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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역사 탐방]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 재건로 따라 걷기, 거리마다 백성들의 응원소리가 들리더라
[역사 탐방]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 재건로 따라 걷기, 거리마다 백성들의 응원소리가 들리더라
  •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
  • 승인 2023.10.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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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를 건너는 답사단원들. 지난 9월 9일 걷기 마지막 날이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진도대교를 건너는 답사단원들. 지난 9월 9일 걷기 마지막 날이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여행스케치=해남] 경남 진주에서 전남 진도까지 약 500km. 이순신 장군이 구금되었다가 백의종군하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조선 해군을 재건한 길을 땡볕에서 <난중일기> 쓰는 마음으로 완주한 전남지역 교사들의 열정을 따라가 본다.

그 옛날에도 땡볕을 걸었을 터
정유재란 때인 1597년 음력 83.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됐다. 이순신은 곧바로 진주에서 하동을 거쳐 구례, 곡성, 순천, 보성, 장흥 등지에서 병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확보하며 전열을 정비해 일본군과 건곤일척의 전투를 준비했다.

이순신은 이 수군을 이끌고 그해 음력 916(양력 1026)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궈냈다. 조정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수군 철폐령까지 내려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라도 백성들의 열성적인 지원을 받아 조선수군 재건에 성공한 덕분이었다.

여름 한낮의 하동 섬진강변. 조선수군 재건길 답사단은 8월 5일 이 길을 지났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여름 한낮의 하동 섬진강변. 조선수군 재건길 답사단은 8월 5일 이 길을 지났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답사단의 걷기는 한여름 땡볕을 피해 이른 새벽에 시작됐다. 지난 8월 26일 일출 무렵.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답사단의 걷기는 한여름 땡볕을 피해 이른 새벽에 시작됐다. 지난 8월 26일 일출 무렵.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이순신 장군이 조선수군을 재건하며 걸었던 길을 따라 걸은 교사들이 있다. 모두 전남의 일선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문적 학습공동체(회장 김금희) 소속 교사들이다.

경상남도 진주 원계리에서 전라남도 진도 벽파진까지 자그마치 500! 유난히 무더운 여름날에! “직접 걸으면서 두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느꼈지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남은 유적은 물론이고, 풍경까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했는지, 실감했어요. 전라도 백성들의 헌신과 희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 후손으로서 자긍심도 갖게 됐습니다.”

우산을 펴들고 걷는 답사단원들. 비가 내린 지난 8월 9일 옥과에서 석곡으로 이동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우산을 펴들고 걷는 답사단원들. 비가 내린 지난 8월 9일 옥과에서 석곡으로 이동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진도 해안길을 따라 걷는 답사단원들. 지난 9월 9일 진도 벽파진에서 해남 우수영에 도착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진도 해안길을 따라 걷는 답사단원들. 지난 9월 9일 진도 벽파진에서 해남 우수영에 도착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김홍렬 전 순천공고 교장의 말이다. 지난 2월 퇴임한 김 전 교장은 이번 전남도교육청 조선수군 재건길 답사단의 단장을 맡았다. 역사를 전공하고, 그동안 발품을 팔아 마을 골목길까지 꿰뚫고 있는 문병빈 교사는 걷는 길 곳곳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한 전설과 유적,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 교사는 순천 금당중학교에서 퇴직했다.

답사는 한여름 땡볕에 맞서 지난 83일부터 99일까지, 모두 세 차례로 나눠 진행됐다. 22개 구간으로 나눠 22일 동안 진행된 답사에는 김 교장과 문병빈, 서재준, 이우철, 박영희 등 퇴직 교사들이 앞장섰다. 강정희, 오광성, 김현옥 등 현직 교사들도 일부 구간을 함께 걸었다. 연인원 250여 명이 함께했다.

나라를 지키다 스러져간 사람들의 흔적들
대장정은 지난 83일 경남 진주 원계리 손경례의 집에서 시작했다. 손경례의 집은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제3대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교지를 받은 곳이다.

진주 원계리 손경례의 집. 조선수군 재건길 답사의 출발점이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진주 원계리 손경례의 집. 조선수군 재건길 답사의 출발점이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화개장터를 거쳐 섬진강변을 따라 경상남도 도계를 넘어갔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화개장터를 거쳐 섬진강변을 따라 경상남도 도계를 넘어갔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양력과 음력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날짜에 맞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한여름 무더위가 부담스러웠지만, 여러 선생님의 참여를 위해서 방학기간으로 잡았어요. 폭염도 우리의 기세를 꺾을 순 없었죠.”

김홍렬 단장과 답사단은 간단한 출정식을 갖고 진주 손경례의 집을 출발했고,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훈련시킨 진배미 유적을 거쳐 덕천강을 건넜다. 진배미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마지막 지점이기도 하다.

답사단은 첫날 진배미 유적에서 하동군 옥정면을 거쳐 백토재, 황토재를 넘어 횡천면까지 22를 걸었다. 둘째 날엔 횡천면에서 적량초등학교와 금강마을·두곡마을을 거쳐 평사리공원까지 갔다.

