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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봄이 드나드는 물가, 일제가 자리를 폈다
봄이 드나드는 물가, 일제가 자리를 폈다
  • 박정웅 기자
  • 승인 2021.07.12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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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익산 구간을 걷다①
근대문화유산의 보고(寶庫), 춘포의 어제와 오늘
비비정을 사이에 두고 전라선의 새 만경강철교(왼쪽)와 옛 철교가 나란히 서 있다. 멀리 전주시 시계가 들어온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의 대장도정공장. 일제강점기 호소가와 농장의 도정공장으로 지어졌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의 대장도정공장. 일제강점기 호소가와 농장의 도정공장으로 지어졌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여행스케치=익산(전북)] 만경강은 호남평야의 젖줄이다. 호남평야는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로, 우리의 배를 불렸다. 호남평야를 살찌우는 건 만경강이다. 그러니 만경강은 우리의 생명줄인 셈이다. 일제는 물길로, 신작로로, 철길로 이곳의 쌀을 수탈했다. 식량증산의 마수는 물길마저 바꿨다. 그들은 만경강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강은 온 몸이 헤쳐졌음에도 갖은 만행을 낱낱이 재어 놨다.

앞서 본지는 지난 5월호 ‘걷는 내내 살아 숨 쉬는 강을 만나다’를 통해 만경강을 들여다봤다. 신천습지를 중심으로 한 생태적 관점이었다. 이번에는 역사적 관점에서 일제가 남긴 상흔을 다룬다. 근대문화유산이 가득한 익산의 춘포리를 둘러본다. 물론 강의 생태를 빼놓을 순 없다. 출발지는 지난번 도착지인 비비정(완주군 삼례읍)으로 정했다. 만경강을 이어 걷는 취지다. 도착지인 춘포리(익산시 춘포면)까지 제방길 따라 약 7km의 여정이다. 유칠선 전라북도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했다.

만경강이 사행천이었음을 확인하는 우각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만경강이 사행천이었음을 확인하는 우각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만경강 둑방길은 벚나무 터널을 이룬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만경강 둑방길은 벚나무 터널을 이룬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기러기 날고 돛단배 돌아오다
정자의 유래에 앞서 만경강의 조망이 확 들어왔다. 비비정(飛飛亭)을 설명하는 절경은 ‘비비낙안’(飛飛落雁)이다. 강 백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떼의 장관을 가리킨다. 또 있다. 돛단배들이 돌아오는 풍광, ‘동포귀범’(東浦歸帆)이다. 이러한 풍경은 일제가 들어와 물길을 헤쳐놓기 전의 모습일 터. 그런데 오늘날의 조망도 괜찮다. 게다가 생태가 복원돼 황새처럼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니 말이다. 

좌우로 전라선 만경강철교가 포진하고 있다. 오른쪽 낡은 것은 2011년 휴식에 들어갔다. 왼쪽의 새 철로가 놓이면서다. 1914년부터 익산-전주를 이었던 철교는 일제의 수탈사와 함께했다. 폐철교 위의 예술열차는 여행객의 쉼터로 쓰인다. 

만경강의 제방길은 봄이면 벚꽃길로 유명세를 떨친다. 한여름에는 벚나무 터널이 내어준 그늘이 시원하다. 드넓은 만경강을 타고 불어온 바람은 청량하다. 일제는 굽은 물길을 바로 펴는 직강화사업을 펼쳤다. 대간선수로와 저수지로 물길을 새롭게 열거나 막았다. 일제의 치수(治水)는 더 많은 쌀을 강탈하는 수단이었다. 그 결과, 강은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형상(사행천)을 잃었다. 물의 흐름과 속도가 바뀌면서 자연하천의 기능(침식·퇴적)을 상실했다. 안내도는 물길의 과거(붉은 실선)와 현재의 모습을 구분해 놨다. 사행천의 흔적은 몇몇의 우각호(쇠뿔 모양의 호수)에서 엿볼 뿐이다. 

지난겨울 만경강에서 관찰된 황새. 사진 / 유칠선 해설사 제공
지난겨울 만경강에서 관찰된 황새. 사진 / 유칠선 해설사 제공
익산천이 만경강에 합류하는 지점의 탐조대. 사진 / 박정웅 기자
익산천이 만경강에 합류하는 지점의 탐조대. 사진 / 박정웅 기자

황새 돌아왔지만… 조금 더 거리를
완주(삼례읍)와 익산(춘포면)의 경계를 지나면 익산천이 만경강에 합류한다. 본격적인 익산 구간이다. 탐조대에 오르면 만경강의 보다 더 너른 둔치를 담는다. 무성한 풀들이 하중도를 집어삼켰다. 강의 생태가 복원되고 있다는 소식에 백사장 모래찜질의 날을 그려본다. 자연과 인간은 공생한다. 생태조경학 박사이기도 한 유 해설사는 “지난겨울 황새 12마리가 만경강 일대에서 서식하는 것을 관찰했다”며 촬영한 사진을 보여줬다. 황새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이다. 이어 “현재 강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와 희귀종으로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원앙, 흰꼬리수리, 검은어깨매 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종 다양성은 이곳의 생태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때문에 사람은 좀 더 거리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련당국은 지난 5월부터 만경강 일부 구간(전주-완주)에서 야영 및 취사, 낚시를 금지했다. 하천 내 무분별한 진입을 차단한다는 포석이다. 다만 다른 구간에서는 차박, 캠핑, 낚시 행위가 횡행한다. 시민편의를 명분으로 둔치에 각종 시설이 난립했다. 일부는 야간 조명까지 설치했다.

