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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시장 탐방] 가성비 넘치고 트렌디한 오일장 구경, 고령 대가야 시장
[전통시장 탐방] 가성비 넘치고 트렌디한 오일장 구경, 고령 대가야 시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3.04.13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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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대가야 시장에서는 매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고령]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곧잘 시장을 따라나서곤 했다.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동행을 자처한 건 혹시나 주전부리 기회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 때문이다. 장터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어느 단란한 가족을 보니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이젠 몸이 불편한 어머니 모시고 시장 구경 한번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5월이다.

경북 고령은 한때 가야연맹의 맹주 노릇을 했던 대가야국의 근거지다. 가야금이란 악기가 나왔을 정도로 높은 문화 수준을 가졌다. 지금도 대가야 왕들의 무덤인 지산동 고분군이 남아있어 옛 영화를 살펴볼 수 있다. 고령의 유일한 등록시장으로 민간시장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도 고령 대가야 시장이다. 4일과 9일에 5일장이 열리는 정기시장이다.

고령 대가야 시장 입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경상남도에서 올라온 싱싱한 멍게.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원기회복에 좋은 인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대가야 철기문화를 잇는 대장간 이야기

고령시장 초입에 각종 농기구를 펼쳐 놓고 파는 곳이 있어 절로 눈길이 갔다. 철물점인가 싶었는데 아니다 대장간이다. 요즘 세상에 대장간이라니. 그렇다. 대가야는 철기문화로 유명했다. 철로 농기구를 만들고 무기를 만들었으며 수출도 하였다. 대가야의 맥을 2023년 대한민국 고령에서 잇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지 몰라도 반가운 마음은 숨길 수 없다.

대장간은 쇠를 녹여서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불을 다루어야 하고 힘도 써야 하는 곳이다. 어느 동네인가는 여성 대장장이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보통은 숙련된 남자들이 해야 하는 위험하고 그만큼 험한 일이다. 20년째 쇠를 다루고 있는 이준희(50) 대표는 1,000도 이상 넘어가는 불로 쇠를 녹인다고 한다. 상상하기 힘든 초고온이다. 기술을 부친에게 물려받았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이어받은 가업이라 굳이 역사를 따지자면 7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농촌지역이다 보니 이 대표가 주로 만드는 쇠 제품은 괭이, , 쇠스랑 등의 농기구가 대부분이다. 가끔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 제작을 하기도 한다.

대장장이 고령대장간 이준희 대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대장간에서는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고 판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괭이, 호미, 쇠스랑 같은 것들은 자동차의 판스프링을 사용하여 만들지만 낫은 신재를 사용합니다. 낫만큼은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고 배웠어요.”

오늘 같은 장날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만드는 작업보다는 판매 위주로 영업한다. 쇠 두들기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하니 철근을 하나 집게로 집어 화로 속에 집어넣는다. 금세 다시 꺼냈는데 빨갛게 달궈졌다. 모루에 올려놓고 익숙한 놀림으로 망치질을 하니 벌겋게 달궈진 철근이 사방으로 불꽃을 토해낸다.

손님들이 만족할 땐 보람도 느끼곤 하지만 내 맘대로 안 될 때는 힘들기도 하죠. 어깨를 많이 쓰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가기도 하고, 눈에 쇳가루나 돌가루가 끼기도 합니다. 그럴 땐 집에서 플래시 비춰 직접 빼내기도 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고된 일에 따르는 어려움이 충분히 짐작된다. 수입산 농기구들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농기구는 단단하고 오래 써서 아는 사람은 일부러 찾아온다. 대가야 후손 대장장이의 혼이 들어간 핸드메이드가 아닌가!

오는날 장날의 뒷고기.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시장 뒷고기 외식으로 가족나들이하는 가족 여행객.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뒷고기와 수구레, 서민들을 사로잡다

사실, 고령오일장의 첫인상은 대장간보다도 그 옆집인 작은 식당이 독차지하고 있다. 간단하게 고기를 구워 먹는 곳인데 홀이 좁다 보니 바깥에도 테이블을 내놓았다. 그곳에선 고기 굽는 냄새가 불 냄새와 뒤범벅되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제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도 그 냄새를 피해서 시장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로 보였다. 그래서일까, 그 집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도대체 뭘 파는 집인가 들여다봤는데 큼지막한 글씨는 한우도 돼지갈비도 삼겹살도 아니었다. ‘뒷고기였다.

