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음성] 충북 음성 오갑산 끝자락의 한 복숭아 농장. 복숭아 먹으러 농장에 왔던 한 충주아가씨는 그녀에게 맛있는 복숭아를 골라준 농장 청년에게 마음을 주게 됩니다. 척추 장애를 지녔지만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청년과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5년. 복숭아 과즙처럼 달짝지근한 향기를 풍기는 한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굵은 장대비가 뿌리던 날. 마을 입구에서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한 권오화씨를 따라 마을 끝자락에 있는 복숭아 농장으로 갔었지요. 오두막으로 가니 충주아가씨 금년씨가 기다렸다는 듯 “복숭아 먹어봐야쥬~” 합니다. 사람이 오면 반가워서 방실방실 웃음만 짓는 부부는 웃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충주가 고향인 박금년씨가 오화씨를 만난 건 6년 전. 충주에서 자주 가던 야채가게 총각(권오화씨 친구였지요)에게 이 집 복숭아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함께 농장을 찾았답니다. 동생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던 오화씨는 손님이 찾아오면 늘 그렇듯 맛있는 복숭아를 골라 배불리 먹게 해주었지요.
복숭아도 사고 실컷 맛볼 수도 있어서 또 들르게 된 복숭아 농장에서 금년씨는 힘들게 일을 하는 오화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녀와 총각이 자주 만나면 그렇듯 둘은 사랑에 빠졌답니다. 급기야 금년씨는 충주에 가지 않고 농장에 눌러 앉아 일을 거들게 됐답니다.
그렇게 만나 5년 전 결혼을 하고 이제는 오화씨와 금년씨를 반씩 쏙 빼닮은 4살 된 딸 미예를 두었습니다.
“그니까, 미예 엄마가 나를 꼬신고유~. 그래서 순진한 내가 넘어갔지.”
“아이구, 집이가 나를 꼬셨지.”
서로 눈을 흘기며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하는 듯 멋쩍은 웃음만 보입니다. 화통하고 똑부러지는 금년씨와 꼼꼼하고 자상한 오화씨는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보완해주는 천생연분입니다. 척추 장애가 있는 오화씨가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면 금년씨가 와서 냉큼 들어주고, 금년씨가 높은 곳에 있는 복숭아를 따지 못하면 오화씨가 긴 팔을 뻗어 도와줍니다.
“애 아빠가 촌에서 농사짓고 힘들어 보이고. 무엇보다 너~무 착해서 이 사람이구나 싶었지유. 다른 사람은 못 만날 것 같더라구유” 하며 웃는 금년씨.
3~4곳에 분산된 1,200여 평의 복숭아 농장은 부부와 시동생이 함께 운영합니다. 봄에는 화창하게 핀 꽃을 솎아주고, 여름에 복숭아가 여물기 시작하면 봉지를 씌우고, 가을에는 거름을 주고 겨울이 돼서야 겨우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깁니다.
한바탕 쏟아졌던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부부와 미예가 바빠집니다. 비 때문에 미뤄진 복숭아 수확을 서두르는데 미예도 제법 거드네요. 팔과 다리에 모기 물린 자국이 많은 것도 엄마와 아빠를 도와서 복숭아를 나르다 생긴 것이랍니다. 6~7월의 크고 부드러운 미백부터 9~10월의 단단한 황도까지 다섯 달에 걸쳐 수확을 하는 복숭아는 품종에 따라 수확시기도 다 다릅니다.
부부의 농장에도 12가지의 품종이 있는데, 맛도 맛이지만 부부가 전해주는 정 때문에 일부러 들러서 사가는 단골이 많습니다. 사기 전에 실컷 맛을 보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구요. 비와 바람으로 떨어진 복숭아는 잼도 만들고 갈아서 쥬스로 마시라며 그냥 줍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에게 대하듯 옥수수도 쪄주고 호박과 가지도 가져가라며 복숭아 위에 얹어준답니다.
“내가 살던 충주에서는 담배농사를 지었쥬. 중학교 3학년까지 일도 거들었고. 난 촌에 살고 싶었어유. 이것저것 길러서 사람들과 나눠먹는 게 좋아서요.”
서울과 용인에서 이곳까지 복숭아를 사러 오게 하는 비결이 있다면, 마음이 넉넉한 부부가 베푸는 살가운 정과 방실방실한 웃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년씨 말처럼 복사꽃이 피면 꼭 놀러 가렵니다. 떨어진 황도로 만든 복숭아즙이 그렇게 맛있다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