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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름다운 어촌마을] 남해 바다의 보석 미조항 하늘과 바람을 다스리는 어부들의 시간
[아름다운 어촌마을] 남해 바다의 보석 미조항 하늘과 바람을 다스리는 어부들의 시간
  • 김상미 객원기자
  • 승인 2006.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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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남해 미조항의 풍경.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찰랑대는 파도와 함께 오래된 친구처럼 곰살맞게 맞아주는 해안선. 남해 미조항은 누이 같기도 하고 애인 같기도 하고 싱싱한 횟감을 입에 넣을 때는 어머니 같기도 하다. 해안도로에 올라 바닷바람을 한 그릇 마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금빛바다를 물들이는 낙조와 부드러운 선으로 이어진 산자락을 보면 아무래도 조물주가 남해를 만들 때 평심을 잃은 듯하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울 같은 미조항 앞바다에 하늘이 내려와 있다. 그 위에서 인생을 갈고 닦는 어부의 손길이 하늘의 기운을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원양어선을 타다 늦은 나이에 뭍으로 돌아와 작은 어선의 선주가 되었다는 황정진씨의 하루는 길다. 예리하게 날을 세운 무명의 새벽바람이 뱃전을 흔들어도 새벽3시면 어김없이 바다목장으로 향한다

1시간 반 정도 먼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진다. 그가 하늘 가까이 헤엄쳐 가는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새벽달이 잰걸음으로 내려와 바닷물을 길어가고 나면 어부는 어두움을 입 안으로 밀어 넣듯 담배연기를 삼킨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바닷가에서 낚시를 준비하는 낚시꾼.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잠깐의 여유로 숨고르기를 한 후 여명이 바다에 드리워질 때 그가 하늘을 다스릴 시간이다. 그는 던져 놓은 그물을 건져 올리며 일용할 소망을 하나씩 바다에 던질지도 모른다. 건져 올린 소득이 하찮을지라도 절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하늘을 움직이며 사는 방법이다.

항구로 돌아와 어판장에서 새벽 시간을 환전하고 긴장을 푼다.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갈 때 가장 신명난다는 그는 다시 햇살을 어깨에 메고 내일 새벽 출어를 위한 그물 손질을 해두고 잠자리에 든다. 시간 셈이 둔한 나는 어촌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날로그형인채로 불편함 없이 사는 내가 가장 긴장할 때는 시간약속 앞에서다. 

어젯밤 남해행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고 잠을 잤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결국 2분이 늦어서 8시 30분 남해행 첫차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나는 황금 같은 1시간 20분을 터미널을 배회하며 소비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자연의 시간에 내 몸의 시간을 맞춘다는 것은 무리수다. 나는 자연과 바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남해 한려수도의 섬은 어깨를 맞대고 산다.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미조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면 3번국도가 더 이상 바다로 나가면 안 된다고 육지를 꽁꽁 붙잡아 매고 있다. 막다른 길인가 싶으면 다시 제 몸을 까뒤집어 길을 내주는 해안선은 정말 친절하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낚시 바늘에 삶을 단단히 동여매고 잇는 황정진씨 부부.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남해로 들어가는 관문. 남해-삼천포 대교 풍경.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버스는 남해의 해안선에 익숙한 탓인지 직선보다 곡선 길을 더 잘 달린다. 송정해수욕장을 지난 3번도로를 만나게 되면 바로 우회전하여 2km 정도 더 곡선을 그리는 길을 따라가면 미조항을 만나게 된다. 진짜 남해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감상하려면 상주해수욕장에서 우회전하여 16번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 낫다. 설리마을 해변과 미조항 주변의 섬이 철 지난 해수욕장의 쓸쓸함을 연출하고 있다. 미조항과 적당한 사이 띄우기를 하고 있는 조도, 호도, 노도 섬은 미조항에 드나드는 어선들을 위해 날마다 보초를 서고 있다.

남해~미조항 해안선의 8할은 바람이 만든 것 아닐까. 다랑논 밭을 끼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바다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흐드러지게 웃는다. 주말이 아니면 통행하는 차량이 거의 없어 연인과 드라이브를 즐기며 추억의 길로 만들어 두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혼자 신나게 흥얼거리며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서면 버스는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거친 바다를 일구는 사람들의 흔적인 다랑논.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미조항 곳곳에 고등어가 속살을 드러내고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미조항은 누구라도 포근하게 안아줄 자세로 앉아 있다. 그래서일까. 미조항의 풍경은 해안선만큼이나 부드럽다. 등대가 지키는 방파제 안으로 들어서면 한낮의 휴식을 즐기는 항구의 이미지가 여유로워 보인다. 낮 시간에도 들고나는 어선들이 분주한 것으로 보아 새벽 부둣가 활어시장이 서면 미조항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횟집 골목에 들어서면 자연산 활어가 손님을 기다리는데 우럭, 도다리, 참돔, 놀래미 등 신선한 바다를 그래도 먹을 수 있다. 특히 나그네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죽방렴에서 바로 건져 올린 멸치회다. 초장맛과 조화를 이루면 미식가의 혀끝에서 녹는다. 또 하나 미조항의 별미 갈치회무침도 즐길 수 있다. 내 입맛에는 갈치 왕소금 구이가 딱 맞아떨어졌다.

미조항은 전국 강태공들의 집합소가 된 지 오래다. 요즈음에는 꽁치잡이가 한창이다. 남편과 동행한 부인들이 등대 옆 방파제에 걸터앉아 시간을 낚는 모습이 목가적이다. 남해대교의 낙조를 감상하려고 삼천포쪽으로 급히 빠져나오면서 미조항을 두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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