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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물관 여행] 가족과 함께 공부, 구경, 힐링을 한 방에, 국립한글박물관
[박물관 여행] 가족과 함께 공부, 구경, 힐링을 한 방에, 국립한글박물관
  • 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16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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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한민족의 자랑인 국립한글박물관의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우리나라와 한민족의 자랑인 국립한글박물관의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세계 최고의 문자라는 한글을 가진 나라. 한국과 한민족의 자랑인 국립한글박물관에 다녀왔다. 외국어에 밀리고, 글자 가지고 장난하고, 국어를 왜 따로 공부해야 하느냐고 따지는 시대에 한글의 소중함을 보고 왔다.

안물안궁은 무슨 말일까?
세계의 보물이자 배달민족의 얼인 한글의 수난이 도를 넘었다. 은밀히 소통하는 은어나 새로운 외국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글자와 단어의 형태를 완벽하게 왜곡하는 줄임말이나 이모티콘은 세대, 직업군 간 소통마저 불가능하게 한다.

지하철 이촌역. 국립한글박물관 정원과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지하철 이촌역. 국립한글박물관 정원과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국립한글박물관 가는 길의 거울못과 중앙박물관. 사진 / 최보기 작가
국립한글박물관 가는 길의 거울못과 중앙박물관. 사진 / 최보기 작가

안물안궁?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는 말로 관심 없다는 의사표현이다. ‘안습안구에 습기가 어린다(슬프다)’,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는 말이다. ‘ㅠㅠ, ㅜㅜ, ㅋㅋ, ㅎㅎ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은 일면 효율적 소통의 면모가 있기도 하나 ㅇㅋㅂㄹ(오케바리),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에 이르면 한글에 대한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맞지 않아서 백성들이 의사 전달에 어려움을 겪으므로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롭게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물론 일제 강점기 때 목숨 걸고 한글을 지켜냈던 장지영, 안재홍, 최현배 등 조선어학회 33인의 선열들이 알면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박물관 앞 정원에 자리 잡은 산청 매촌리 고인돌(기원전 5~4세기 추정).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앞 정원에 자리 잡은 산청 매촌리 고인돌(기원전 5~4세기 추정). 사진 / 최보기 작가

넓고 아름다운 용산 국립박물관 단지
서울 용산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던 1443년부터 현재까지 우리글, 한글의 역사를 보존해놓은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 더구나 바로 옆에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도서관, 극장()도 함께 있어 국립박물관 단지라 해도 손색이 없다.

지하철 이촌역(4호선)에서 지하 통로를 따라 걸으면 중앙박물관 경내에 곧바로 이른다. 널따랗게 잘 꾸며진 정원 한가운데 거울못을 따라 북쪽에는 남산을 배경으로 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도서관, 극장이, 남쪽에는 한글박물관이 자리를 잡았다. 거울못은 작지 않은 호수인데 건물 자체가 예술인 중앙박물관이 수면에 거울처럼 비춰서 거울못이다.

국립한글박물관 뒤쪽 석조물정원의 보신각 종. 조선 세조 14년(1468) 원각사에 걸기 위해 만들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국립한글박물관 뒤쪽 석조물정원의 보신각 종. 조선 세조 14년(1468) 원각사에 걸기 위해 만들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석조물정원의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세웠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석조물정원의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세웠다. 사진 / 최보기 작가

거울못 동쪽으로 중앙박물관과 한글박물관 사이에는 숲으로 우거진 오솔길들을 따라 야외 석조물정원이 조성됐는데 개성 남계원 칠층석탑,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영전사 보제존자 사리탑 등 다양한 석조유물과 함께 원각사 보신각 종(보물 2)이 전시돼있다. 이 석조물정원의 일부를 통과하면 한글박물관이 나타난다.

한글 창제와 발전 과정을 한눈에
한글박물관 왼쪽에는 아이들과 독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란도란 쉼터가, 앞에는 아담한 잔디밭에 잇대 경남 산청 매촌리 유적의 고인돌 7기가 보존돼있다. 한글박물관은 1층 한글도서관, 2층 상설전시실과 문화상품점, 3층 한글놀이터와 기획전시실이 있다. 한글을 주제로 박물관이 있는 것에 대해 창제, 보전 과정이 박물관을 꾸릴 만큼 책과 기록으로 남아있는 문자는 한글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한글은 한류, 케이 컬쳐(K-Culture)의 기반 텍스트로서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의 확산을 위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잘 가꾸어야 할 유산이라고 윤미선 박물관 문화교류팀장이 설명했다.

한글박물관 상설전시실의 3D입체 동영상 감상실.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상설전시실의 3D입체 동영상 감상실.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의 '훈민정음 해례본' 조명예술.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의 '훈민정음 해례본' 조명예술.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윤미선 문화교류팀장.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윤미선 문화교류팀장.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도서관은 <17세기 국어사전>, <고어대사전>, 옛날 교과서 등 한글 관련 귀중한 자료가 많아 국어 교사, 외국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 선생님 등이 많이 찾는다. 소장 도서는 열람만 가능하고 대출은 안 되는데 전자책은 대출이 가능하다. 이에 이윤아 사서는 한글을 공부하거나 신기해하는 외국인들에게 전래동화 그림책이 인기가 높다고 덧붙였다.

