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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빛바랜 벽화, 어두웠던 역사를 걷다
빛바랜 벽화, 어두웠던 역사를 걷다
  • 박정웅 기자 sutra@daum.net
  • 승인 2021.06.2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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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욕지도 여행, 꼭 가봐야 할 ‘좌부랑개 거리’
안방술집거리, 고등어 간독, 주재소... 일제강점의 흔적 역력
통영 욕지도의 근대어촌발상지 좌부랑개 거리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욕지바다에서 바라본 아담한 좌부랑개. 현 지명인 자부마을은 일제의 잔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욕지바다에서 바라본 아담한 좌부랑개. 현 지명인 자부마을은 일제의 잔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좌부랑개 거리의 안내판. 사진 / 박정웅 기자

[여행스케치=통영(경남)] 어두웠던 골목을 걷는 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다. 일제강점기 35년, 수탈과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대양과 맞닥뜨린 먼 섬인 경남 통영 욕지도 역시 그랬다. 욕지도에는 일제강점의 흔적이 여전하다. 당시에도 고등어와 같은 수산물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욕지항에서 오른쪽으로 욕지일주로를 걷다보면 ‘근대어촌발상지 좌부랑개 거리’가 있다. 규모나 보존 면에서 전북 군산의 근대문화유산거리와 차이는 있다. 다만 뜯어보면 같은 쓰라린 역사를 마주한다. 좌부랑개(자부마을)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관통한다. 현재 이 마을을 지칭하는 자부마을 또한 일제의 잔재라는 지적이다.

자료에 따르면 어부와 상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당시 이곳에 거주한 일본인은 2000명을 넘나들었다. 말이 좋아 근대어촌 발상지다. 수산물 수탈을 위해 일제는 자국민을 위한 명분으로 각종 시설을 빠르게 끌어들였다. 상수도는 경상권에서 경주 다음으로 설치됐다고 한다. 섬치고는 이례적인 경우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이 번화가였음을 설명하는 벽화. 안방술집거리에는 40여곳의 술집이 성행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당구장(왼쪽)과 간독. 사진 /박정웅 기자
당구장(왼쪽)과 간독 건물. 사진 /박정웅 기자
간독에 재현해 놓은, 고등어를 염장하는 욕지도 사람들. 사진 / 박정웅 기자
간독에 재현해 놓은, 고등어를 염장하는 욕지도 사람들. 사진 / 박정웅 기자
염장하는 모습을 표현한 벽화. 사진 / 박정웅 기자
고등어 손질하는 모습을 표현한 벽화. 사진 / 박정웅 기자

파시가 섰을 정도로 좌부랑개와 선창은 밤낮으로 들썩였다. 이곳의 번화가는 안방술집거리다. 명월관을 비롯해 40여곳의 술집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본에서 데려온 게이샤(일본식 접대부)를 둔 술집도 성행했다.    

안방술집거리에는 이 같은 술집을 비롯해 여관, 목욕탕, 이발소, 당구장, 간독, 다방, 어업조합이 들어섰다. 조금 더 위쪽의 골목에는 주재소(파출소), 우편국, 소학교(욕지고등심상소학교) 등의 기관이 자리했다. 일부는 희미하게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고등어 간독은 욕지도를 잘 설명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욕지바다는 고등어 주산지였다. 당시 여름철 고등어잡이 배들이 항구에 겹겹이 정박했다. 잡은 고등어는 얼음 냉장해 일본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염장을 했다. 

어업조합에서 경매를 마친 고등어를 섬 아낙들이 손질해 간독에 염장했다. 어업조합은 큰 간독을 갖고 있었다. 간고등어는 배에 실려 마산항을 거쳐 우리나라 내륙과 중국 만주, 북경, 대련 등지로 나갔다.

욕지도 주재소. 해방 이후 1985년까지 쓰였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욕지주재소. 해방 이후 1985년까지 쓰였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욕지 우체국
지금은 기둥만 남은 욕지우편국. 안내판은 훼손됐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간독 옆에는 일본인이 운영했다는 당구장이다. 당구대는 5개 정도로 당시 항구에 머물던 많은 어부와 선원들이 이용했다.

욕지고등심상소학교는 일본인들이 후세 교육을 위해 세웠다. 고등과를 둬 중등부 교육도 이뤄졌다. 통영경찰서 욕지주재소는 1911년 제암마을에 처음 설치됐다가 2년 후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좌부랑개로 이전했다. 1985년 동촌으로 이전할 때까지 욕지면의 치안을 담당했다. 

좌부랑개의 과거를 말하는 벽화는 빛이 바랬다. 그럼에도 일제강점의 흔적은 또렷이 기억된다. 욕지도에 가면 꼭 좌부랑개 거리를 둘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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