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산 이야기] 서울의 진산, 북한산에 올라보셨습니까?
[산 이야기] 서울의 진산, 북한산에 올라보셨습니까?
  • 최혜진 기자
  • 승인 2010.03.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북한산.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 = 서울] 전국 도처에 아름다운 산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산은 과연 어디일까?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지리산? 단풍놀이의 대명사 설악산? 정답은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서울의 진산’이다. 

높이로만 따져본다면 북한산은 그리 눈에 띄는 산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발 1000m가 넘어야 거산 반열에 좀 끼워줄까 하는데 불과 836m의 높이로는 오히려 기가 죽는다. 하지만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암봉이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신비로운 기운은 등산객에게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북한산 가는 길>의 저자 박창규 씨는 “북한산은 산 전체에서 우람한 남성미가 철철 넘친다. 녹음 사이로 군더더기 없이 속살을 드러낸 암봉들이 백악의 조형미를 창출해 사시사철 웅장하고 수려하다”며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특히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동쪽에 인수봉, 남쪽에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절묘하게 삼각형을 이루어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최근에 ‘삼각산 이름 부르기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본래 고려 때부터 삼각산으로 통용되었던 산의 이름을 바로 불러주자는 취지다. 

북한산의 거대한 암봉은 우람한 남성미가 넘친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이런 북한산에는 꽃 피는 봄부터 눈 쌓인 겨울까지 연간 1000만 명의 탐방객이 몰려든다. 물론 설악산, 지리산 등의 거산들의 탐방객 수를 훌쩍 넘는 대단한 인기다. 전국 도처에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북한산이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능선을 따라 뻗은 무궁무진한 코스 
가장 먼저 다양한 코스를 들 수 있다. “어느 산이나 코스는 다 많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정규 코스만 74개”라는 수치를 내보이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북한산 능선은 향로봉과 문수봉을 거치며 치솟아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세 봉우리에 정점을 찍고 우이령에 이르러 푹 꺼지는데, 이 능선과 계곡을 타고 뻗어나간 코스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워낙 코스가 다양하다 보니 북한산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은 지도를 손에 쥐고도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기점별로 묶어서 생각하는 쪽이 편리하다. 우선 세검정 쪽의 구기동과 평창동, 그리고 북한산성 유원지 쪽의 정릉, 수유리, 우이동, 불광동, 구파발까지 총 7개로 등산 시작점을 나눌 수 있다. 각 기점에서 산에 오르는 코스는 워낙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이들은 대부분 비봉능선이나 산성주능선과 만나고 결국 산 정상인 백운대를 향해 올라간다. 

산행 중에 먹는 국수의 맛, “멸치 국물이 끝내줘요~.” 사진 / 최혜진 기자

여기에 더해 최근 우이령길이나 순례길이 열려 험한 산을 타지 않아도 북한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게 됐다. 1968년 ‘김신조 침투사건’으로 통제된 지 41년 만에 열린 우이령길이나 도선사에서 우이동 솔밭공원까지 3.4km 구간을 걷는 북한산 순례길은 숨겨진 역사 이야기와 더불어 완만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산길이다. 

수많은 북한산 탐방 코스 중에서 ‘가장 빨리 백운대에 오를 수 있는 코스’이자 ‘가장 많은 탐방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로 알려진 도선사 - 백운산장 - 위문 - 백운대 코스에 직접 올라보기로 했다. 아직 헤아리지 못한 인기 요인들은 북한산에 오르며 직접 눈으로 확인할 요량이다. 

굽이굽이 이야기를 품은 산 
도선사를 지나 위문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처음부터 만만치가 않다. 동행한 북한산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 진현경 씨도 “북한산은 못 오를 코스도 없지만 아주 쉬운 코스도 없다”며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러준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고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온 힘을 다해 걸음을 옮긴다. 

