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나만의 파라다이스] 흥정계곡 최고 절경, 평창 팔석정 계곡에 발 담그고 8개 숨은바위찾기
[나만의 파라다이스] 흥정계곡 최고 절경, 평창 팔석정 계곡에 발 담그고 8개 숨은바위찾기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6.07.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물과 바위. 무엇보다 멋스런 소나무가 있는 팔석정 전경.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평창] 팔석정 소나무 아래에서 물소리 들으며 만화책 한 권 다 읽고 왔다. 이렇게 호젓한 계곡이 어떻게 이만큼밖에 소개되지 못했을까? 인터넷 지식검색 온종일 뒤져봐도 그게 그거인 간략한 설명 몇 줄뿐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한 페이지 겨우 소개돼 있었다. 이런 곳은 우리 또 직접 가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

팔석정(八石亭)이라 해서 정자가 있나 했더니, 흥정천 하류의 바위 8개로 이뤄졌다는 명승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큰 도로에서 2분 정도 더 들어온 곳인데도, 호젓하기가 심산유곡 못지않고 시원하기가 한천냉골에 비길 만하다. 놀랍고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바위가 달랑 8개뿐인 건 물론 아니다. 기암괴석까지는 못 돼도, 기이하고 널찍하고 뾰족한 바위가 수도 없이 많다. 푸른 소나무 아래에 멋대로 자리를 잡고 물길을 요리 틀었다 조리 틀었다 한다.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흥정천의 옥색 물길이 이곳 팔석정에서 고요히 한숨을 돌린다.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물의 흐름과 유속이 참 다양한 곳이다.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팔석(八石)이라 하는 이유는 조선조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선생이 8개의 바위에 제각기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양사언은 몰라도,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하는 시조를 들으면 아하! 한다. 한석봉, 안평대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선 전기 4대 명필이자 당대의 시객이다.

강릉도부사로 재직하던 양사언은 이 선경을 찾아와 풍류를 즐기곤 했다. 그러다 결국 8개의 바위에 제각기 이름을 붙이게 되는데, 하나같이 재밌는 이름이다. 신선 사상을 담은 삼신산의 세 이름 영주(瀛洲), 봉래(蓬萊), 방장(方丈)에다, 석대투간(石臺投竿), 석지청련(石池靑蓮), 석실한수(石室閑睡), 석평위기(石坪圍棋)가 그것이다. 나머지 이름 하나엔 이견이 있지만, 석요도약(石搖跳躍)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다.

석대투간은 낚시 던지기 좋은 바위, 석지청련은 푸른 연꽃이 핀 돌로 만든 연못, 석실한수는 낮잠 자기 좋은 바위, 석평위기는 장기 두기 좋을 평평한 바위, 석요도약은 뛰어오르기 좋은 바위라는 뜻이다. 이름도 참 솔직하게 붙였다. 이래저래 놀기 좋다는 뜻이다. 느긋한 한량들 귀가 솔깃해지기 딱 좋다.

인터넷과 여행서적마다 양사언 선생이 바위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고 하는 통에, ‘괜한 일을 하셨네’ 생각했다. 얼핏 자연물에 이름 따위를 새기는 일을 즐겨했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 떨떠름했던 것이다. 한데 실은 선생은 글씨만 써놓았을 뿐 바위에 새긴 것은 후세 사람이라는 말을 평창 문화원에서 들려준다.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팔석정에선 나무의 시간도 느긋하게 흘렀을 것 같다.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누군가 제 이름들을 대충 새겨 놓았다.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양사언의 글씨. 영주. 2006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곳뿐 아니라 양사언이 지방관을 역임한 우리 땅 곳곳에서 선생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와 새겨진 글씨가 전해진다. 원체 명필이었던 것도 이유겠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결국 40년 동안 각 고을을 돌며 백성들에게 그만큼 선정을 펼쳤기 때문이 아닐까.

팔석정 바위에 새겨져 있다는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 글씨가 희미해지고, 큰물에 바위가 유실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탓에 8개의 이름을 다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널찍한 바위에서 낮잠도 청해보고, 높은 바위를 뛰어오르기도 하고, 물을 건너기도 하고, 걸터앉아 발을 담가보기도 하고, 아래쪽으로 난 바위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물 구경, 바위 구경, 하늘 구경, 소나무 구경 잘 했다. ‘책읽기 좋은 바위’라 할 만한 곳도 찾았다. 흐르는 물을 따라 고였던 마음도 흐르고 흘러 풀어진다. 임천정원이란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그렇게 3시간을 뒤져서 3개 발견했다. 어쩜 4개일지도 모르겠다. 많이 흐릿하다. 엉뚱한 사람까지 제 이름을 여기저기 새겨놓은 통에 더 헷갈린다. 5개까지 찾아낸 마을 주민도 있단다. 언젠가 서울의 한 교수는 8개를 다 찾았다는 얘기도 있다.

요기나 할까 하고 팔석정 옆 매운탕집에 들렀다. 팔석정에 얽힌 내력을 물어보니 최근 주인이 여러 번 바뀌어서 자기들은 잘 모른다고 한다. 대신 한 여종업원이 나오더니, “아까 저기 바위 위에서 책 읽던 분이지요?” 한다. 그렇다 하니, “거긴 내 고정석인데요” 하며 싱긋 웃는다. 신선처럼 사네요.

여행 중 잠깐 들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들 하는데, 오히려 한나절 느긋하게 즐기기에 더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물소리와 바람소리 사이로 햇빛 그림자 드리운 널찍한 바위와 소나무 그늘이 있고 물깊이도 다양하다. 식당 한 군데와 아기자기한 펜션 2채도 있다.
팔석정에 가시거든 숨은 이름 찾기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까. 8개를 다 찾은 뒤 연락주시면, 호텔 무료 숙박권 하나 드린다. 진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