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 호국ㆍ학습여행] 다시 찾은 충남 아산 현충사 수학여행지라구? 이만한 호국여행지도 없다
[가족 호국ㆍ학습여행] 다시 찾은 충남 아산 현충사 수학여행지라구? 이만한 호국여행지도 없다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6.05.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5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충남 아산에 자리한 현충사.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아산] ‘스사락’거리며 얕게 흔들리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오는 대나무가 마치 충무공의 굳은 지조같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 선생이 <징비록>(懲毖錄)을 참고해서 그린 충무공의 그림 앞에서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아직도 제 것과 내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왜놈들’을 보고 장군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상주 방씨 무남독녀 딸과 21살 때 혼인한 충무공 이순신. 딸이 하나면 처가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무과 급제할 때까지 처가인 충남 아산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살았던 장군의 혼이 서린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이제는 현충사(顯忠祠)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곳. 장군의 처가였던 백암리에 영정을 모신 사당인 현충사는 이제 참배객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아 보인다. 유치원에서 봄 소풍 나와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충무문에 들어섰다. 

2006년 5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선생님이 내준 질문지에 현충사를 스케치하는 초등학생.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6년 5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조경과 어울리는 돌다리. 돌다리 아래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뛰논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예전에 한번쯤 와 봤던지라 연못도, 과자를 넣어달라고 입만 뻐끔뻐끔 벌리는 큰 잉어들도 낯설지 않다. 결혼 전 앨범촬영을 하는 예비부부, 소풍 와서 현충사 스케치를 하는 초등학생들로 다리 주변은 부산하다. 

연못의 다리를 건너면 버드나무처럼 늘어지게 피어난 능수벚꽃, 4대부 집안의 아녀자들이 보면 바람이 난다고 해 집 안에는 심지 않았던 화려한 빛깔의 명자나무 길이 나온다. 산책하며 차분하게 생각에 잠기고 싶은 길이다. 이면의 묘소 근처에는 이충무공의 3대, 4대, 10대손의 묘가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1598년 12월 16일 새벽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 충무공의 묘소는 현충사에서 서북쪽으로 약 9km에 있는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어라산)에 정경부인 방씨와 합장되어 있다.

후손들의 묘소 바로 앞에는 이순신이 활을 쏘고 무예를 단련했던 은행나무 두 주가 있어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처럼 활을 쏘는 시늉을 하며 그의 무예 방식을 따라도 해본다. 해년마다 4월말 쯤엔 이곳에서 활쏘기 행사가 벌어지는데 양궁 국가대표팀의 나라답게 모형 활이라도 있으면 충무공의 발자취가 더 실감 날텐데 하는 생각도 해본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이순신 장군의 고택 마당. 뒤에 방화산에는 다람쥐가 산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비나이다~비나이다~' 무얼 빌었던 것일까?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충무공과 가족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 충무정에서 기념식수를 한다. 그의 넓고도 곧은 기백과 성자 같은 고풍이 퍼지기를 기대하면서. 우물 뒤로는 충무공의 생가가 잘 복원되어 있는데, 산자락 밑이라 추웠던지 미닫이와 여닫이가 두 겹으로 되어 있는 문이 눈에 띈다. 방화산의 등산을 막아 자연과 생태가 그대로 보존된 현충사에서 아이들이 자연에 가까워 질 수 있다.

사당이 모셔진 현충사 뒤는 산이고 앞은 아산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여 전망대라도 올라간 느낌이다. 현충사 주위를 빙 두른 소나무가 충무공의 올곧음을 상징하듯 서 있는 자태가 당당하다. 차분히 귀를 열고 댓잎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에 따라 장군의 일대기를 상징한 십경도가 벽을 빙 두르고 7,000개의 조각을 못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끼워 맞춰 제작한 조립식 건물인‘닷집’을 구경하는데, 꼬마아이 하나가 오더니 충무공을 향해 두 손을 맞비비며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반복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머쓱해 하며 “할머니와 함께 사찰을 몇 번 다니더니…”하며 말끝을 흐린다. 

성급하게 돌지 않아도 천천히 약 1시간 반이면 현충사와 모형 거북선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관까지도 둘러본다. 사당에서 유물관으로 오는 길은 빽빽한 숲과 작은 개울, 등나무터널이 있어 시원한 바람이 밀려온다. 비가 오거나, 날이 무더워도 산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다. 현충일이 있는 6월을 맞아 새롭게 다시 찾은 현충사는 어릴 적, 소풍처럼 휙 다녀왔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바람에 흔들려 휘기는 해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를 자꾸 뒤돌아보며 현충사를 빠져나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