구례와 하동.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있는 석주관 전경.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구례와 하동.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있는 석주관 전경.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섬진강 남도대교에 닿은 답사단원들. 걷기 사흘째.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섬진강 남도대교에 닿은 답사단원들. 걷기 사흘째.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진주에서 하동으로 가는 길은 첩첩산중이었어요. 고개를 여러 개 넘었는데 몸이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힘이 많이 들었죠. 이순신 장군은 한달음에 구례까지 달려갔다지만, 저희한테는 하동까지도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지난 2월 무안고교에서 퇴직한 이우철 교사는 답사단의 기록을 맡아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까지 촬영했다. 걷기만 하는 사람보다 힘이 몇 배 더 드는 건 당연했다. 셋째 날엔 평사리공원에서 최참판댁, 화개장터를 거쳐 섬진강변을 따라 경상남도 도계를 넘었다. 전라남도 땅에선 피아골 입구를 지나 석주관까지 걸었다. 석주관은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의병과 승병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넷째 날은 석주관에서 운조루, 용호정을 거쳐 정유재란 출정공원, 섬진강 대숲을 지나 구례구까지 갔다.

구례읍내 정유재란 출정공원에 닿은 답사단원들이 문병빈 대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구례읍내 정유재란 출정공원에 닿은 답사단원들이 문병빈 대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구례읍에 있는 정유재란 출정공원은 사실상 이순신 장군이 조선수군 재건의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구례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 가장 먼저 찾은 관청(구례현청)이 있었다. 출정공원은 백의종군 때와 조선수군 재건 때 이순신을 가장 먼저 맞아준 손인필의 비각이 있던 자리에 조성해 놓았다. 손인필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이순신 장군의 지혜와 백성들의 희생정신
답사는 날마다 20넘게 걸으며 유적지를 찾아다니고 참배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한여름의 땡볕과 폭염을 감안해 새벽에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쉰 뒤 해질 무렵까지 계속 했다. 저녁엔 이순신 장군과 수군, 지역민의 마음가짐으로 한자리에 모여 토론을 했다.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쓰던 그 마음으로 답사 기록도 정리했다.

이순신 장군이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하고 장계를 쓴 보성군 보성읍 열선루 공원.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해남 이진마을 전경. 이순신 장군이 전함에서 내려 주민들의 극직한 보살핌을 받았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해남 이진마을 전경. 이순신 장군이 전함에서 내려 주민들의 극직한 보살핌을 받았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따라서 남도의 산길과 들길, 마을길과 해안길을 걸었지요. 산과 들에 눈을 맞추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차를 타고 달릴 때는 만날 수 없던 속살을 하나씩 접했지요.”

지난 2월 나주 금천중학교에서 퇴직한 박영희 교사는 책이나 영화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은 구례와 곡성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순천에서 무기와 대포, 화약, 화살을 구했다. 보성에선 군량미를 다량 확보했다. 조정의 수군 철폐령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장계를 써서 올린 곳도 보성이었다. 장흥에선 조선수군의 남은 함대 12척을 회수해 수군의 면모를 갖췄다.

진도 벽파진 전경.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이 명량대첩 하루 전날까지 머물렀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진도 벽파진 전경.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이 명량대첩 하루 전날까지 머물렀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벽파진 전첩비.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준비한 진도 벽파진 언덕에 서 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벽파진 전첩비.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준비한 진도 벽파진 언덕에 서 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답사단은 악조건에서도 철저한 준비를 통해 명량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투혼을 배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순신 장군의 지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오늘날 우리 앞에 닥친 역경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도 불태웠다.

조선수군 재건로를 따라 걷는 길에 볼거리가 많았어요. 섬진강과 보성강은 물론이고 순천 낙안읍성, 보성 차밭, 강진 마량항, 완도 고금도와 신지도, 해남 땅끝, 해남 우수영, 진도대교, 벽파진까지 다 만났습니다. 말 그대로 감동의 여정이었지요.”

진도대교와 울돌목.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이룬 바다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진도대교와 울돌목.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이룬 바다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걷기 대장정의 마지막 날인 9월 9일 해남 우수영 해안을 걷는 답사단원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걷기 대장정의 마지막 날인 9월 9일 해남 우수영 해안을 걷는 답사단원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답사의 종착지점인 해남 우수영의 명량대첩비. 대장정을 끝낸 단원들이 둘러 서 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답사의 종착지점인 해남 우수영의 명량대첩비. 대장정을 끝낸 단원들이 둘러 서 있다. 사진 / 이돈삼 시민기자

서재준 교사는 강진 청람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잖아요. 우리 선조들이 목숨 걸고 싸워 지켰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현직 교사들이 함께 역사의 현장을 직접 걸으면서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이제 학생들을 위한 자료집을 만들 계획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남도의병의 희생을 제대로 알고,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답사단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정성일 순천 신흥중학교 교감의 말이다.

정유재란 때로 시간여행을 떠난 전남 전·현직 교사들의 흥미진진한 답사기와 함께 이들이 만들 학생 수업 자료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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