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파주] 땔감과 생선을 싣고 푸른 강물을 따라 마포나루로 떠난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5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산천은 다섯 번도 더 바뀌었다. 빈 강에 다시 배가 뜬다. 이번엔 사람들을 가득 싣고… 누런 황포를 활짝 펼친 황포돛배가 돌아왔다.
50년이 넘어가는 분단의 역사 속에 강은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실향민들만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 치며 눈물 흘리는 통한의 강으로 새길 뿐. 한반도에서 7번째로 크다는 강은 여느 사람들에게는 분단의 대명사일 뿐이었다.
강은 그러나, 여전히 강이다. 풍부한 수량과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는 자연이다. 파주 금촌이 고향인 푸름이네 식구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추억이 담긴 강이다. 이 강변에서 푸름이 초록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컸다.
일반인들이 많이 찾지 않는 강이라 더 그랬을까.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푸름이네 식구들에게 보여줬다. 그 강에서 아빠는 물고기를 잡고,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주워오고, 엄마는 매운탕을 끓였다. 자신들의 놀이터(?)에 돛단배가 떴다니 푸름이네 가족의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황포돛배가 54년 만에 뜬 곳은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 나루터. 평소 사람들 발길이 잦지 않았던 곳이니만큼 아직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두지리 큰 길에서 나루터까지 가는 길은 누런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비포장 길이다.
부랴부랴 새롭게 지은 가건물이나 흰자갈이 깔린 주차장이나 여기저기에 서두른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몰려든다. 잊혀졌던 강에 황포 돛배가 뜬다니 너도나도 타보겠다고. 주말이면 3~4백 명씩 밀려든다.
두지나루에서 20분 거리인 고량포 여울목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 비교적 짧은 거리라든가, 황포 돛을 펼치기는 하지만 실은 동력으로 가는 배라는 것 등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할 법 한데 크게 불평을 않는 걸 보면 임진강에서 배를 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한가보다.
“저 아래 저기서 고기를 많이 잡았어요. 위쪽으로도 많이 갔고. 강물이 많이 파래졌네….” 자칭 타칭 ‘임진강 어부’로 불리는 푸름이 아빠 말이 예전엔 물이 검푸르렀다는 것이다. 위쪽에서 한탄강과 합류하는데 한탄강 인근에 염색공장이 많아 물이 검었다는 것이다.
임진강은 멀리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을 하여 북한지역에서 고미탄천과 평안강을 받아들이고 남쪽으로 내려와 한탄강과 문산천과 합류한다. 이렇게 남한지역을 휘돌다 다시 고량포를 지나 북으로 들어간 다음 한강 하구와 만나러 나오는데 그 곳은 남북공동수역으로 유엔이 관리하고 있다.
황포 돛배는 위쪽에서 땔감과 생선 등을 싣고 한강 마포나루까지 가서 팔고, 새우젓이나 소금 등 산골에서 필요한 물건을 싣고 올라왔던 서민 운송수단의 상징이었다. 질긴 광목에 누런 황톳물을 들였는데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천사이로 빠져나가는 미세한 바람까지 막기 위해 입자가 고운 황톳물을 들였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인적 드물어 오히려 낯선 임진강변. 강변 양쪽의 적갈색 절벽이 바로 겸재 정선 ‘임진적벽도’의 주인공들. 적벽 뱃놀이는 임진 8경 중 하나로 꼽혔다는데 이 봄 푸른 강물에 두둥실 ~ 뱃놀이는 어떨까?
Tip. 가는 길
자유로 -> 임진각 직전에서 당동 IC로 빠져나와 37번 국도 -> 파평면을 지나 -> 적성면 면소재지에서 일흥약국이 있는 네거리에서 좌회전후 약 3km ->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좌회전해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두지리 나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