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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남미 자전거여행] 순박한 사람들의 땅 볼리비아 18개월째 계속되는 남미 자전거 일주
[남미 자전거여행] 순박한 사람들의 땅 볼리비아 18개월째 계속되는 남미 자전거 일주
  • 김문숙 기자
  • 승인 2006.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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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저 길의 끝에서무엇을 만나게 될까?"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여행스케치=볼리비아] 작년 5월말 남미대륙 자전거 일주를 시작한 김문숙(37)·에릭 베어하임(44·독일인) 부부가 3,180m의 안데스 산맥을 넘고 아르헨티나에서의 교통사고를 털고 다시 일어나 볼리비아에 도착했다. 

14년 만의 방문. 에릭이 항상 노래 부르던 볼리비아 땅이 앞에 있다. 사실 설렘과 기대보다는 은근히 겁이 났다. 최근에 반미 감정이 악화되고 외국인에 대한 횡포가 많다는 이야기들을 들은 터라 혹시나 에릭을 미국인으로 생각해 해코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쩌나 싶은데다 도로 사정도 매우 좋지 않다 들었기 때문이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다리를 건너 볼리비아, 야쿠이바에 도착했다. 으악!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첫 느낌은 인도였다. 잡동사니 쓰레기, 리어커꾼, 개, 돼지, 똥, 바글바글한 사람들, 장사꾼 등 세상의 번잡한 것들은 여기 다 모였다. 자전거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 들어가자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다던데 완전 반대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자그만 시골 농장의 모습이 소박하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자전거 여행에서 펑크를 때우는 일은 필수이지만 난 아직 펑크를 때우지 못한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에릭은 여권에 거주 도장을 받으러 관세청에 들어가고 홀로 자전거를 지키고 있는데, 몰려든 사람 중 한 사람이 태극기를 알아보고는 “Eres Coreana?”(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본인이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 한국사람 식당에서 일했다며 김치, 오징어볶음 등 한국 음식을 손꼽았다. 그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틈을 타 다른 사람들은 이때다 싶은지 자전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Por pavor, no tocar”(제발 만지지 마시고 보기만 하세요)를 외쳐댔지만 듣는 둥 마는 둥. 이네들에게 우리 자전거가 마냥 신기한 한 모양이다. 한 사람이 만지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몰려들어 만지다 보면 자전거가 넘어지거나 도난의 염려가 있어 초긴장 상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아 살펴보니 마침 세관원이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보기만 하고 만지지는 말아달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바로 옆에서 자전거를 만지고 있는 사람을 작대기로 한대 때린다. 그러고는 “자전거 만지지마! 안 그러면 다들 이렇게 맞어!”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인도다. 

인도에서 우체국에 갔을 때 줄 안 선다고 항의하자 작대기로 우체국 직원이 사람들을 때렸던 적이 있다. 세관원이 때려도 아무 말 않고 씨익 웃으며 “반갑다, 좋은 여행하라”는 말을 남기고 간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어수룩하다고 해야 하나. 

어둡기 전에 시내로 들어와 숙소를 잡았다. 아르헨티나보다 많이 저렴한 숙소에서 첫날은 그럭저럭 잤지만 다음날부터가 문제였다. 작은 시골마을의 숙소라 많이 기대한 건 아니지만 어떤 곳은 한 10년 침대를 갈지 않아 침대가 휘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요구한다. 한 침대 당 15BS(약 2,500원). 싸긴 무지 싸지만 이건 방이 아니다. 지독한 냄새에, 바퀴벌레는 기어 다니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더 죽여주는 것은 화장실이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기를...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농장에서 소와 함께.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화장실이라고 안내해준 곳의 문을 여는 순간 똥파리 떼가 얼굴로 날아오고 악취로 구토 일보 직전이다. 정말로 암담하다. 아직 볼리비아 실정을 모르는 터라 마을 광장에서 무단 캠핑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도저히 그곳에서 잠을 잘 수 없어 머리를 굴리다 아르헨티나에서처럼 학교나 시청에 가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학교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자 우리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한다며 예전에 방으로 썼던 곳이 비어있으니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머물다 가라고 선처를 해 주었다. 샤워는 못하지만 받아놓은 빗물로 몸을 닦을 수도 있다고. 찬물 더운물을 가릴 상황이 아니다.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과 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시골로 들어갈수록 숙소사정은 더 열악하다. 한번은 마을에 숙소가 없어 농장에 캠핑을 문의했더니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치고 지내다 가란다. 오랫만에 농장에서 하는 캠핑이라 잠도 충분히 잘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오산이었다. 닭과 새가 밤새 울어대더니 새벽 4시가 되자 소떼들이 일제히 행진을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아침을 함께 먹겠다고 기웃거리는 닭들까지…. 재밌는 경험이었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기에 농장에서의 캠핑은 피해야겠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초원의 물가에서 풀을 뜯는 말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야쿠이바에서 싼타쿠르즈 가는 도로.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비상도로가 있어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교차가 너무 심해 기진맥진해도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달려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신나게 앞서 달리는데 자전거 거울에 에릭이 안 보인다. ‘어! 왜 아직도 안 오지. 길이 갈라지지도 않았는데…. 아, 펑크가 났구나.’ 힘들게 달려온 오르막길을 되돌아 가보니 에릭이 자전거의 펑크를 때우고 있었다. 그날은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점심으로 길에서 파는 엠파나다(파이 일종)를 먹고 떠나려는데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까만 눈만 말똥말똥거리다가 한 아이가 용기있게 선물을 달라고 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선물을 달라고 난리다. 준비한 연필도 없고 선물 생각을 하지 않았던 터라 난감해 하자 한 아이가 선물이 없으면 자전거를 달란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아줌마, 자전거 선물로 주세요."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싼타쿠르즈 근교의 사막인 로마스는 휴양지이다. 2006년 9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자전거로 뭣 하려고?” 물으니 자기도 우리처럼 자전거 여행을 하겠단다. “우리가 가진 것이 자전거가 다인데 네게 자전거를 주면 아저씨 혼자 어떻게 여행을 하고 아줌마는 뭐하지? 그리고 너한테는 자전거가 커서 타지도 못하는데….” 웃으며 자근자근 이야기하자 오히려 자전거를 달라고 한 것이 미안했는지 자기가 나에게 뭘 주면 좋겠냐고 묻는다.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아이다운 발상인가? 처음에는 우리 자전거가 좋아 보였는데 내 설명을 들어보니 오히려 내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엄마에게 물어서 자기 집에 와서 살게 해주겠다고 하던 아이들. 가지고 있던 사탕을 주려고 했던 아이들. 볼리비아의 이 아이들처럼 마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앞으로 우리들의 자전거 여행길이 수월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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