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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제주에서 보기 드문 변화무쌍한 매력이 가득한 바굼지 오름
제주에서 보기 드문 변화무쌍한 매력이 가득한 바굼지 오름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04.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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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과 숲] 바굼지 오름
험준한 바위산처럼 보이는 바굼지오름 전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험준한 바위산처럼 보이는 바굼지오름 전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제주 남서부 해안가에는 산방산과 송악산이 터줏대감처럼 굳건히 서 있다. 그 사이에 이름도 독특한 바굼지오름이 솟아 있다. 오랜 시간 비바람에 깎이고 패인 험준한 바위산 같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바굼지오름은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바위산 형태로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길이라 해도 한 번 눈에 맺힌 형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시선을 끄는 건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치솟아 있는 봉우리들이다. 녹음이 우거진 오름 상단에 뾰족하게 벼려진 암벽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나 있다. 

바굼지오름 정상에서 보이는 한라산과 산방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정상에서 보이는 한라산과 산방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입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입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이름에 얽힌 유래가 서너 개
특이한 생김새처럼 이름에 얽힌 유래도 흥미롭다. 바굼지는 제주어로 ‘바구니’란 뜻이다. 오름 형태가 날개를 편 박쥐를 닮아서 바구미(박쥐의 옛말)로 부르다 점차 비슷한 말인 바굼지로 바뀌어 불렸다고 한다. 오름이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바구니 같다고 해 바굼지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하면 옛적 이 일대가 바닷물에 잠겼을 때 오름이 바구니만큼 보였다는 구전에 연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바굼지를 한자로 변환해 ‘대광주리 단’을 붙여 단산(簞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똑같은 이름을 두고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은 바굼지오름이 그만큼 변화무쌍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굼지오름은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 거리에 따라서 형태와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데 특히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직 벼랑과 거대한 암벽들이 드러나며 위압감마저 들게 한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적지 않은 이유는 탐방로가 오르기 힘들 만큼 험악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바윗길과 경사가 심한 구간들만 잘 넘기면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대신 밑창이 단단한 트레킹화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바굼지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바굼지오름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24-1

바굼지오름 탐방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탐방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대나무가 우거진 탐방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대나무가 우거진 탐방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독특한 지층 구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독특한 지층 구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탐방길
오름 일대는 푸릇하게 자란 마늘밭이 가득하다. 밭 사이에 세워진 방사탑을 지나 400m 정도 더 가면 오름 탐방로 안내판을 찾을 수 있다. 예전에 정상 부근까지 목재 계단이 설치된 탐방로가 있었지만 안전상 문제로 폐쇄되었고 지금은 능선을 따라 오르는 새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탐방길은 초반에 체력 소모가 큰 편이다. 처음부터 비탈진 경사면에 표면이 고르지 못한 암반길이 이어진다. 급경사 구간에는 오르기 쉽도록 길게 줄이 늘어뜨려져 있다. 앞선 사람을 따라 제 힘으로 올라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결국 힘에 부쳐 줄을 잡고 말았다. 숨을 헉헉 댈 정도는 아니지만 여유를 부리며 오르기엔 체력이 다소 버거운 탓이다. 탐방로를 벗어나면 바로 낭떠러지 같은 절벽이 내려다보인다. 때문에 능선에 닿을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바굼지오름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비고가 113m 이며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약 20분 정도면 바굼지오름 중앙에 솟은 정상부에 오를 수 있다. 아쉽게도 탐방로는 이곳까지만 연결되어 있다. 이보다 동쪽에 있는 능선과 봉우리는 길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데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뿐이어서 가기가 힘들다. 무리한 탐방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정식 탐방로 외에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바굼지오름은 능선을 따라 여러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데 입구부터 첫 봉우리에 오르기까지 약 10분 정도 소요된다. 폐타이어를 밟고 올라선 그곳엔 산방산과 송악산을 양 끝에 두고 조각보를 이은 것 같은 너른 들판과 파란 바다, 형제섬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용암이 그대로 굳어서 형성된 편편한 암반은 이 지역 최고의 전망대임이 틀림없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풍경화 한 폭이 깜짝 선물처럼 가슴에 와 안긴다.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발걸음이 아쉬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능선을 따라가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탐방로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소나무 숲을 지나 대나무가 빼곡한 오솔길로, 바위투성이 산길로 계속해서 바뀌는 통에 정상에 닿는 시간이 더욱 짧게 느껴진다.  

