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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기찻길 너머 삶을 엿보다
기찻길 너머 삶을 엿보다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1.04.12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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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기차여행] 순천철도문화마을
담벼락에 걸린 다양한 볼거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담벼락에 걸린 다양한 볼거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순천] 최근 한 방송사에서 호젓한 간이역을 배경으로 역무원의 생활을 직접 체험해보는 예능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푸른 제복을 갖춰 입고 하루의 대부분을 기찻길 위에서 보내는 이들은 무수한 만남과 이별,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지키는 든든한 조력자다. 알고 보면 일제강점기 어두운 수렁 속에서 한국철도의 역사를 지켜낸 것도 이들이다. 순천철도문화마을에선 그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전라선과 경전선이 교차하는 순천역은 근대를 대표하는 교통거점이었다. 일제강점기 다수의 일본인 철도노동자들이 순천에 머물게 되면서 1936년 조곡동 일대에 이들을 위한 대규모 관사마을이 조성됐다. 무려 152세대의 대단위 주택단지에 병원과 목욕탕까지 갖춘 신도시였다. 현존하는 유일한 철도관사마을인 이곳은 주민들의 주도 하에 철도문화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박물관과 게스트하우스, 전망대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마을 뒷길 따라 걷다보면 순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죽도봉도 자리한다. 순천역 근처 청춘창고도 함께 둘러보기 좋다. 

순천철도마을박물관의 다양한 포토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순천철도마을박물관의 다양한 포토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한국철도의 역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한국철도의 역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순천역의 화려했지만 아픈 과거
순천은 근대를 대표하는 사통팔달의 교통도시다. 철도가 주된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에 전라선과 경전선이 교차하는 순천역은 전라남도와 서울, 그리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주요한 거점이었다. 교통환경이 다양해진 지금도 순천역은 KTX 정차역으로 늘 북적인다. 현대적인 외관의 대규모 역사는 어쩐지 간이역 여행의 감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기찻길 너머, 순천역 뒤편 조곡동으로 넘어가면 순천역이 간직한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순천역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광주 송정리역까지 경전선이 개통되고, 1936년 익산까지 전라선이 연결되면서 순천역은 일제 자원수탈의 근거지로 성장했다. 당시 주요한 철도업무는 일본인들이 맡고 증기기관차를 움직이는 고된 허드렛일은 조선인들의 몫이었다. 생계를 위해, 때론 기관사 제복을 향한 무모한 동경으로 앳된 소년들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욕설과 구타가 이어졌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은 물러갔지만 잡일만 하던 조선인들은 철도운행과 관련한 정보나 기술을 알지 못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조합해 어찌어찌 기차를 운행하기는 했지만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특히 물이 떨어지는 터널에선 바퀴가 헛돌아 불을 때던 승무원들이 뜨거운 증기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1949년엔 중앙선 죽령터널을 지나던 열차가 탈선해 48명의 승객이 질식사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120년이 넘는 한국철도의 역사는 이 같은 좌절과 아픔을 딛고 일어섰기에 가능했다.
     
INFO 순천역
주소 전남 순천시 팔마로 135 

관사마을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주민해설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관사마을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주민해설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현존하는 유일한 철도관사마을
다수의 일본인 철도노동자들이 순천에 머물게 되면서 1936년 조곡동 일대에 이들을 위한 대규모 관사마을이 조성됐다. 철도국장이 머무는 4등 관사부터 8등 관사까지 무려 152세대의 대단위 주택단지였다. 여기에 병원과 구락부(클럽), 목욕탕, 수영장 등 편의시설도 포함됐다. 관사들 사이로 바둑판처럼 반듯한 길도 냈다. 순천 최초의 계획도시였던 셈이다. 

관사는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졌다.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삼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바닥에는 다다미를 깔았다. 출입문을 북쪽으로 내고 남쪽엔 나무를 촘촘하게 심은 산울타리가 자리한다. 해방 후 조선인 철도노동자들의 숙소로 사용됐던 관사는 1970년대 개인들에게 매각됐다. 한때 일본인들만 출입이 가능했던 화려한 신도시에 일반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짓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럼에도 60여 채 정도가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북쪽에 자리한 옛 관사 출입문.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북쪽에 자리한 옛 관사 출입문.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근대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관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근대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관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마을을 걷다 보면 근대 일본가옥의 특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집들이 생각보다 흔하다. 일본은 순천뿐 아니라 서울 용산과 대전, 부산, 경북 영주에 대규모 관사마을을 건설했는데 이처럼 지금껏 그 원형이 남아 있는 건 순천이 유일하다. 특히 등급별로 조금씩 달랐던 가옥의 규모나 형태를 가늠해볼 수 있어 역사적, 건축적 가치도 높다.  

카페로 다시 태어난 옛 철도배급소.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카페로 다시 태어난 옛 철도배급소.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담벼락 곳곳에 걸린 추억의 흑백사진.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담벼락 곳곳에 걸린 추억의 흑백사진.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마을의 특별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주민 인터뷰.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마을의 특별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주민 인터뷰.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조곡동 주민들을 지난 2011년부터 철도관사마을이 지닌 다양한 자원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철도공사 호남본부장이 쓰던 폐사택이 마을박물관으로 재탄생했고, 2층은 관사 내부를 연상시키는 다다미방 형태의 게스트하우스가 운영됐다. 철도 직원들에게 쌀이나 식료품, 생활용품 등을 배급하던 철도배급소는 카페 ‘기적소리’로 다시 태어났다.

순ㅊ천철도문화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순천철도문화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건물 전체가 열차처럼 꾸며진 외벽과 입구에 깔린 레일 때문에 마을을 찾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포토존으로도 인기다. 이곳에선 철도문화마을이 간직한 특별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담은 지도도 얻을 수 있다. 담벼락에 걸린 흑백사진이나 주민들의 인터뷰, 바둑판 모양의 도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도 마을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INFO 순천철도마을박물관
주소 전남 순천시 자경2길 10-5

죽도봉 전망대에서 만나는 시원스런 풍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죽도봉 전망대에서 만나는 시원스런 풍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죽도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 시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죽도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 시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철도문화마을 전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철도문화마을 전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복원한 고려시대 정자인 연자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복원한 고려시대 정자인 연자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마을 뒷길 따라 걷다보면 순천 시내가 한눈에
조곡동 서쪽 봉우리인 죽도봉은 이름 그대로 대나무가 무성해 조선시대 화살대를 만드는데 사용됐다고 전한다. 마을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전망대에 오르면 순천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데, 저 멀리 순천역과 그 앞을 흐르는 동천이 정답게 느껴진다. 복원한 고려시대 정자인 연자루도 짧은 산책길에 운치를 더한다. 

청춘창고의 다양한 먹거리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청춘창고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청춘창고에서 맛보는 커피.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청춘창고에서 맛보는 커피.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공간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청춘창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공간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청춘창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순천역 근처에 자리한 청춘창고도 함께 둘러보기 좋다. 1961년에 건립된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이 공간에는 지역 청년들이 들어와 다양한 창업아이템을 선보인다. 개성 넘치는 먹거리부터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눈길을 사로잡는 기념품, 액세서리 등 젊음의 에너지를 물씬 느낄 수 있다.   

INFO 죽도봉공원
주소 전남 순천시 조곡동 295-8
문의 061-749-3209

1961년에 건립된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청춘창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1961년에 건립된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청춘창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청춘창고
주소 전남 순천시 역전길 34
문의 061-746-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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