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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구촌 에스프리] 중국 둔황 야단 지질공원 신이 만들어 준 영웅들의 무대
[지구촌 에스프리] 중국 둔황 야단 지질공원 신이 만들어 준 영웅들의 무대
  • 정길화 기자
  • 승인 2007.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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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풍화가 심해지자 사람의 접근을 막는 보호시설을 하고 있다.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여행스케치=중국] 지난 2002년 중국 장이모 감독이 만든 <영웅>을 기억하는가. 오늘 말하고 싶은 곳은 그 <영웅>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장소다. 황량한 들판이나 고원지대이면서도 군데군데 흙무더기가 쌓여 있고 그 모양이 범상치 않다. 마치 영화를 위해 일부러 세트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기괴하고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영화 <영웅>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작품 끝 부분쯤에 파검 역을 맡은 량차오웨이(양조위)와 비설 역을 맡은 장만위(장만옥)가 결투를 벌이다 함께 장렬히 죽어가는 광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멀리서 하녀 월을 맡은 장쯔이가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장면 등은 영화의 극적인 느낌을 고조시킨다.

영화를 보면서 ‘저기가 어디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 중국일 것 같은데 땅이 넓은 나라라 그런지 별별 동네가 다 있나보다….’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영웅>에는 장이모 감독이 중국의 온갖 풍경을 다 보여주려 작심이나 한 듯 주자이거우(九寨溝)의 영롱한 호수를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이 많이 등장한다. 대부분은 알 만한 곳이었는데 마지막 장면의 그런 황토 구릉지대는 처음 보는 곳이었다.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영화 '영웅'에 나온 야단 지질공원의 한 장면.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옥문관 풍경.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그곳이 바로 중국 깐수성(甘肅省) 둔황의 야단(雅丹) 지질공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3년 그해 여름 중국을 강타한 사스의 끝자락에 나는 둔황 여행을 떠났다. 열차로 이동하는 도중 마스크를 쓴 위생요원이 수시로 승객들의 체온검사를 하는 진풍경을 겪으며 마침내 둔황에 도착했다. 이곳은 막고굴과 명사산으로 유명한데 실크로드 답사의 중요한 길목이다. 이 둔황 인근에 야단 지질공원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현지인의 부추김으로 여기고 건성으로 들었다가 그곳이 다름 아닌 <영웅>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 장소라는 말에 귀가 번쩍였다. 

중고 승용차를 대절해 아침 일찍 출발했다. 둔황시만 벗어나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건조지대다. 둔황시 자체가 오아시스로 번성한 도시인 만큼 시가지를 벗어나면 사막을 만날 수밖에 없다. 가는 도중에 한나라 때 관문으로 쓰인 옥문관을 거쳐야 한다. 야단 지질공원을 본 후 돌아오는 길에 옥문관을 보기로 하고 승용차는 비포장도로를 질주한다. 그리고 둔황을 출발한 지 세 시간여 만에 서서히 야단 지질공원이 시계(視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본 그 광경이다. 

야단(雅丹)은 위구르어 ‘Yardang’으로 ‘풍식(風蝕)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글자대로라면 ‘우아하게 붉다’는 뜻인데 한자로 음차했을 뿐 그렇게 우아한 아름다움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모양은 거칠고 기괴한 쪽에 가깝다. 대자연의 바람이 오랜 세월 동안 황토 건조대에 불어오면서 풍화작용이 진행되어 곳곳에 흙더미를 남겨 놓았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70만 년이라고 한다. 실감이 나지 않는 장구한 세월이다.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옥문관에서 관광객에게 말을 타게 하는 현지인.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차가 빠져 혼이 났다.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공원에 도착하면 지프로 갈아타고 정해진 길로만 돌아봐야 한다. 일반 승용차로는 바퀴가 빠져 다닐 수 없다. 물론 입장료, 승차료 모두 별도다. 뜨거운 여름, 작열하는 태양 볕 아래 그늘이라고는 없는 황토지대를 에어컨 없는 차로 다닌다. 그리고 발이 무참하게 빠지는 황토밭을 헤매는 것은 거의 극기훈련이다. 사서 고생인 줄 알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일상의 안온함을 거부하는 것에 여행의 참다운 맛이 있다. 