뒷고기는 보통 상품성이 낮은 부위들을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대량 유통될 수 없는 부위다 보니 잡다한 부위들이 섞여 있다. 머릿고기를 비롯해서 뒷덜미에 해당되는 항정살, 턱밑살, 코살 등이 해당한다. 이 집은 뒷고기라고 해놓고 목살·뱃살·삼겹살·뽈살·항정살 등이 섞여 있다고 표기했는데 수요가 많고 가격이 비싼 삼겹살이나 목살이 많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뒷고기의 매력은 저렴한 가격이다.

고기 구이용 솥뚜껑 불판.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경상도에선 상어고기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이곳 메뉴판에는 400g18,000원이라고 되어있는데 100g으로 따지자면 4,500원인 셈이다. ‘오는 날 장날이라는 간판처럼 붐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령은 수구레국밥으로도 유명하다. 시장에 유독 많이 보이는 수구레란 이름도 일종의 뒷고기이다. 좀 더 품위 있게 말하면 소의 특수부위라 할 수 있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의 가죽과 살 사이의 아교질 부위인 근막을 말한다. 옛날에 비싼 소고기를 대신하여 우피와 근막으로 탕과 볶음 등의 요리를 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수구레국밥을 취급하는 여러 식당들 중에서도 고령원조소구레는 원조로 통한다. 모친이 40년간 경영하던 식당을 물려받아 가업을 잇고 있는 이는 최수영(45) 대표다. 그에 따르면 소 껍데기에는 묵을 만들 정도로 젤라틴 함량이 많다고 한다. 예전에는 하찮은 부위여서 저렴하였으나 요즘은 물량이 귀하여 구하기도 힘든데다가 오히려 소비는 늘어서 가격이 많이 올랐단다.

고령원조소구레 최수영 대표가 손님을 맞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소 근막과 우피 등으로 만드는 수구레국밥.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할머니 때부터 하시던 사업이죠. 1953년에 한국전쟁 끝나고 허허벌판에 먹을 것도 제대로 없을 때 머리에 큰 대야를 이고 다니시며 장사하셨다고 해요. 1918년생이셨으니 살아계신다면 106세 되시겠네요. 다른 지역엔 있는지도 모르겠고 대구, 경북 지역에선 최초의 수구레국밥집이라 할 수 있죠.”

자부심이 가득하다. 연신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사장님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시장 구경에 나섰다. 수구레국밥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가마솥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그런데 가마솥은 뒷전이고 맨 앞 좋은 자리는 솥뚜껑이 차지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보통 솥뚜껑이 아니고 고기구이용 불판이다.

시골에서 가마솥 뚜껑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은 흔한 편이다. 그만큼 잘 구워지고 기름도 잘 빠지기 때문인데 아예 고기 불판용으로 판매되는 솥뚜껑을 5일장에서 만난 것이다. 심지어 기름칠까지 되어 있는 잘 관리된 솥뚜껑 불판도 있다. 돌아서면서 드는 생각이 시골 5일장이라고 해서 추억만 파는 옛 시장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참 트렌디하고 감각적이다.

<여행쪽지>

진미당제과 수제 찹쌀떡.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진미당제과 60년 전통의 찹쌀떡 전문점. 국산 찹쌀을 쓰는데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이 살아있다. 팥소도 지나치게 달지 않고 속이 편하다. 방부제를 넣지 않고 100% 수작업을 고집하며 그날그날 만들기 때문에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장날이나 휴일에는 더 일찍 품절 된다. 문의 054-954-2743

고령원조소구레 장날이 아닌 날도 영업은 하지만 저녁 장사는 안 한다. 보통 오후 5시 경이면 끝난다. 문의 054-956-0254.

고령대장간 010-3817-4751

오는날 장날 010-3469-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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