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양평]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리는 용문산 백운봉. 마을을 감싸 안은 산 능선은 어느 산골마을과 다를 것이 없으나, 백운봉의 특이한 산세는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햇살 받은 남한강을 따라 봄 정취 가득한 백운동 뾰족 봉우리와 사나사로 가족 첫 산행을 떠났다.
남한강 물길 따라 양평 가는 길. 햇살을 받은 남한강이 은빛 가루라도 뿌린 듯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양평시내를 지나 사나사로 가는 용천리 마을에 들어설 때부터 유난히 뾰족한 산봉우리가 눈길을 끈다. 봉우리가 이끄는 대로 사나사 계곡 입구에 들어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살의 양도 늘어나니 주변은 완연한 봄이다. 계곡물 소리가 제법 세차다.
마을입구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이십 여분을 걸어가자 ‘용문산 사나사’라고 쓰인 일주문이 나온다. 이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차를 가져가도 되지만,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니 만큼 계곡을 따라 걷는 맛을 느낄 겸 걸어가면 좋을 것 같다.
농가와 산밭 사이로 사나사가 보인다. 등산로는 사나사 뒤편에서 시작된다. 등산로 입구는 일주문과 꼭 닮은 잣나무숲이다. 숲 앞에 생강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노란 꽃을 달고 서 있어 초록색 도화지에 노란 물감을 찍어 놓은 것 같다.
사나사 계곡은 길고 장중하다. 산을 오르는 내내 시원스런 계곡물 소리가 들려온다. 계곡물 소리가 끊길라 치면 산새소리가 비집고 들어와, 숲은 물소리와 새소리의 이중창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준다. 덕분에 다리 아픈 것도 잊은 채 장군봉과 백운봉이 갈라지는 삼거리까지 직행할 수 있었다.
까마득한 절벽 같은 길을 밧줄을 타고 오르는데 바닥이 미끄럽다. 잔뜩 긴장한 탓인지 정상에 도달하자 온 몸이 뻐근하다. 한참 앞서 올라간 아들 녀석은 “혼자서 여기까지 올라왔느냐”는 등산객의 질문을 받고 으쓱해있다. 툴툴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속에서 뭔가 이뤄냈다는 성취감으로 가득 찬 아이들이 예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정상에 올라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봉오리가 뾰족하지 않다. 하산할 때 한명씩 내려와야 할 것 같다며 걱정하던 아이들도 의외로 넓은 정상이 보여주는 시원한 조망에 환호성을 질렀다. 정상 곳곳에선 무리를 이룬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으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느 산이건 정상에 서면 그 느낌이 각별한 법이지만 높이도 만만치 않거니와 유난히 뾰족한 봉우리를 가진 백운봉 정상에서의 느낌은 특별했다.
940m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과 백두산의 흙과 돌로 만들었다는 ‘통일암’ 탑비와 조망대가 산 정상을 꾸미고 있는 사이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원함이라니…. 물결처럼 산능선이 이어진 야트막한 주변 산들에 비해 유난히 높이 솟은 백운봉에서 사방팔방이 다 환하게 트인 조망이 그만이다.
하산길 끄트머리께 얌전히 자리하고 있는 사나사는 절과 경계도 없이 이어진 농가와 마주한 탓인지 편안해 보인다. 여염집처럼 돌담이 자연스럽게 경계를 이루어 절 마당 앞으로 흐르는 계곡과도, 주변 농가와도 자연스럽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대적광전 건물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마당 오른쪽에는 사나사 삼층석탑과 원증국사 석종부도, 그리고 원증국사 부도비가 왼쪽엔 새로 지은 듯한 요사채 건물이 서있다.
눈여겨 볼 것은 요사채 앞의 오래된 향나무와 삼층석탑 옆의 소나무.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등 굽은 줄기가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 아래엔 사나사 삼층석탑에 못지 않은 돌탑들이 오종종하게 늘어서 있다.
산신각과 더불어 함씨각을 둘러보고 절 뒤편으로 돌아나왔다. 잣나무숲길 앞 양지바른 풀숲에서 옹기종기 피어있는 제비꽃을 만났다. 햇살 따라 소풍이라도 나온 것일까? 혼자서 감상하기 아까워 아이들을 불러 감동의 순간의 함께 했다. “진짜 봄이다, 그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