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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빼기 여행 비움] “덜어내니 기쁘지 아니한가!” 공주 한국문화연수원
[빼기 여행 비움] “덜어내니 기쁘지 아니한가!” 공주 한국문화연수원
  • 송수영 기자
  • 승인 2013.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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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여행스케치=공주] 노자는 일찍이 “오목하게 빈 데가 있어야 그릇의 구실을 하고, 트여 있어야 방의 구실을 하니, 있음의 값어치는 없음의 구실로 이루어진다”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비워내고 덜어내는 수고와 시간이 절실하다.

INFO.
숙박료 특실 12만원, 3인실 8만원, 6인실 12만원, 8인실 15만원, 게스트하우스 20만원
이용 시간 입실 15:00, 퇴실 9:00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1065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참선하는 방. 이곳의 최고 사치는 창밖 풍광이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올 한 해 편안하셨습니까? 매해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했던’이라는 말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립니다. ‘다사다난’을 잘 이겨내신 여러분께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한 해가 정신없이 훌쩍 지났다는 생각도 들지만, 돌이켜 보면 가슴 쓰린 일이며 후회되는 일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 어려움과 괴로움이 시간에 맞춰 딱 정리되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달력은 뜯겨 나가도 여전히 미적미적 꼬리표처럼 남는 것이 더 야속하죠. 어깨가 자꾸 축 처지는데 연말을 밝히는 세상의 불빛이 자꾸만 더 화려해지니 공연히 옷깃만 세게 부여잡습니다. 이런 때 ‘아, 어디 조용한 절이라도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간절해집니다.  꼭 독실한 불교 신자라 그렇겠습니까?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복잡한 생각을 덜어내고 마음을 비우고 싶은 간절함에 드는 생각이죠. 그런 분이라면 저를 따라와보시죠. 충남 공주 태화산 자락에 아주 정갈하고 조용하고 멋진 여행지가 있습니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숙박동 건물엔 담을 둘러 아늑한 느낌의 마당이 생겼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한국문화연수원(구 전통불교문화원)으로 들어가는 국도 길은 호젓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아름드리 가로수 길에 차분해지는가 하면 짙은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샹들리에처럼 매달려 있는 마을 어귀 풍경엔 덩달아 풍요로워진다. 평일 오전이라 뒤따르는 차도 없으니 가속페달을 밟는 둥 마는 둥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느긋하게 마곡사 앞을 지나 한국문화연수원에 닿았다. 한국문화연수원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건립한 교육 연수 시설로, 불교 강연이나 템플스테이만이 아니라 일반 기업 연수나 개인 숙박도 가능하다. ‘한국문화의 세계화’, ‘수행문화의 대중화’, ‘전통문화의 현대화’를 표방하여 지난 2009년 문을 열었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숙박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료 도서관.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약 1만 평에 이르는 부지엔 숙박과 문화 체험, 연수를 위한 시설과 식당 등이 들어서 있다. 특별히 이렇다 할 위락 시설이 없고 크게 간판도 내걸지 않은 탓인지 아직까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흔히 불교 시설이라고 하면 울긋불긋 단청이 있는 사찰을 먼저 떠올릴 터이지만, 파격적으로(?) 이곳의 건축가는 승효상 씨다. 주차를 하고 문화원 입구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부터가 심상치 않다. 흔한 아치형의 돌다리가 아니라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철제 난간이다. 새빨갛게 강렬한 부식강(cor-ten steel)의 구조물은 ‘쇳대박물관’, ‘웰콤시티’ 등 작가의 대표 건축 작품으로 익숙한 터이나, 이를 미처 알지 못한 일부 관람객들의 문의가 많은 듯 다리 입구에 녹이 슨 것은 안심해도 된다는 작은 알림판이 붙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소의 등처럼 부드러운 곡선의 산 아래 너른 공터가 있고 반듯한 화강암과 검은색 목재로 이루어진 정갈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터에 햇빛이 한가득 고여 있다. 그 공터를 가로질러 숙소동 쪽으로 가는데 너른 우주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존재’하는 듯 기분이 묘하다. 흘러가는 바람소리, 새소리가 전에 없이 크게 귓가에 오랫동안 머문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숙박동에서 연수동 시설로 가는 길.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전통찻집 솔향기 내부.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차를 우려내는 시간. 더불어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건물은 모두 장식이 최대한 배제되고 색감조차 무채색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선(禪)’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보고 있노라면 막 계를 받아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스님이 연상된다. 건물의 높이를 모두 2~3층으로 나지막하게 통일하고 직사각형의 화강암 판석으로 담을 쌓았다. 담은 판석을 이어붙인 면과 선으로 변화를 주어 흡사 무채색으로 연출한 몬드리안의 작품 같다. 다만 담을 둘렀으되 따로 문을 달지 않았으니 안을 들여다보자면 누구나 힐끗거릴 수 있으나 견고한 담으로 인해 아주 트였다 할 수도 없다. 또한 담장을 두름으로써 각 건물마다 약간의 마당 역할을 하는 빈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한 칼럼에서 한국문화연수원의 가장 뚜렷한 주제로 비움을 내세웠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스님들의 연수도 많아 마치 사찰을 찾은 듯하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나는 불교 건축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비움이었으며 불교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비움은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의 중요한 개념이 되어야 했다. 재료 또한 나무와 돌과 흙이다. 결국은 땅으로 스며들어 사라지는 것들이다. 남는 것은 비움이며 그 속에 담겨 있을 기억이다.” 들어오는 입구의 너른 공터는 조선시대 기와 가마터였던 자리로 판명이 나 애당초 건축이 금지되었단다. 다들 낭패라며 난감해하는 가운데 승효상 작가만은 이를 ‘기꺼이’ 반기었단다. 작가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연수동과 숙박동을 멀찍이 떨어뜨려 세웠고 그 사이에 비운 것도 채운 것도 아닌 공터를 두었다. 덕분에 두 공간을 오가며 사람들은 도란도란 담소를 길게 나누거나, 깊은 사색에 잠기거나 혹은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는 여유를 얻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했던가, 승효상 작가의 말대로 비운  자리에 기억이, 연(緣)이 차곡차곡 채워진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가을이 깊어가는 마곡사. 아는 사람들은 춘마곡보다 추마곡이 더 좋다고 한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연수원에서 마곡사로 넘어가는 산책길. 억새가 햇빛에 눈부시다. 2013년 12월 사진 / 송수영기자

