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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낮은 데로 흘러… 안갯속 고절한 다산의 향기
낮은 데로 흘러… 안갯속 고절한 다산의 향기
  • 박정웅 기자
  • 승인 2021.05.10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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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로 떠나는 트레킹 여행
경기옛길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연꽃마을 인근의 팔당호 풍경. 주변에는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이 조성돼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연꽃마을 인근의 팔당호 풍경. 주변에는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이 조성돼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여행스케치=남양주(경기)] 강변 산들이 신록을 더한다. 새 옷을 입은 활엽수들은 산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지난겨울을 거뜬히 이겨내고 새잎을 틔웠다. 침엽수 진녹색과 활엽수 연녹색의 조화, 산은 이맘때 가장 곱다는 말을 절감한다. 뻔한 것일지라도 정감을 어쩌겠는가. 새살 돋은 산을 품은 남한강, 강물에 드리운 산 그림자가 고운 경기옛길 평해길 제3길을 걸었다. 그 길은 조선의 천재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으로 통한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경기옛길센터가 평해길을 개통했다. 평해길은 경기도 구리에서 양평을 잇는 경기옛길의 하나다. 과거 한양(서울)과 관동지방(강원도)을 연결했던 관동대로 복원의 의미를 담았다.

정약용길, 상심낙사(賞心樂事)의 길에 서다

정약용길을 알리는 리본. 사진 / 박정웅 기자
평해길(제3길 정약용길)을 알리는 리본. 사진 / 박정웅 기자

평해길은 10개 구간(구리 1곳, 남양주 2곳, 양평 7곳)으로 이뤄졌다. 이중 3구간(제3길, 팔당역-봉안터널-연꽃마을-정약용 유적지-마재성지-능내역-운길산역 12.9km)은 남양주의 상징 인물인 다산을 잇댔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를 기린 정약용길 또는 마재옛길이다.

경기옛길센터는 이 길을 ‘마음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경관, 상심낙사(賞心樂事)의 길’로 정의했다. 그렇다고 상심낙사의 길만은 아니다. 오늘날의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마재(옛 광주군 마현), 이곳에서 나고 죽은 다산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잊지 말자.  

정약용 유적지의 실학박물관과 거중기 모형. 사진 / 박정웅 기자
정약용 유적지의 실학박물관과 거중기 모형. 사진 / 박정웅 기자

남양주 8경(八景) 중 1경은 정약용 유적지다. 고장의 으뜸 볼거리에 역사적인 인물을 내세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다산로, 다산신도시, 다산생태공원…. 그의 호(號)가 널리 쓰이는 것처럼 정약용은 남양주의 얼굴이다. 민중의 삶을 먼저 살피는 목민(牧民)의 길을 제시하고 실천한 정신을 본보기 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남양주는 정약용길(평해길 제3길)에 앞서 다산길(삼패한강공원-운길산역 20.1km)을 조성했다. 두 길은 총 거리만 다를 뿐이다. 정약용길은 다산의 실사구시(實事求是) 가치를 구현한 듯하다. 있던 길을 버리지 않았거나 새롭게 쓰면서 활용 목적에 이름만 달리 지은 것. 다산길, 정약용길, 남한강자전거길은 크게 보면 같은 옛 철길 위에 있다. 

팔당댐 인근의 봉안터널. 사진 / 박정웅 기자
능내역 전경. 걷기여행객과 자전거여행객들의 쉼터로 이용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능내역 전경. 걷기여행객과 자전거여행객들의 쉼터로 이용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당초 이 구간은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질 뻔했다. 2008년 중앙선 복선화로 철로와 역(능내역)이 폐쇄됐다. 그런 곳이 남한강자전거길로 되살아나더니 서울 근교에서 손꼽히는 하이킹과 라이딩 명소가 됐다. 접근성, 경관, 스토리까지 갖춰서다. 철길의 추억은 봉안터널과 능내역에서 되살아난다.

