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영월] 서양의‘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어떻네 하지만, 우리네도 예전엔 가난한 이들에게 방도 내주고 밥도 퍼주던 인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뭘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동네에서 좀 사는 집이니 나눠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바로 그런 인심 좋은 종갓집이 바로 강원도 영월의 우구정이다.
눈 덮인 강원도 마을
눈으로 하얗게 덮인 강원도, 제법 어둑할 시간이건만 온통 눈에 뒤덮인 산간마을은 형광빛으로 투명하다. 드문드문 집이 있는 허허 벌판에 달랑 혼자 택시에서 내리니 일순 동서남북 갈피를 잃는다. 그런데 반가운 등댓불처럼 저 아래서 누군가 손짓하는 이가 있다.
“여기에요, 여기!”
이 동네, 이 시간에 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듯, 한 치의 주저함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방문하는 이의 당황스러운 마음을 미리 읽은 ‘우구정’의 안주인이다. 방에서 TV를 보다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에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문밖으로 재빨리 뛰어 나왔을 터, 그 마음이 더 고맙다.
강원도 영월의 350년이나 된 고택이자 현재 민박집인‘우구정’. 흔치 않게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종갓집이지만, 영남이나 기호 지방에 남아 있는 대궐 같은 종갓집에 비하면 소박하고 단출하다.
“며칠 전에 이 동네에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싹 다 집어갔드래요. 시골도 인심이 예전만 못해.”
우구정의 주인 우수명 씨는 만나자마자 대뜸 시골 인심 타령이다. 옛 문헌에 ‘영동 지방 사람들은 인심이 순박하여 바위 아래 해묵은 부처님이라 할 정도’라고 하였는데 그게 어디 갔겠나 싶어서 나는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우구정을 지키는 장손 우수명 씨
우수명 씨는 이곳 우구정을 지키는 18대 장손이다. 젊은 시절엔 고향집을 떠나 이웃 마을에 있는 쌍용시멘트에 장기근속하다 정년퇴임 후 다시 돌아왔다. 다시 옛집으로 들어가자 했을 때 아내는 별반 토를 달지 않았지만, 사실 오래된 한옥에서 제일 고생하는 이는 바로 아내이다. 한옥이 살림하기에는 여간 불편하지 않은 데다가 잔손 가는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성이 부지런한 두 사람은 열심히 닦고 쓸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군에서 나온 인사가 이곳이 유서 깊은 곳이니 문화재로 지정하여 민박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이것이 민박집 우구정이 탄생한 계기다(옛집을 민박집으로 쓰고 그 앞에 새집을 지어 이곳에서 우수명 씨가 살고 있다).
생각지도 않게 시작한 민박집이라 그런지 큰 장삿속은 없어 보인다. 그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잘 쉬고 간다’고 해주는 말 한마디가 밑천이라는데. “방송에도 몇 번 나갔드랬는데, 그러고 나면 전화통에 불이 나요. 근데 묻기만 묻고, 오는 사람은 없드래요. 전화 받느라 고상(고생)만 하지 머.”
아무래도 뜨내기 손님보다 조용히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주고객들이다. 겨울에 절절 끓는 구들방의 훈기와 여름철엔 시원한 바람이 몰아치는 한적한 흙집의 매력에 제대로 맛을 들인 이들이다. 오는 이들이 또 찾아오니 어느새 손님이 친척처럼 사이가 가까워져 서로 허물이 없어졌다. 누군가에게 마음속의 고향집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대대로 이름난 부잣집
이 가옥이 360여 년 가까이 짱짱하게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원체 대대로 집이 넉넉했던 때문이다. 처음 집을 지을 때도 아무 나무나 사용한 것이 아니라 용도에 맞게 고르고 또 골라 좋은 나무만을 쓴 것이라고 한다. 우구정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집을 보수해주기 위해 찾아온 칠순의 목수 말이 원래 목재가 새롭게 덧댄 목재보다 더 오래 버틸 거라고 했단다.
“어렸을 적 이 동네 일대에서 우리 집만 논농사를 했드래요. 다들 꺼칠한 잡곡만 먹는데 우리는 그래도 흰쌀을 섞어서 밥을 했만 말이요. 우리 집에 곡석(곡식)이 많다 소문이 나니 뜨내기 비단장수며 소금장수며 돌아댕기다가 마을 오면 만날 우리집에 와서 묵었드래여. 그래도 한 번도 그덜을 안 내쳤어. 쩌어 아래짝에 거지들이 살았는데 몰려댕기면서 크다마한 함지박에 밥을 구걸하고 다녔거든. 그런데 동네가 가난하니 머 그리 많이 모이나. 다 돌다 우리 집에 오면 할머니가 밥의 양을 보고 적게 받은 날은 많이 주고, 많은 날은 좀 덜 주고 그렇게 해서 만날 으떻게든 채워줬지. 그라니까 할머니 돌아가시고 장사 지내는데 그 거지들이 와서 울고 가더만. 친척들이 웬 거지들이 왔다고 쫓가내려고 하니까 아버지가 할머니 보러 온 거라고 내두라 했지.”
객식구가 많을 때는 식구들이 잘 방이 없었을 정도였다는데, 그래도 누구도 불평 한마디 안 했더란다. 어렸을 때부터 인정 많은 할머니, 어머니를 늘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 역시 뭐 좋은 거 있으면 함께 나누는 게 천성이 되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다 내 맘 같으랴. 요즘 사람들이 착하게 잘해주면 그걸 자꾸 이용하려고만 들어 영 글렀단다. 속없이 잘해줬다가 심지어 돈도 떼이고 사람까지 잃고 나니 이제는 더는 못하겠다는 마음이다.
어제 집 옆에 있는 들꽃민속촌에 도둑이 든 일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거지가 다녀도 문단속을 잊고 살았다. 그래도 뭐 없어졌다는 말 한 마디 없었는데, 지금은 다들 밥술 뜰 정도는 되는 세상인데 흉흉하게 도둑이 드는 것이다. 그게 못마땅해 자꾸 끌탕이 새어나온다. “사람이 서로 믿고 또 기대 살고 이래 해야 하는데 말이요….”
사람 좋아하는 우수명 씨 이야기가 밤이 깊도록 계속된다. 그러나 본인 입으로 이제 마음을 닫고 산다고 하면서도 그게 그리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쩌 우에 한반도 지형을 꼭 닮은 선암마을이 있는데, 거기 가보셔야지. 내가 낼 차로 데려다줄 테니까.” 힐끔힐끔 보이는 그의 순박한 강원도 인심과 못내 아쉬운 정 때문에 자꾸 찾게 되는 우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