바굼지오름에서 바라본 형제섬과 송악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에서 바라본 형제섬과 송악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에서 바라보이는 한라산과 너른 들녘.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에서 바라보이는 한라산과 너른 들녘.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정상에서 보이는 산방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정상에서 보이는 산방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한라산부터 마라도까지 감탄사가 터지는 파노라마 뷰
바굼지오름은 탐방로를 오를 때나 멋진 경관을 선사할 때나 전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좀 전에 느낀 감흥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정상에 더 근사한 선물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 산방산은 더욱 거대하고 웅장한 면모를 과시하고, 송악산에 가려져 있던 가파도와 마라도는 제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곳은 360도 파노라마 뷰를 자랑한다. 

바다를 등지고 뒤돌아보면 한라산이 정면에 또렷이 보인다.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오름과 숲,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밭들이 한 눈에 잡힌다.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경관 앞에서 최신식 카메라도, 촬영 기술도 제대로 맥을 못 춘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담아야 이곳의 진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바굼지오름에는 지질학적인 가치도 숨어 있다. 삐죽이 솟아오른 암벽들을 비롯해 탐방로를 오가며 지나쳤던 기이한 형상의 지층 구조들은 원시 제주의 산물이다. 용머리해안에서 처음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원래 바다였던 곳에 섬의 기반이 되는 지층이 형성되었고 그 땅에서 산방산, 바굼지오름 등이 탄생했다. 오래된 퇴적층과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다양한 형상의 암석들이 태곳적 제주를 상상하게 한다. 때문에 오름을 탐방하는 길은 원시 제주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백만 년 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제주도 탄생의 비밀이 숨어 있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안덕계곡.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안덕계곡.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기슭에 자리한 대정향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 기슭에 자리한 대정향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굼지오름과 추사 유배길로 이어진 대정향교와 안덕계곡
바굼지오름 기슭에는 대정향교가 자리한다. 바굼지오름을 병풍처럼 두른 대정향교가 옛 선인이 그린 수묵화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오름 탐방을 나설 때 함께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대정향교는 처음 대정성 북쪽에 창건되었다가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옮겨졌다고 한다. 1653년 효종 때 지금 위치에 세워졌으며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단정하고 검소한 멋을 풍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의 유생들을 가르쳤던 대정향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의 유생들을 가르쳤던 대정향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대정향교를 이야기할 때 추사 김정희 선생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제주에 유배를 왔던 그는 수 년 간의 귀양살이 동안 이곳에서 유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비록 위리안치(圍籬安置) 형벌을 받는 신세였지만 제주 목사와 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니 어쩌면 그도 한번쯤은 바굼지오름에 올랐을지 모를 일이다. 제주에서 보낸 그의 행적이 궁금하다면 인근에 있는 추사관을 들려보도록 하자. 추사관을 출발해 대정향교와 바굼지오름을 거쳐 안덕계곡까지 이어지는 추사 유배길도 걸어볼 만하다.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 맑은 물이 흐르는 안덕계곡은 조선 시대부터 제주에서 으뜸가는 명승지로 손꼽혔던 곳이다. 신선계에나 있을 법한 신비롭고 독특한 풍경에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시와 노래를 읊었으며 그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구가의서>와 <추노>의 명장면들이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안덕계곡 입구는 일주서로에 접해있는데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금세 분위기가 깊은 계곡으로 바뀐다. 

계곡 입구에 작은 우물 같은 샘터가 있는데 물맛이 좋아 차 애호가였던 김정희 선생이 이곳까지 물을 길러 왔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음용수로 부적합해 맛을 볼 수 없다. 안덕계곡은 맑은 날보다 조금 흐리거나 비가 온 후에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단 계곡물이 너무 불어나 있거나 바닥이 젖어 있으면 미끄러지기 쉬워 조심해야 한다. 

안덕계곡.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안덕계곡.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안덕계곡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1946

TIP 오름 탐방 후 피로를 푸는, 산방산 탄산온천
바굼지오름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온천욕을 즐기는 산방산 탄산온천이 있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좋다. 이곳은 국내에서도 희귀한 탄산온천으로 원탕의 수온이 체온과 비슷한 정도다. 처음엔 미지근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몸에 기포가 달라붙어 점점 따스해지며 피부가 매끈하게 느껴진다. 실내 온천시설 외에 노천탕과 수영장, 찜질방 등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북로41번길 192
문의 064-792-8300 www.tansanh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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