봄소식이 하나둘 전해지는 요즘이지만 이곳은 아직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보통 3월 말까지는 계곡 사이로 얼음과 눈이 녹지 않고, 4월이 지나야 봄기운이 완연하다고 한다.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1시간 30분 정도 올랐을까. 백운대에 이르기 전 반가운 휴식처가 나타났다. 나무 탁자가 놓인 작은 광장 옆에 나지막한 오두막집. 이곳이 북한산 등산객이라면 한번쯤 들러봤다는 백운산장이다. 

백운산장은 북한산 등산객들의 든든한 휴식처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산장 내부에는 맛있는 국수 냄새가 솔솔 풍긴다. 등산객 몇몇이 뜨끈한 국수 한 그릇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도 국수를 한 그릇 말아달라 말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주인장이 “뭘 그렇게 헉헉거리나?” 하신다. “오랜만에 산을 타서 힘드네요” 대답하고는 받아든 국수 국물을 후루룩 넘기는데 “뭐 그 정도에 힘들다 하나? 우리 아들딸들은 여기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 다녔는데…” 하신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여기는 지금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서 불과 10분 남짓 떨어진, 해발 650m 고지의 깊은 산 속이 아니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인장에 재차 되물었는데, 알고 보니 이분이 바로 3대째 백운산장을 지키고 있다는 김금자 씨다.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자식들 다섯이 어떻게 학교에 가나 그게 걱정이었지. 그래도 우리 아이들 한 번 결석한 적이 없어. 다들 졸업할 때 개근상 받았는걸.” 
이 험한 산을 타고 매일같이 학교까지 오갔다는 사실이 산을 ‘기어’ 올라온 나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깊은 산 속 오막살이집’에서 100년을 넘게 지켜온 세월을 뿌리치고 쉽게 터를 옮길 수 없었고, 덕분에 산에서 보낸 그 세월 따라 자연히  사연도 켜켜이 쌓였다.  

3대째 백운산장을 지키고 있는 김금자 씨. 사진 / 최혜진 기자

“예전에는 여기까지 구조대원이 올라왔겠어, 핸드폰이 있었겠어? 자연히 우리가 구조대원이 되는 거지…. 특히 겨울에는  우리 아저씨가 눈 속에 파묻힌 사람을 발견해서 이리로 여럿 데리고 왔어. 온몸이 꽁꽁 얼어서 가위로 옷을 잘라내고는 온몸을 주무르고, 또 미지근한 물에 간장을 타서 조금씩 입에 넣어주면서…. 그렇게 몇 사람을 살렸지.”

지금이야 각종 등산 장비가 좋아진 데다 119 구조대원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곳곳에 표지판을 세워놓았지만,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쉽지 않던 일이었다. 해가 지고 나면 북한산에 남은 사람들은 유일하게 산장을 지키는 이들뿐이었고, 겨울 산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했을 때 자신이 왜 산에 있어야 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곤 했단다. 

이런저런 북한산의 숨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뿔사 산행이 너무 지체됐다. 갈 길이 먼데 마냥 앉아있을 수 없어 산장 할머니께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재촉했다. 

산성을 날개처럼 펼치고 우뚝 서 있는 동장대의 늠름한 기상. 사진 / 최혜진 기자

산장에서 불과 10분 더 오르면 우뚝 솟은 백운대와 마주한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북한산은 산꾼들의 암벽 타기 경연장으로도 인기가 높은데, 그런 북한산의 정상을 코앞에서 마주하니 그 위용에 절로 압도된다. 

봉우리 중간까지는 나무 계단이 놓여있어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데크가 끝나는 지점은 그야말로 암벽과도 같은 봉우리가 날카롭게 솟아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데다가 장비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서 정상까지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건너편의 만경대와 인수봉의 늠름한 풍경을 감상하고 봉우리를 내려와 위문을 통과했다. 