연꽃마을, 맑고 향기로운 다산의 정신 
능내리는 팔당호와 맞닿은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북한강과 남한강, 경안천의 세 물길이 모여 고즈넉한 호반 풍광을 이룬다. 연꽃마을에서 토끼섬 사이만 거닐어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피어오르는 물안개, 들꽃의 향연, 산 그림자의 반영에 발걸음이 멈춘다. 

연꽃마을 평해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글귀. 사진 / 박정웅 기자
연꽃마을 평해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글귀. 사진 / 박정웅 기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도종환 시인) “두눈을 감고 걸었다 그동안 꽃이 피었다” 연꽃마을 사람들이 길섶에 적어놓은, 짧은 글귀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조안면은 슬로시티다. 아름다움은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있는 법. 이 길을 가꾼 마을 사람들한테서 무언의 선물을 받았다.

걸을 땐 푹신한 흙길이 편하다. 그런데 토끼섬을 오가는 흙길은 마치 물 위를 걷는 착각에 들게 한다. 길은 연꽃 재배지와 팔당호를 가른다. 양쪽 물높이가 엇비슷해 그 경계는 모호하다. 흙길을 물길을 걷는지 아리송하다. 나중에 연꽃길을 걸어볼 계획이다.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 사진 / 박정웅 기자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 사진 / 박정웅 기자
정약용 유적지에서 다산의 자찬묘비문을 살피는 탐방객. 언덕에는 정약용 부부를 함께 모신 묘가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수령을 위해서 생겨난 것인가? 백성이 곡식과 옷감을 바쳐 수령을 섬기고, 또 수레와 말과 하인들을 내어 수령을 맞아들이고 떠나보내며, 또는 기름과 피와 진액과 골수를 다 없애서 그 수령을 살찌우고 있으니 백성이 과연 수령을 위하여 생겨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여유당집 원목(原牧)> 

전통사회에서 다소 진보적인 세계관을 가진 다산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서학과 천주교를 접한 탓이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다산은 정조 사후 18년 동안 유배된다. 그의 관직 생활과 유배 기간은 공교롭게도 18년씩이다. 

유형은 오히려 약이 됐다. 남도에 스스로를 가둔 시간은 그의 철학을 여물게 했다, ‘1표2서’(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의 방대한 역저. 모두 민중과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 정약용은 2012년 장 자크 루소, 헤르만 헤세와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이 됐다.

아름다운 마재마을… 뜻 높은 마재성지

마재성지. 사진 / 박정웅 기자
마재성지. 사진 / 박정웅 기자

정약용 유적지는 생가(여유당), 다산기념관, 다산문화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실학연수’(實學淵數) 현판이 이곳을 잘 설명한다. 실학의 모든 것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맞은편에는 실학박물관이 있다. 생가 뒤편 언덕에는 정약용 부부가 함께 묻힌 묘소가 있다.

“황사영의 처가 동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 여주, 이천의 넓을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 북한강 물은 차갑고 남한강 물은 따스해서 두물머리 마재에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었다. 해가 떠올라 안개가 걷히면 강은 돌연 빛났고 젖은 산봉우리에 윤기가 흘렀다.” 

호반 풍광이 아름다운 조안면의 평해길. 사진 / 박정웅 기자

김훈은 정약용의 형 정약전과 조카사위 황사영 등 천주교를 접한 지식인들의 내면을 다룬 장편소설 <흑산>에서 마재마을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재마을은 정약용 4형제의 터전이다. 형제들은 서학과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셋째형 정약종은 순교의 길을 택했다. 둘째형 정약전과 넷째인 정약용은 함께 유배의 길을 떠났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정약종을 필두로 정약용 가계 안팎은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 순교나 유배의 고초를 당했다. 마재마을에 성지가 조성된 배경이다. 천주교 성지는 주료 순교지에 세워진다. 한 집안의 터전에 마련됐기에 마재성지는 종교를 떠나 꼭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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