 수십cm에서 1m, 깊이 수십cm에서 2m가량으로 다양하다. 화강암반이 생긴 건 중생대 쥐라기 때이니 요선암 돌개구멍(포트 홀ㆍPot Hole)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포트 홀도 흥미롭지만, 시인이 어릴 적 들여다보며 놀던 ‘짜개’도 재미있다. 짜개는 바위가 갈라진 틈을 말하는데 시인의 시에도 등장한다. “어린 시절 집 앞 강에서 잠수를 하면 꼭 들려보는 짜개 / 그곳은 늘 쏘가리집이였다. …(중략)… 짜개도 사람으로 말하면 쉼터라고나 할까…(후략).”시인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시상을 돋우는 시의 소재다. 이렇듯 무릉도원을 휘돌아 감싸는 서강 줄기에는 갖가지 이야기가 소복소복 쌓여 있고 시인의 머릿속엔 시구가 강물처럼 흐른다. 

무릉도원의 물돌이를 설명하는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무릉도원의 물돌이를 설명하는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무릉도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물돌이.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무릉도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물돌이.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물돌이 마을
시인과 함께 무릉도원의 물돌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른다. 도원리에서 흘러내린 물은 설구산을 중심으로 무릉리를 지나 복주머니 모양으로 휘돌아 감긴다. 이 모습의 일부를 볼 수 있는 곳이 무릉리의 불정사 뒤쪽 쌍수산 중턱 전망대다. 불정사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소나무 숲길이 펼쳐지고, 새소리 상큼한 길을 올라가다 병풍암이 나오면 거의 다 왔다는 신호, 곧이어 나무데크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오르면 서강 줄기가 구불거리며 감입곡류(嵌入曲流)의 형상을 보여준다. 이렇듯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자라서일까? 시인의 시 중에 <조만간 사라질 말들을 위하여>가 있다. 자연이 만들고 사람들이 나누던 것들에 대해 애정하는 마음을 담은 시다.

 “봉당, 구들, 지게작대기, 바지랑대, 묵낫, 보고래, 깍지깡, 선소리 …(중략)… 수천 년 내려온 말들의 부스러기가 살고 살아서 / 여기까지 왔는데 / 얼마나 귀한 언어들이 빠르고 각박한 시간들의 핑계에 쫓겨 사라질까?…(하략).”

천도복숭아를 먹고 서로를 보듬으며 평화롭게 사는 무릉도원, 그곳에서 신선 시인과 하루를 지내니 나도 신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돌돌돌 물소리를 들으며 거니는 하루 동안의 신선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산골짜장면(구 사재식당)의 맛난 간짜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산골짜장면(구 사재식당)의 맛난 간짜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무릉도원 신선 여행! 시인 서봉교의 Pick 5 
1. 요선정 요선정과 마애여래좌상, 석탑을 한 앵글에 넣어 사진을 찍어보자. 주소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운학로 13-39. 
2. 요선암 ‘요선암’이라는 양사언 글씨를 찾아보자. 요선정 아래 강가에 위치. 
3. 무릉도원 전망대 불정사 뒤쪽으로 올라가면 되는데 안내 표지판은 없다. 
4. 법흥사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이다. 주소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문의 033-374-9177 
5. 산골 짜장면(구 사재식당) 사재강 옆으로 간짜장이 맛난 집이다. 주소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191 문의 033-374-9109

 

미니 인터뷰. 
 
서강 줄기의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서강 줄기의 서봉교 시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시인 서봉교는 누구?


시인 서봉교는 강원도 영월 무릉도원면에서 태어나 출생지 근처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2006년 월간 <조선 문학>으로 등단, 시집 <계모 같은 마누라>와 <침을 허락하다>를 발표했다. 2009년 <사재강에서> 외 9편으로 제14회 원주문학상을 수상했고, 국제 PEN 한국본부 등 다수의 문인협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은 현재 원주문인협회 부지부장이면서 요선문학회를 이끄는 회장이기도 하다. 요선문학회는 고향인 무릉도원의 요선정을 중심으로 <요선정과 사재강 그리고 사람>을 주제로 2009년부터 매년 추석 즈음에 요선정에서 두 달간 시화전을 개최한다. 여기서 사재강은 법흥사가 있는 법흥계곡에서 흘러내려 요선정을 지나 무릉도원을 감싸는 물줄기다.

법흥사 적멸보궁.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법흥사 적멸보궁.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불상을 모시지 않는 법흥사 적멸보궁.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불상을 모시지 않는 법흥사 적멸보궁.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고려시대에 조성된 높이 3.5m의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고려시대에 조성된 높이 3.5m의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법흥사는 사자산 또는 사재산(四財山)에 자리하는데, 사재는 연화봉 석굴에 많았다는 꿀, 먹을 수 있는 흙인 전단포, 칠기의 도장재료인 옻나무, 산삼 등 네 가지 재보(財寶)가 많이 나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도로명 주소가 생기며 잊히기에 사재산, 사재강, 사재식당 등을 기억하기 위해 시인은 사재 강이라는 명칭을 넣었다. 시화전을 열 때는 요선정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튼튼하고 멋진 전시판을 만들기보다 옛날처럼 소나무에 시를 거는 자연 친화적인 전시를 한다. 매년 발간하는 <요선 문학>은 한 권에 50편의 시만 정제해 발간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어릴 때부터이다. 책과 산과 들과 강을 좋아하던 문학 소년은 시 동아리를 만들고 이끌며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시는 시인에게 많은 것을 준 고향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은 ‘헌정시(獻呈詩)’들이 주를 이룬다. 이렇듯 자연과 하나 되는 신선 시인이 된 것은 이미 어릴 때부터 예견된 듯하다. 고향과 사람 그리고 그 어떤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감사하며 ‘시(詩)로 보답하는 마음’을 현대인에게 은연중에 알려 주는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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