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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구촌 기행] 대자연의 화려한 향연 몽골 초원 머릿속 먹구름을 잠재워준 그 옛날 에덴동산 Mongol
[지구촌 기행] 대자연의 화려한 향연 몽골 초원 머릿속 먹구름을 잠재워준 그 옛날 에덴동산 Mongol
  • 김창완 기자
  • 승인 2006.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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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몽골 초원의 풍경.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여행스케치=몽골] 밤 9시40분 광주공항, 무작정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의자에 기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혼을 한 탓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딸아이와 같이 오고 싶었지만 여권이 준비되지 못해 데려 오지 못한 아쉬움, 직장과 일상생활 속에 얽히고 설킨 복잡함과 갑갑함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몽골에 하나밖에 없는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여 새벽 3시,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호텔에 투숙할 때까지도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늦어지는 입국수속과 수도임에도 길사정이 좋지 못해 덜컹거리는 버스는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다음날 아침 일행을 태운 버스는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테를지 국립공원을 향해 내달렸다. 드넓은 초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은 빼곡한 나무 대신 키 낮은 잡초로 뒤덮여 있었고 가끔 양떼와 소, 말, 야크 무리가 스쳐지나갔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넋을 잃게 만들고는 소낙비를 따라 사라져버린 쌍무지개.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뾰족하 이동식 천막인 게르와 몽골식 목조주택이 펼쳐져 있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마치 반복되는 재생영화를 보는 듯 약 1시간 30분 동안 초원을 달려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 있는 구르 캠프에 짐을 푼다. 캠프는 산비탈 경사진 곳에 있다. 그 산비탈을 타고 내린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으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고는 풀잎에 닿을 듯 말 듯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것처럼 초원의 이곳저곳에 퍼져가다 이내 앞을 가로막는 산에 타고 앉는 구름과 조우한다. 한낮에 내리쬐는 땡볕이 얄궂다는 마음을 읽었던지 어느새 구름은 해를 가리고 캠프 주변으로 커다란 그늘을 만든다. 

멀리 한 무리의 양떼들이 풀을 뜯는 가운데 말 타는 모습을 뽐내는 듯 마부의 말이 내달린다.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며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머릿속 먹구름이 걷혀간다. “이곳이 그 옛날 에덴동산이지 않을까요?” 라는 후배 녀석 말에 “저기 죽어있는 고목이 사과나무다” 라며 농을 받아칠 여유가 생긴다.

숙소인 반원모양의 게르(몽골 유목민식 숙소)는 양털로 뺑 둘러 덮여있고 간단한 조립식 침대들과 조그만 탁자, 나무난로가 놓여있다. 유목민들이 초원의 풀을 따라 이동하기 좋게 못을 사용하지 않고 간단하게 조립식으로 설치한 것이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거닐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 5~6살 꼬마들이 말을 타고 능수능란하게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특별한 배움이 없어도 이렇게 능수능란한 것은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먼 옛날 선조들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던 DNA 때문이 아닐까? 물론 추측이지만.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몽골인들이 예로부터 수호신으로 여기던 거북이 형상의 바위.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테를지 국립공원 내 구르 캠프에서 말을 타며 목가체험을 한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세계 최대 크기의 바위라는 거북바위를 보고 온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테이블 가득 이제 막 삶아낸 양고기가 올라왔다. 한국에서부터 공수해온 김치와 소주가 올라오고 주섬주섬 양볼 가득 고기를 물어뜯었다. 갑자기 밖에서 들려온 빗소리와 함께 “쌍무지개다!” 라는 외침이 들렸다.

밥숟가락을 놓고 게르에 두고 온 카메라를 가지러 오르막길을 뛰기 시작했다. 40세를 앞둔 나이를 증명이나 하듯 ‘허헉’ 숨이 차오른다. 거의 본능적이다. 땀과 빗방울이 범벅이 돼 흐르는 이마를 닦아내고 카메라 렌즈 너머로 제 빛깔을 잃어가는 쌍무지개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양고기를 입에 넣고 저마다 한마디씩 맛 품평회를 열었는데 비를 뿌리고 나타난 쌍무지개에 다들 넋이 나가있다. 