드디어 2층 상설전시실로 입장한다. 전시실 입구는 빛의 예술로 시작하는데 훈민정음 해례본’ 33장이 투명 재질의 입체로 제작돼 어둠 속에서 밝게 빛을 발하며 한글의 위용을 과시한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세종이 창제한 문자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1446년 한문으로 써서 반포한 책의 이름이다. 책에는 새로운 문자에 대한 해설과 용례가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도 부른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새로 창제한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책을 훈민정음 언해본이라고 한다. 훈민정음은 자모음 28개로 창제됐는데 현재 한글은 24개만 쓰고 있다.

한글의 창제 배경과 원리를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의 창제 배경과 원리를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2층 로비의 카페와 문화상품점.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2층 로비의 카페와 문화상품점. 사진 / 최보기 작가

이곳을 지나면 한글의 우수성을 추상적으로 보여주는 4면 입체 영상관이 있고, 뒤이어 다양한 한글 유물들과 대면하게 된다. 문자에 특화된 박물관이다 보니 전시품도 주로 책, 문서, 편지 등 서책 위주다. 앞서 설명한 <훈민정음>(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언해본>의 전시는 기본, 세종이 훈민정음을 시험하려 지은 <용비어천가(1659년 목판본)>와 부처를 칭송한 <월인천강지곡>, 수양대군(세조)이 부처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석보상절>을 비롯해 각종 불경을 번역한 책들이 가득하다.

한글 창제의 큰 목적인 소통의 결과물 편지
이렇게 박물관이 고서들만 내리 있다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 마시라. 다른 구경거리도 많다. 당시 금속활자와 활자를 담아 묻었던 항아리, 인쇄목판, 세종대왕을 상징하는 세종어보(도장), 점을 치는 도구와 책, 요리책, 병법책, 주인 이름을 한글로 새긴 실패, 현존 한글 타자기 중 가장 오래된 송기주 타자기(1934) 등 각종 생활용품도 있다.

조선시대 한글로 쓴 각종 서책과 편지. 사진 / 최보기 작가
조선시대 한글로 쓴 각종 서책과 편지. 사진 / 최보기 작가
정조가 큰외숙모에게 한글로 쓴 편지. 사진 / 최보기 작가
정조가 큰외숙모에게 한글로 쓴 편지. 사진 / 최보기 작가
조선시대 한글로 쓴 요리책. 사진 / 최보기 작가
조선시대 한글로 쓴 요리책. 사진 / 최보기 작가

1932년 조선어학회의 잡지 <한글> 창간호와 윤동주 시집(1948), 청록파(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시인의 시집(1946), 일제 강점기 활자본 소설책 등은 한글의 역사를 넘어 아련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뜻밖에 눈길을 끄는 것은 편지였다. 현대 한글로 번역하면 계속하여 추위가 매우 심하오니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섣달 그믐날 밤이 열흘 앞이오니 식구들 거느리시고 과세 만길하심을 다시금 바라옵니다. 인삼 한 냥, 돈 일백 냥, 쌀 한 섬 담뱃대 한 개, 향담배 다섯 근, 병진 십이월은 정조가 큰외숙모에게 쓴 편지고, ‘다른 것이 아니다. 네놈이 공연히 내 집 논밭을 거짓 문서로 차지하여, 넉 섬 도지란 것이 워낙 볼품없는데 또 흉악을 부리다가는 나도 분한 마음이 쌓인 지 오래니 큰일을 낼 줄 알아라는 편지는 1692107일 양반 송규령이 백천에 살면서 자신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노비 기축에게 쓴 것이다. 하층계급인 노비도 한글로 소통했음을 알 수 있는, 몹시 놀랍고 소중한 자료다.

세종대왕을 상징하는 도장 세종어보. 사진 / 최보기 작가
세종대왕을 상징하는 도장 세종어보.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1층 한글도서관.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1층 한글도서관.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1층 한글도서관 이윤아 사서. 사진 / 최보기 작가
한글박물관 1층 한글도서관 이윤아 사서. 사진 / 최보기 작가

국립박물관 단지사용설명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국립 중앙박물관, 한글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및 부대시설 등 국립 박물관 단지를 여유 있게 관람하려면 한 번 방문으로는 무리다. 박물관마다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병행하므로 이를 참조해 나누어 방문하기를 권장한다.

한글박물관 관람 후 석조물정원 산책과 거울못 힐링을 거쳐 오솔길로 연결된 용산가족공원이나 어린이공원에 들리는 동선을 고려해볼 만하다. 내친김에 중앙박물관으로 갔는데 좀 무리다 싶으면 상설전 시실 2210사유의 방에 들려 반가사유상만 감상해도 그때까지 쌓인 피로가 싹 가실 것이다. 중앙박물관 굿즈샵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 중 하나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라고 한다. 카페와 식당은 경내 여러 곳에 있으므로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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