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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제주의 허파, 곶자왈 속을 걷다
제주의 허파, 곶자왈 속을 걷다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05.17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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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과 숲] 교래자연휴양림&큰지그리오름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을 걷고 있는 탐방객.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 봄과 여름 사이, 이맘때 숲은 유난히 싱그럽다. 연둣빛 이파리들이 경쾌한 몸짓으로 팔랑거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숲길을 환히 비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교래자연휴양림은 제주도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 가운데 위치한다. 곶자왈은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암괴 지대에 나무와 덩굴, 가시덤불 등이 뒤섞여 숲을 이룬 제주도의 대표적인 생태 지형으로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을 품고 있다. 난대와 온대 수종이 한데 펼쳐진 곶자왈 지대의 숲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바라보기에 놀랍고 신비로운 면이 많다. 

휴양림 입구에 곶자왈의 생태를 배우는 생태체험관이 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교래자연휴양림 탐방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원두막처럼 생긴 쉼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국내 최초의 곶자왈 자연휴양림
서로 다른 기후대를 살아가는 식물들이 같은 공간에 뿌리를 내린 모습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생태다. 실제 곶자왈에는 따뜻한 해안가에서 자라는 주름고사리와 고산 지대인 한라산 상부에 서식하는 좀고사리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지형적인 특성상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는데, 한겨울에도 푸릇한 곶자왈의 숲은 섬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생태계의 허파이자 세계적인 보존 가치를 지닌 대를 이어 지켜가야 할 보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는 곶자왈을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경작지를 최고로 치던 시대에 화전조차 일구기 어려운 돌무더기 땅은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버려지다시피 했지만 그 덕분에 곶자왈은 천연림에 가까운 형태로 보전될 수 있었다. 이러한 곶자왈 지대는 한라산 중턱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크게 한경-안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조천-함덕 곶자왈, 구좌-성산 곶자왈 4개 지대로 나뉜다.  

제주 동북부 지역에 넓게 퍼진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에는 2011년 문을 연 교래자연휴양림이 있다. 국내 최초로 곶자왈에 조성된 자연휴양림이다. 230만㎡ 남짓한 넓은 부지에 숙소, 야영장, 생태 체험관 등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무성하게 우거진 숲에는 다양한 동ㆍ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신비로운 곶자왈의 생태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 원시적인 천연림 속을 헤매다 보면 마치 꿈결 속을 걷는 듯 몽환적인 기분마저 든다. 휴양림에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가면 큰지그리오름까지 오를 수 있다. 

교래자연휴양림 탐방 코스는 곶자왈 지대만 짧게 둘러보는 생태 관찰로와 큰지그리오름까지 두루 살펴보는 오름 산책로 2개로 나뉘며 각각 40분,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왕복 기준). 곶자왈 탐방이 처음이라면 이보다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평소 접하기 못했던 낯선 풍경에 자꾸만 발걸음이 멈춰 서게 된다.  

돌무더기와 나무, 덩굴들이 뒤섞여 자라는 곶자왈의 숲.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공룡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양치식물.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숲은 고사리와 양치 식물의 천국이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곶자왈, 그 신비로운 숲을 걷다
몇 개월 만에 다시 찾은 숲은 바야흐로 봄의 문턱을 넘어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매표소를 거쳐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자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사위가 온통 초록 빛깔로 뒤덮인 다른 세상이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에 숲에 사는 모든 초목들이 저마다 품은 초록빛을 꺼내들고 한판 잔치라도 벌인 듯싶었다. 화사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숲은 봄과 여름 사이의 어느 미묘한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탐방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휴양림이라고 해서 산책하기 좋은 숲길을 떠올렸다면 일찌감치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길이 험한 것은 아니지만 사색에 잠겨 걸을 만한 숲은 아닌 탓이다. 이전에 멋모르고 운동화를 신고 걸었는데 그 때 이후론 곶자왈 탐방엔 무조건 트레킹화를 착용한다. 발바닥이 덜 아플뿐더러 훨씬 안전하고 피로감도 쉽게 풀리기 때문이다. 

