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산에서 만난 사람들] 지리산 치밭목 산장에서의 하룻밤 기어이 산장을 다시 찾게되는 이유는?
[산에서 만난 사람들] 지리산 치밭목 산장에서의 하룻밤 기어이 산장을 다시 찾게되는 이유는?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6.11.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겨울산장의 밤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등산객들.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산청] ‘겨울산장’. 왠지 모를 따뜻함이 전해진다. 깊은 산 속 통나무로 지어진 산장에서 코펠에 끓인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다. 지리산 치밭목 산장을 찾아 오가는 산객들을 만나며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파란 하늘이 더없이 청명하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기대하고 왔건만,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단풍잎이 쪼글쪼글 말라버렸다. 여기저기 ‘식수제한’이라는 푯말이 붙고 손을 씻을 곳도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다. 

대원사 밑의 정류소 식당에서 산채정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우고는 비구니 스님들의 사찰인 대원사를 지나면 유평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유평까지는 차가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 닦여있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치밭목 코스에서 만난 무재치기 폭포 아래의 다리.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겨울철 등산 준비물도 단단히 챙기고 새로 장만한 등산화를 신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하지만, 지리산은 초행이고 인적이 드문 치밭목 산장까지 1,425m의 높이를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때마침 치밭목에서 모임을 갖는 <지리산 산길따라> 등산동호회 회원들과 합류했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지리산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산꾼’들은 치밭목을 지키는 민병태 대장(그들은 그렇게 불렀다)이 지리산에 들어온 지 20주년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고 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불과 십여 분 만에 숨이 가쁘고 땀에 흠뻑 젖었다. 중간 중간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만나긴 했지만,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기자와 일행뿐이다. 치밭목 코스는 길이 지루하여 지리산 종주 시 하산코스로 대부분 이용하고, 치밭목 산장은 인터넷과 전화로 예약을 받는 다른 대피소와 달리, 9개의 지리산 대피소 중 가장 작아 전화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아 1박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치밭목 산장은 유평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사신제는 산신에게 한 해 동안의 안전 산행을 기원하고 스스로 안전산행을 다짐하는 것이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이 내려간다. 한 겹, 두 겹 벗어두었던 옷을 다시 껴입는다. 정상과 산 아래의 온도차는 두꺼운 점퍼 정도로 차이난다. 무재치기 폭포에 도착해 전망대에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폭포에서 흘린 땀을 씻어내고 잠시 바위에 앉아 여유를 맛본다. 흐르는 물소리는 반갑고, 흩날리는 낙엽에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차가운 폭포에 손을 푹 담그다 계곡 물속에 비친 지리산과 나무들의 영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매주 찾을 만큼 지리산이 좋을까?’ 지리산 산신령이 들으면 노할 일이지만, 신나서 산을 오르는 동호회 회원들처럼 한 주 걸러 한 번을 지리산에서 보내야 할 마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다. 

해가 짧아 어둑어둑한 산길을 헤쳐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깜깜한 밤이다. 초록색 모포가 가득한 군대의 내무반과 흡사한 작은 방에 짐을 풀었다. 야외 테이블의 한 팀은 벌써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저녁을 먹고, 진주의 ‘마차푸차레’ 산악회는 오늘 저녁 치밭목에서 시산제*(始山祭)를 지낸다며 빈대떡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는 등 분주히 음식을 만든다. 산장에서 취사는 가능하지만, 도구는 없다. 제에 쓰이는 음식까지 지고 온 정성에 놀란다. 

어둠 속의 산장을 둘러보는데 먼저 올라온 동호회 회원들이 놀라운 저녁상을 내민다. 1박2일 여정에 80ℓ배낭을 진 회원들의 가방 속이 내심 궁금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홍합과 칵테일 새우 등 해산물을 넣은 잔치국수, 산 낙지, 데친 낙지, 소주에 붉은 단풍잎을 띄운 일명 ‘첫사랑의 눈물주’까지…. 최고 160회 이상 지리산 종주를 한 베테랑 산꾼이 있는 동호회는 먹는 것부터 푸짐하다. 