북한산은 산성길을 따라 등산하는 묘미가 있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산등성이를 에워싼 북한산성 
지금 지나온 위문을 포함해 북한산의 기점으로 부르는 용암문, 대남문, 대동문 등은 모두 ‘북한산성’을 통하는 문의 이름이다. 북한산성은 숙종 39년에 완성된 산성으로 전쟁 중에 왕이 피난하는 행궁을 호위하는 역할을 했다. 고려 때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을 간 것처럼 유사 시 몸을 의탁하려는 용도로 만들어진 성이다. 

여기에서 대동사를 거쳐 북한산성계곡길로 하산하는 쪽이 빠르긴 하지만, 계속해서 산성을 따라 걷고 싶어 동장대로 코스를 돌렸다. 동장대로 가는 길은 내내 산성을 따라 걸으며 북한산성의 묘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산성 아래로 간간이 내비치는 확 트인 풍광은 곳곳에서 발길을 머물게 한다(북한산을 두르는 8km의 산성을 따라가며 등반하는 북한산성 종주 코스도 있다). 

계속해서 산성을 따라 걷다 보면 좌우로 성벽을 날개처럼 펼치고 호령하듯 서 있는 동장대를 만난다. 이곳에서 장군은 적군의 침략을 감시하며 군사들에 지시를 내렸을 테지만, 지금은 등산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 됐다. 

산성을 따라 군데군데 뚫려 있는 성문을 통과하면 어디로든 하산하기가 편리하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나도 김밥과 따뜻한 커피로 요기를 하고 하산할 채비를 서두른다. 여기에서 계속 산성을 따라가다 용암문을 통과해 하산하면 출발지인 도선사에 닿고, 조금 더 가다 대동문을 통과하면 보광사나 백련사로 하산할 수 있다. 이처럼 산성을 따라 군데군데 뚫려 있는 성문을 통과하면 어디로든 하산할 수 있는 것이 북한산 산행의 매력이다. 나는 북한산성계곡길을 따라 산성 매표소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북한산성계곡길은 다른 코스에 비해 다소 길지만 매우 완만해서 트레킹하듯 가볍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2시간 30분가량 비슷한 길을 걸어가야 하므로 스릴이 좀 떨어지긴 한다. 더불어 지금까지는 산의 능선을 따라 걸어서 햇살이 충분했지만 여기는 계곡 사이를 지나는 것이라 봄에도 바람이 차갑단다. 

한산 정상에서 바라본 노을이 장관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그렇게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하산 길 중간에 민가들이 모여 있다. 북한산의 수많은 절집을 지키던 절 아래 마을, 이른바 ‘사하촌’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집들은 이젠 적막하고 심지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다. 진현경 해설사의 말이 “올봄에 북한동 마을은  모두 산 아래로 이사를 가요. 수도며 전기며 부족한 것들이 많아서 산 속에서 사는 게 아무래도 힘들잖아요”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산 속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드물게 서울에 남았던 사하촌인 북한동 마을의 빛바랜 풍경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봄에 산 아래로 이사를 할 사하촌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 사진 / 최혜진 기자

하산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건강해 보이는 할아버지를 만나 “북한산 자주 오시나봐요?” 하고 물으니 “나야 여기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오지” 하신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설악산이 좋다, 한라산이 좋다 해도 나이 들어서 어디 멀리 가기가 쉽나. 그런데 여기 북한산은 지척이라 얼마나 좋아. 또 코스는 얼마나 많은지 평생을 다녔어도 산을 다 못 봐. 여기 산성길도 좋지만 저쪽 반대편에 진달래 능선은 봄에 얼마나 좋게? 길마다 각자 다 맛이 달라서 자주 와도 매번 달라” 하신다. 

과연 북한산의 매력을 요목조목 제대로 짚어주신 말씀이다. 실로 서울 안에 이런 명산이 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제 곧 북한산에도 아랫세상보다 늦은 봄소식이 날아들고 진달래, 개나리가 활짝 피어 알록달록한 봄옷으로 새 단장을 할 것이다. 올봄엔 따사로운 햇살 아래 봄꽃을 보고 봄기운을 흠뻑 느끼러 지하철을 타고 북한산에 나서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