불가에서 만든 건축이라 내부는 승려의 방 그대로다. 벽은 일체의 잡념을 지우라는 듯 하얀 벽지로 전체를 붙였고 바닥은 콩기름을 먹인 장판지가 삐뚤어짐 없이 반듯하게 이어져 있다. 각 동의 위치나 방의 크기에 따라 조금씩 구조가 다르지만 마당 쪽으로 유리 섀시를 달고 이중으로 한지를 붙인 격자문을 덧대 한옥의 멋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세간이라 할 것도 없이 작은 탁자에, 앉은뱅이 냉장고 한 대가 전부. 무엇보다 TV와 컴퓨터가 없으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확연하다. 방안에 앉아 무엇을 할까…. 모처럼 햇살이 길게 드리워진 방바닥에 앉아 책을 폈다. 한바탕 바람이 지나가기에 무심하게 안마당에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오랫동안 멍하니 바라보는데 옛날 친구와의 추억, 당장 풀어야 할 숙제, 앞으로의 계획 등 두서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저 멀리 구름처럼 정처 없이 흘러가도록 그냥 놓아둔다.

뒤로 태화산이 감싸고 있고 앞으로 마곡천의 물줄기가 휘감아 돌아나가는 자리에 위치해 있으니 봄이면 꽃으로, 여름이면 짙은 녹음과 시원한 계곡으로, 가을에는 원색의 낙엽으로, 겨울이면 새하얀 눈으로 철철이 풍광이 환상이란다. “특히 아침 일찍이나 해 질 때 풍광이 인상적이죠. 한 스님께서는 앞으로 흐르는 천이 태극 모양을 그리며 흘러가 지세가 매우 좋은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문화원 내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는 전통찻집 솔향기에서 연수 팀의 정현주 씨를 만났다. 장소가 그래서인지 목소리도 녹차 향처럼 부드럽다. 은은한 명상 음악이 흘러나오는 찻집은 다다미가 정갈하게 깔려 있고 바닥에 잇대어 사람 키를 넘을까 말까 한 크기의 창이 앞면과 왼쪽으로 연달아 이어져 있다. 전면으로 통창을 크게 내도 됐으련만 의식적으로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창을 채우는 외부 풍경이 한층 극적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다.  

“이곳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산책이죠. 뒤쪽 계곡을 따라 15분 정도 천천히 걸어가시면 마곡사가 있어요. 마곡사를 느긋하게 보셔도 좋고, 요사이 새로 인근에 생긴 백범 김구길을 걸으셔도 좋고요.” 질문을 잊고 멍하니 풍광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현주 씨가 한마디 더 얹는다.          

스님들의 연수 장소로 이용되어 전국에서 찾아오신다는데 한바탕 교육이 끝났는지 회색 승복을 입은 분들이 줄줄이 걸어 나오신다. 마곡사 쪽으로 가는 분들도 있고 마곡천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에 나서는 분도 계시다. 고즈넉한 자연에 스님이 어우러지니 한 폭의 동양화다. ‘나도 저 풍경 속으로 들어가면 역시 동양화가 될까?’ 하고 생각하다 부질없음에 피식 웃고 말았다. 슬슬 몸을 일으켜 마곡사 산책이나 휘휘 다녀와야겠다.

 Tip.
쪾 연수원 내에서는 내부 식당에서만 식사가 가능하다. 모든 재료를 유기농으로만 사용하며 뷔페식으로 차려진다. 맛도 꽤 호평이 높다.  
아침 7:00~8:00, 점심 12:00~13:00, 저녁 18:00~19:00에 운영된다. 1끼 7000원. 숙박 예약 시 사전에 신청해야 한다.
쪾 템플스테이는 개별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단체 투숙객에 한해서 요청 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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