땅 위로 자라난 뿌리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바위를 움켜쥔 단단한 나무 뿌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울퉁불퉁한 건 돌길만이 아니다. 흙이 부족하다 보니 땅속으로 뻗어나가야 할 나무뿌리가 지면 위로 드러나 단단하게 굳었다. 그 때문에 걸을 때마다 이리저리 발길에 차여 괜스레 미안해진다. 이 같은 모습을 판근 현상이라 하는데 곶자왈 지대의 숲에서 보이는 흔한 풍경 가운데 하나다. 거친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이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사실 이보다 더 경이로운 건 바위나 돌 틈에서 자라는 나무들이다. 흙 한 줌 없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강인한 생명력이 큰 감동과 울림을 준다. 거대한 바위를 휘감고 자라난 고목이 신기해 살며시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바위를 움켜잡고 있었는지 우람하게 자란 뿌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단단했다. 

인적 드문 숲은 새와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주인이다. 운이 좋으면 이곳 터줏대감인 노루와도 눈인사를 나눌 수 있다. 또한 곶자왈은 양치류와 고사리의 천국이기도 하다. 교래자연휴양림에도 수많은 종류의 고사리들이 자라고 있다. 이제껏 고사리는 식탁에 올라가는 나물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종류의 고사리가 있을 줄이야.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자리에 거대한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나 보란 듯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큰지그리오름 아래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수려한 풍경을 품은 큰지그리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편백나무 숲을 지나 큰지그리오름까지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큰지그리오름 입구다. 이곳부터는 휴양림 내 숲길과 이어진 오름 탐방로를 따라가면 된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오름 아래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이다. 오름을 다 덮어버릴 기세로 빼곡하게 자라난 편백나무들이 또 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편백나무는 몸에 좋은 피톤치드를 뿜어내 산림욕하기 좋은 나무 가운데 하나다. 군데군데 쉬어가기 좋은 공간들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본다. 편백나무 특유의 향긋한 내음과 함께 청량한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든다. 숨만 몇 번 들이마셨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더 건강해진 기분이다. 숲이 주는 선물을 한껏 즐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큰지그리오름에서 보는 전망.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름 탐방이 시작된다. 큰지그리오름은 비고 118m 정도인 전형적인 말굽형 오름으로 정상까지 약간의 산행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 험한 길은 아니니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비탈진 기슭을 따라 이어진 탐방로는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맞댄 터널을 지나면 풀밭처럼 보이는 조릿대 군락이 탐방객들을 맞이하고, 이름 모를 풀꽃들과 명랑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큰지그리오름은 동부 중산간 지대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정상에는 전망 데크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 서면 한라산부터 바다까지 섬이 품은 보물들이 한눈에 담긴다. 그리 넓어 보이던 숲도 이곳에선 풍경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세찬 바람에 신발 끈을 동여매고 천천히 발길을 돌린다. 그 풍경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 때이다.

기기묘묘한 돌들을 만나는 제주돌문화공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돌문화공원의 실내 전시관.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깃든 제주돌문화공원 
제주돌문화공원은 교래자연휴양림과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제주의 창조 여신인 설문대할망과 오백 장군을 테마로 만든 공원은 드넓은 대지에 제주 돌문화와 민속 문화를 집대성해 놓았다. 부지가 넓어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만도 시간이 꽤 소요된다.

제주돌문화공원의 상징인 하늘 연못은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얽힌 안타까운 전설을 만날 수 있다. 그 아래 건립된 제주돌박물관은 볼거리가 많은 전시관이다. 화산섬 제주의 면모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자연이 빚어낸 기기묘묘한 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기묘한 형태의 돌들은 볼수록 감탄스럽다. 야외 공간에는 제주 민속 문화를 담은 동자석과 두상석이 눈길을 끈다. 뭐니 해도 이곳의 진수는 어머니의 방이다. 용암 석굴 안에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품에 안고 서 있는 형상의 용암석이 전시되어 있다. 벽에 비친 그림자가 영락없는 모자상이다. 
 

교래자연휴양림(제주돌문화공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교래자연휴양림(제주돌문화공원)
주소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
문의 064-710-7475

TIP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의 숲길 탐방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숲은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흐린 날과 맑은 날은 물론 비 오는 날 걷는 숲은 비록 같은 장소라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교래자연휴양림은 그 편차가 꽤 큰 편이다. 특히 비 내린 전후와 햇살이 쨍한 날은 서로 다른 곳으로 착각할 만큼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이런 까닭에 시간 여유만 된다면 날씨를 달리해 2~3번 숲길을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탐방할 때마다 숨어 있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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