야단 지질공원은 그 엄청난 규모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약 400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걸쳐 풍식 지형이 전개되고 있다. 흔히 한국 사람에게 땅 넓이를 말할 때 비교기준이 되는 여의도 면적으로 말하자면 거의 50배에 달한다(한강 둔치까지 포함한 8.4평방킬로미터 기준 적용 시).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라. 여의도 크기 50개만한 엄청난 황토지대를…. 이 어마어마한 넓이에 수를 셀 수조차 없는 토괴(土塊)들이 즐비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모양과 크기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자연이 70만 년 동안 공들인 것들이다. 가히 조각공원이라고 할 만하다. 

공원 기념관에서는 야단의 풍식 지형이 생성된 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정말 바다 같기도 하다. 바람의 방향이 일정해서 거대한 흙더미들이 대열을 이루게 되었다. 바람에 깎여 나가고 남은 것이 이 토괴의 정체다. 대자연의 공력이 참으로 신묘하다. 

과장과 수사(修辭)를 좋아하는 중국인들 아니랄까봐 모양마다 이름을 붙여 놓았다. 가령 영지버섯을 닮았으면 ‘천년 영지’, 공작새를 닮았으면 ‘공작’, 탑 모양이면 ‘조망탑’ 이런 식이다.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한 것도 있다. 손바닥을 세운 모양인데 이를 보고 부처의 손이 생각났던지 ‘불수경천(佛手擎天)’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닮아 ‘자유여신’, 스핑크스상을 닮아 ‘사신인면(獅身人面)’이라고 명명한 것은 참 그럴 듯해 보였다. 문제는 풍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어 모양과 형용이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답사로는 공원 내를 다 돌아볼 수가 없다. 지프가 다니는 길은 정해져 있고 설사 마음대로 다니게 해도 발이 빠져 보행이 용이하지 않다. 열기구나 경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보는 방법이 있을 텐데 그 정도까지는 개발되지 않은 듯하다.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사산인면 스핑크스라는 뜻.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미후관밀이나 공작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름값을 못할 수도 잇겠다 싶어 걱정이 되었다. 2007년 3월. 사진 / 정길화 기자

사실 이렇다 할 만한 볼거리는 황토 조각품 말고 없다. 주변은 거친 사막지대이며 시가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비포장도로를 하염없이 달려와 대자연의 위대함을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일망무제의 광야와 즐비한 황토 조각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오관은 참신한 자극을 받는다. 

일생에 한번쯤은 볼만한 풍경이다. 그런데 문득 한국인인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야단 지질공원은 중국의 것이 아니라 지구의 것일진대, 신은 왜 하필 이를 중국 땅에 만들었단 말인가”하는 탄식이 나온다. 안 그래도 중국에는 볼 것이 많은데 굳이 ‘황토조각공원’까지 만들어 주셨는지 유감이다. 하긴, 그렇대도 여의도 50개 크기의 엄청난 사막 황토지대가 한국 땅 어딘가에 있는 일도 그렇게 좋은 현상은 아닐 것 같다. 

땅 넓은 중국에 계속 있으려니 한국인으로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고비사막 아래 광활한 건조기후대인 야단 지질공원에서 풍식(風蝕)이 진행되면 그 흙 찌꺼기와 미세먼지가 어디로 가겠는가. 바로 해마다 봄이면 한국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황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야단 평원에서 깎여 나간 황토가 그동안(70만 년 동안) 고스란히 황해에 떨어지고 한반도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은 둔황에서 자신의 조각 솜씨를 뽐내고 그 뒤처리는 엉뚱한 곳에서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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