밤이 늦었어도 야간산행을 하며 한명 두명씩 사람들이 산장을 찾는다. ‘산길따라’ 동호회 회원 한 분은 광양에서 싱싱한 아귀를 갖고 도착하고, 진주의 산악회 회원 너댓명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산장에 속속 도착해 땀에 절은 옷부터 갈아입고 바로 제를 지낸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물도 나오지 않아 산장 뒤편의 샘물을 길어다 식사를 준비하고, 재래식 공용화장실은 밤 10시면 발전기로 돌리는 전기마저 다 소등되는 산장, 거기다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산장지기까지.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첫사랑을 생각하며 마신다는 첫사랑의 눈물주.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숙박 이용료는 5000원, 담요 대여는 10002원이다. 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13년 만에 치밭목 산장을 찾았다는 옆 테이블의 남자에게 다시 산장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젊었을 때 멋모르고 찾았다가 지리산과 산장에 반했죠. 직장생활 때문에 산장에 묵을 여유가 없었는데 맘먹고 친한 친구랑 같이 왔어요.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숙박료와 컵라면 가격까지요. 그게 산장의 매력 아닐까요?” 

그 옆의 호남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졸업생 두 명과는 산행 중 동석한 사이. “작년에 교수님 따라 ‘등산 및 야영’수업을 치밭목에서 했어요. 정남주 교수님인데, 우리 교수님 이름 꼭 써주세요. 이런 좋은 곳을 알려준 고마운 분이세요. 다시 찾은 이유, 첫째는 아무나 올 수 없는 희소성, 두 번째는 하늘을 보세요. 굳이 설명 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첫사랑의 눈물주를 홀짝이며 깊어가는 밤하늘을 보니, 무수한 하늘의 별들이 머리위에 내려앉아 있다. 전국 팔도 모든 별들 이곳에 다 모였다. 도시에서 보던 별들보다 배는 커 보인다. 무모하지만 왠지 사진 속에 담길 것 같아 셔터를 눌러본다.

산행 중 아이 구출한 이야기, 작년 겨울 치밭목 산장의 추억, 산행중 에피소드, 지리산의 사계, 요즘 고민들도 풀어낸다. 산중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일출을 본다며 의외로 일찍 접고 잠자리에 든다. 수많은 별들을 두고 잠을 자려니 짧은 밤이 아쉽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차려진 식사.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장터목 산장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일출을 보고 난 뒤 아침을 먹는 사람들로 분주한 치밭목 산장의 아침. 2006년 1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새벽 5시부터 산장이 웅성거린다. 저 멀리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 사이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굳이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산장의 2층 방에서도 보인다. 운해가 자욱한 산중의 경치에 잠이 저만치 달아난다. 어서 구름이 개이고 일출이 보이기를 소원하는데, 보여 줄듯 말듯 하더니 심술궂은 안개가 해를 가린다. 

‘천왕봉의 일출도 삼대가 공을 들여야 겨우 볼 수 있다는데, 그럼 그렇지.’ 날이 밝으니 작고 아담한 산장의 운치가 드러난다. 50명만 묵을 수 있는 산장은 서로 차 한 잔하며 느끼는 훈훈한 정이 있다. 매년 31일이면 치밭목의 일몰을 보며 한 해를 정리하는 고정 팬들도 있단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하산길에서 산꾼들을 따라 계곡을 네 번 건너는 모험을 감행했다. 발이 미끄러져 네 번 중 두 번이나 계곡에 풍덩 몸을 담구고 찰과상에 발톱이 검어질 정도로 피멍이 들었다. 그래도 산의 묘미는 설산이라는데 눈이 수북이 쌓이면 꼭 다시 찾고 싶다.

지리산인지 산장인지 산에서 만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다시 찾고 싶게 만든 이유를…. 정답은 지리산 산장에서 만난 사람들만이 알고 있겠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