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서울] 수백 년 전 외세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든든한 성으로 제 몫을 하던 서울 성곽이 39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런 만큼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쌓인 우여곡절 많은 성곽 길을 걷는 시민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창의문에서 백악나루, 숙정문을 거쳐 와룡공원에 이르는 서울 성곽 4.3km를 시민들과 함께 걸어봤다.
오전 10시 30분, 창의문 쉼터에 도착한다. 한가한 주중 오전이건만 북악산을 오르려는 행렬은 일대 장사진을 이룬다. 인터넷 접수를 한 시민들은 신분 확인을 통해 표찰을 나눠받고, 미처 인터넷 접수를 하지 못한 시민들은 그날 정해진 인원만큼 현장 접수를 한다. 전문 산악인 못지않은 완전 군장을 한 할아버지, 물병 하나만 달랑 손에 들고 온 청년, 손 꼭 잡고 벌써부터 ‘셀카질’에 빠져 있는 커플까지 가려졌던 39년의 세월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서울 성곽은 조선 시대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 북악산릉과 동쪽 창신동의 낙산(125m), 남산(262m), 그리고 서쪽 인왕산(338m)을 둘러 총길이 18.2㎞로 쌓은 성이다. 그 중에 이번에 개방된 북악산 길은 창의문~북악산 정상~숙정문~와룡공원에 이르는 4.3㎞ 구간이다.
오전 11시 정각이 되자 문화재청 소속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탐방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다소 가파른 계단 길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점점 높이가 더해지면서 시원스럽게 조망되는 서울의 모습과 주위 경치에 탐방객들은 마냥 신이 난다.
“와~, 만리장성이 부럽지 않네. 이리 좋은 데를 와 인자서 보여줄꼬?”
일흔을 훌쩍 넘긴 박영분 할아버지의 말이 선선한 바람결에 실려 탐방객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치요? 여기가 40년 전에 간첩만 안 들어왔어도 뒷산처럼 산책할 수 있었던 곳인데, 안타깝긴 하지요? 그래도 이제라도 길이 열렸으니 더 잘 보존해서 우리 자손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줘야 안 되겠습니까?”
한 탐방객의 소리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든다. “아~, 맞지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 중에서는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없깁니다!”
주요 코스마다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지긴 하지만 행렬에서 조금 뒤처지면 설명을 들을 수 없을뿐더러 설명도 가이드북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차라리 사전에 어느 정도 정보를 익히고 가는 것이 낫다. 특히 북악산 주위 방위에 따라 들어서 있는 다른 산들의 위치를 알고 가면 서울 도심의 위치와 대조하며 경치를 더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전체 코스 중에서 촛대바위 근처는 가장 풍광이 좋은 곳 중 하나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기운을 꺾기 위해 철심을 박아놓았던 자리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청운대를 지나 비로소 성벽 밖으로 나섰다. 여기부터 곡장을 지나 숙정문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쌓은 서울 성곽의 시대별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숙정문(肅靖門) 앞에서 마지막 해설사의 마지막 설명을 듣는다. 산허리 아래로는 박정희 정권 시절 요정으로 사용되었다는 삼청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의문 쉼터를 떠난 지 1시간 30여 분.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지만, 39년 아니, 그 이전 수백 년의 세월을 아우르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다.
아직도 완전한 개방이 아니라 가이드 이외에 군인들의 동행이 있고, 군사 시설 등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것도 성곽에 드리운 역사의 질곡을 확인하는 것 같아 영 편치 않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첫걸음을 시작한 서울 성곽의 모습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시간보다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