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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빼기 여행 책이 있는 휴식] 마음은 비우고 생각은 채우고 파주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빼기 여행 책이 있는 휴식] 마음은 비우고 생각은 채우고 파주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 전설 기자
  • 승인 2013.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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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파주] 문학가이자 언어학자 임어당은 말한다. “기분 좋은 잠과 독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책은 심장의 고동을 부드럽게 하고 긴장감을 풀어주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고로 가장 좋은 독서는 잠자리맡에서의 독서이다.” 현자의 가르침을 받아 ‘책의 고향’에서 하룻밤을 청한다.

INFO.
숙박료 작가의 방 13만2000원, 트윈룸 13만2000원, 트리플룸 15만4000원, 코리안룸 14만3000원 이용 시간 입실 15:00, 퇴실 12:00
주소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524-3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지지향 입구, 조각가 권석만의 ‘발아’와 유치원 아이들의 어울림.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푹신한 침대에 누워 읽다 만 책을 편다. 새하얀 시트의 사각거리는 감촉, 활자 위로 쏟아지는 한낮의 햇볕, 하다못해 종이 팔락거리는 소리도 달콤하리라. 서울에서 1시간을 달려 파주로 가는 내내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鄕)’의 오후를 상상했다. 도심에서 한 걸음 떨어져 즐기는 소소한 행복은 어떤 것일까. 기대에 부풀어 주위를 살피니 거대한 책 묶음을 연상시키는 파주출판도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하드 커버의 양서를 빼곡히 꽂아놓은 듯 묵직한 외관의 건물이 줄을 서 있다. 그 중심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맞닿은 지지향으로 향하는 길, 견학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와아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온다. 길목에 띄엄띄엄 설치된 권석만 작가의 조각품 사이사이를 징검다리 넘듯 오간다. 선생님은 출판도시 견학을 예정했지만 아이들은 ‘종이 나라 소풍’이 즐겁기만 하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그새 새 놀이를 찾은 병아리 무리를 뒤로하고 지지향으로 ‘나 홀로 소풍’에 나선다.

‘종이의 고향’이라는 고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의 주인공은 책이다. 지지향의  총 79개 객실과 로비에는 그 흔한 TV가 1대도 없다. 바보상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오직 책뿐, 5층 규모의 건물에는 5000권이 넘는 소설책, 동화책, 양서가 빼곡하다.

예습을 했음에도 “오늘 밤 드라마는 뭘 하더라”를 중얼거리니 버릇 한번 무섭다. 드라마 제목 대신 읽고 싶었던 책 제목을 추려내며 지지향으로 들어선다. 그 정면에 소규모 도서관이 보인다. 지지향의 로비다. 건물 기둥을 11칸으로 나눠 빽빽이 책을 꽂아두었다. 기둥형 서가에는 색색의 책등으로 이루어진 책 무지개가 떠 있다. 서가 사이사이로 몸을 파묻기에 적당한 소파도 보인다. 한쪽에는 그랜드피아노가, 다른 한쪽에는 1950년대 할리우드 극장에서 쓰던 알텍 스피커가 놓여 있다. 한낮의 햇살이 전면 유리창을 통해 쏟아진다. 보기만 해도 스르르 긴장이 풀리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책을 품에 안고 있다. 몇몇은 고개가 꾸벅꾸벅, 몇몇은 아예 책을 가슴팍에 얹고 꿈나라에 빠져든다.

“로비에서는 낮잠을 자제해달라는 경고를 써 붙이기도 하고, 잠이 너무 길어지면 살짝 깨워드리기도 하는데 소용이 없어요. 소파가 워낙 푹신해서 그럴까요? 하루 종일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책 한 권씩 들고 앉았다가 잠드는 분들이 많아요.”