등록문화재 제211호로 지정된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가옥. 호소가와 농장에서 일한 에토 가옥이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등록문화재 제211호로 지정된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가옥. 호소가와 농장에서 일한 에토 가옥이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에토 가옥을 설명하는 유칠선 해설사. 사진 / 박정웅 기자
에토 가옥을 설명하는 유칠선 해설사. 사진 / 박정웅 기자

아픔도 우리 역사, 춘포의 근대문화유산
춘포(春蒲) 지명은 우리말로는 ‘봄개(봄나루)’다. ‘봄이 드나드는 물가’라는 아름다운 뜻을 지녔다. 호소가와, 박기순·영철 부자. 춘포리에서는 유 해설사의 입에서 오르내린 인물을 만난다. 일제는 이곳에 전라선을 깔고 춘포역을 설치했다. 수탈의 전진기지였다. 박 부자는 대표적인 친일 자본가다. 요샛말로 ‘익산역(춘포역) 역세권 개발’을 주도했다. 가까이 있는 자신들의 토지 때문이다. 유 해설사는 “이리에서 전주로 곧장 놓여도 될 철로를 삼례 방향으로 우회하도록 박 부자가 일제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정도”라고 그들의 위세를 귀띔했다. 그 과정에서 춘포의 면소재지는 인수리에서 춘포리(당시 대장촌리)로 옮겨졌다. 

호소가와는 만경강 일대를 주름잡은 일본인 대지주다. 호소가와 농장과 관련한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11호)이 있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가옥’이 그것이다. 호소가와의 저택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밑에서 일한 에토의 집이다. 이리농림학교로 유학 온 에토는 관리인으로 호소가와 농장에 취직했다. 5년 뒤 일제가 망할 줄이야. 그는 조선에 영원히 살 심산으로 1940년 저택을 지었다. 

춘포리 대장도정공장 전경. 현관 맞은 편 세 동의 건물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춘포리 대장도정공장 전경. 현관 맞은 편 세 동의 건물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대장도정공장에서 이층 구조의 환기구를 살피는 여행객. 사진 / 박정웅 기자
대장도정공장에서 이층 구조의 환기구를 살피는 여행객. 사진 / 박정웅 기자

춘포의 본래 이름은 대장촌이다. 1914년 지어진 춘포역은 1996년까지 대장역이었다. 호소가와 도정공장의 현판은 대장공장(대장도정공장)이다. 호소가와는 이곳에서 쌀을 현미로 정미한 뒤 춘포역을 통해 군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빼갔다. 정문 맞은편의 나란한 3동의 건축물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2대의 정미기를 배치한 대규모 공장이었다. 

만석보를 틀어막은 조병갑을 본받았나. 박기순은 전익수리조합을 이용해 동포의 혈세를 뜯었다. 조합의 터는 한국농어촌공사 춘포지소 바로 옆이다. 춘포4길을 더 들어가면 일본식 가옥이 나온다. 도정공장 직속 병원의 간호사 숙소였다. 맞은편 골목에 호소가와가 정미기 3대를 들여왔다는 첫 도정공장 자리다. 

일명 '김성철 가옥'(가운데)은 일식가옥으로 정원이 잘 가꿔져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일명 '김성철 가옥'(가운데)은 일식가옥으로 정원이 잘 가꿔져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춘포역(폐역·등록문화재 제210호)은 춘포리를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춘포역(폐역·등록문화재 제210호)은 춘포리를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춘포역 벽에 부착된 근대문화유산 동판. 사진 / 박정웅 기자
춘포역 벽에 부착된 근대문화유산 동판. 사진 / 박정웅 기자

에토 가옥처럼 잘 보존된 일식 가옥이 또 있다. 당시 호소가와 농장의 관리인이 살던 저택이 있다. 일명 ‘김성철 가옥’이다. 김성철(7·8대 국회의원)은 에토처럼 이리농림학교에서 공부했고 호소가와 농장에서 일했다. 적산 불하 과정에 대해선 알 길은 없다. 사유지로서 내부 출입이 불가하다.

춘포리를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은 단연 춘포역(폐역·등록문화재 제210호)이다. 이곳의 인적·물적 수탈사를 집약한 곳이어서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으로, 역사·건축·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역사(驛舍) 안팎에 이를 잘 설명하는 조형물이 배치됐다. 승강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교각 위로 전라선이 가로지른다. 들판 건너편에는 전주로 향하는 27번 국도가 시원하게 달린다. 춘포역에서 춘포리를 아우르는 도로가 제방 쪽을 향한다. 길의 오른쪽 신사 터에는 메주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익산과 이웃한 군산은 일제가 남기고 간 근대문화유산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았다. 군산이 항도라면 익산은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다. 일제의 영향력이 상당했던 지역이란 뜻이다. 작은 춘포만 해도 짧은 걸음 안에 많은 유산을 만났다. 식민의 아픔은 엄연한 우리의 역사다. 만경강을 따라 산재한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을 챙겨보는 시간은 어떨까.

박정웅 기자 sutr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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