맑디맑던 하늘을 반토막낸 검은 비구름과 밝은 하늘빛 경계 사이로 ‘쌍무지개’가 떠 있다. 새색시처럼 수줍은 자태와 포즈를 취해준 쌍무지개는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진 소낙비 뒤를 따라 이내 사라져 버렸다. 

또다시 하늘이 맑아지더니 산등성이와 하늘 사이에서 붉은 낙조가 구름에 물들며 폭발할 듯 한 장관을 연출한다. 마음도 낙조를 따라 황홀경에 빠진다. 우리의 몽골방문을 환영이나 하는 듯이 자연은 연신 카멜레온 같은 마술을 펼쳐보였다. 고위도에 위치해 밤 10시30분이 돼야 어둠의 점령이 시작되지만, 자연의 마술은 마음의 여유를 주며 시간도 벌게 해주었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평생 이렇게 강렬한 낙조는 처음이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이러한 대자연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광주에서부터 기타를 둘러메고 온 가객 정용주 선생과 온 국민의 노래 ‘바위섬’을 만든 배창희 작곡가의 리드 아래 석양빛을 조명삼아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밤의 낭만을 즐겼다.

새벽 6시, 한껏 차가워진 게르를 데워 주기 위해 캠프 ‘헬퍼’들이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는 소리에 잠이 깼다. 대자연의 마력을 더 느끼고 싶어 카메라를 둘러메고 뒷산에 올랐다. 그렇게 새벽여유를 맘껏 누린 뒤 우리 일행은 야생화 감상을 하고 실제로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게르를 방문했다. 

밝은 미소로 우릴 맞이한 주인은 식탁 가득 가축의 젖으로 만든 여러 가지 유제품인 ‘하얀 음식’들을 차려냈다. 생소한 맛에 대한 호기심 이전에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손님 접대를 미덕으로 아는 몽골인의 따스함이 먼저 전해졌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일본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자이승 승전탑에서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하고, 몽골의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였던 이태준 열사의 기념공원과 몽골 마지막 황제의 겨울궁전을 둘러본 뒤 간등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의 남쪽 입구에서 정중앙으로 바라다 보이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25m 높이의 불상이 안치된 건물에 들어섰다. 구리로 전신을 만들고 순금을 입혀 만든 초대형 입상인 이 불상 안에는 각종 희귀한 보석들과 27t의 약초, 334권의 경전, 200만 질의 만드라, 그리고 세간살이까지 갖춘 몽골 게르가 들어있다고 하여 세 번을 놀랐다.처음에는 그 크기에 압도당했고, 두 번째는 라마교를 대하는 몽골인의 마음가짐에 압도당했고, 세 번째는 불상의 얼굴에서 배어나는 자비의 미소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경전을 읽는 대신 불경이 쓰여 있는 통을 돌리는 라마불교의 수행법이 독특하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전통 민속 공연 중 몽골 전통 춤을 선보이고 있다. 2006년 10월. 사진 / 김창완 기자

인간이 가진 오감의 한계가 아쉬울 정도로 황홀한 초원의 향연과 지금은 폐허로 남은 만취르 사원의 옛 영화를 더듬어 보며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몽골전통민속공연을 감상했다. 

특히 성대의 진동으로 목을 사용한 음악이며 몽골인만이 부를 수 있고, 알타이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두 가지 목소리 ‘후미’는 독특함을 넘어 신기했다. 틀에 박힌 인위적 소리가 아니라 자연의 소리로 엮어낸 그들의 음악이, 가냘프고 애절하게 때론 투박하고 거칠게 다가오는 우리의 것과 어찌나 비슷한지…. 

각종 몽골전통악기 연주와 민속춤은 간단치만은 않았던 하루의 피곤함을 녹여버렸다. 그렇게 몽골초원의 마술에 이끌려 머릿속 복잡함과 답답함을 비워내고 여유와 충만함을 한껏 채우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 이보다 더한 에덴동산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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