출판도시문화재단의 소효령 씨가 나른함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최고의 독서법은 잠자리맡에서의 독서’라는 명언을 따르자면 독서와 단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게 당연지사 아닐는지.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객실 ‘박완서의 방’에는 ‘엄마의 말뚝’ 친필 원고와 유품이 전시돼 있다.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박완서·박범신·신경숙…별과의 동침
지지향의 첫 번째 자랑이 도서관을 닮은 로비라면 두 번째 자랑은 객실 ‘작가의 방’이다. 박완서, 박범신, 신경숙 등 한국 문학계 큰 별의 이름을 딴  문학인 방 19개가 5층에 조성돼 있다. 예약 없이는 머물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뜨거운 곳이다. 운이 좋았는지 ‘박완서의 방’으로 안내를 받고 들어선다. 목재 인테리어로 통일된 객실은 좁다기보다는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새하얀 싱글 침대가 나란히 붙어 있고 그 앞으로 박완서 소설 전집이 비치돼 있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인테리어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누렇게 색이 바랜 원고다. “농바위고개만 넘으면 송도라고 했다….” 1979년 <문학과사상>에 발표한 ‘엄마의 말뚝’ 첫 대목을 눈으로 따라 읽는다. 아크릴판 안쪽에 전시된, 연필로 눌러쓴 친필 원고, 촛농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촛대, 손때 묻은 연필꽂이는 작가의 방을 꾸밀 무렵 작가가 기증한 것이다. 이제는 유작이 된 원고를 따라 읽다보면 왈칵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솟구친다. 좋아하는 소설가와의 동침은 가슴 벅찬 일로 기억되지 않을까. 특히 소설가와 남다른 추억을 쌓은 독자라면 더욱 그러할 터. 좋아하는 소설가의 흔적으로 채워진 객실은 머나먼 작가의 세계까지 사다리를 놓아준다. 곧장 침대에 뛰어들어도 좋고, 햇볕이 잘 드는 책상 앞에 앉아도 좋겠다.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파주 전경이 한눈에 조망되는 트윈룸.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객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겠지만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소풍을 끝내지 말자. 노을 질 무렵의 지지향은 지나치기 아까운 풍광을 많이 가지고 있다. 따사로운 햇볕이 유리창에 반사돼 복도에 빗금을 그려 넣는다. 빗금을 따라 중앙 테라스에 서면 파주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서 출판단지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철저한 고도 제한으로 키를 맞춘 건물들이 따로 또 같이 조화로운 풍경을 만든다.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책 읽기 좋은 지지향의 로비, 문을 열면 야외 테라스 ‘저녁노을의 루’로 이어진다. 2013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하늘 감상을 마치면 1층으로 내려와 로비 바깥으로 이어진 ‘저녁노을의 루’를 걸어보자. 습지 생태를 해치지 않기 위해 공중에 데크를 놓은 야외 테라스에서는 파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갈대샛강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데크를 따라 갈대샛강 위에 오목하게 자리한 카페 ‘인포떼끄’까지 걸음이 이어진다. 향긋한 홍차나 커피를 주문한 뒤 카페 내의 예술 서적들을 둘러볼 수 있다. 좀 더 걷고 싶다면 ‘갤러리 지지향’의 북디자인, 일러스트 전시회를 관람하거나 헌책방 ‘보물섬’에 들러 평소 찾고 있던 책이 있는지 살펴보길.

구석구석을 탐험하고는 도돌이표처럼 로비로 돌아온다. 한낮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골라 폭신한 소파에 앉는다. 왜일까.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눈꺼풀이 무겁다. 지지향의 유일한 방해꾼은 물리치기 힘든 잠 귀신이 아닐까 싶다.

 Tip. 둘러보기 좋은 곳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보물섬 자선단체 ‘아름다운가게’에서 운영하는 헌책방이다. 손때 묻은 헌책과 희귀 LP판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갤러리 지지향 단순한 파인아트를 넘어 북디자인, 일러스트, 고서 등 출판도시의 예술성을 바탕으로 참신한 기획 전시를 선보이는 전시 공간.
카페 인포떼끄 전면 유리창으로 출판도시와 갈대샛강 풍경을 한눈에 감상하며 커피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출판도시의 사랑방이다.
다이닝 노을 전라도 정읍에서 이전한 김동수 가옥 별채가 내다보이는 정통 이탤리언 레스토랑. 런치세트 1만2000원, 스파게티 1만2000원, 안심스테이크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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