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시골 집밥 여행] 지리산이 키우고 사람이 차린 산촌밥상 경남 하동 동점마을 동점원
[시골 집밥 여행] 지리산이 키우고 사람이 차린 산촌밥상 경남 하동 동점마을 동점원
  • 전설 기자
  • 승인 2014.05.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하동] 물소리 새소리 들리는 산중에 밥상을 차립니다. 식기 전에 더운 밥 한 술 뜨세요. 집 된장 풀어 끓인 된장찌개에 갖가지 나물도 곁들여 꼭꼭 씹어 드셔 보세요. 아픈 속, 분한 속 잠시라도 든든할 수 있도록 TV 소리, 바깥 소식 닿지 않는 산중에 밥상을 차립니다.

“마치마을 내리실 분 나오이소. 씨게씨게 나오지 말고 살살 오이소. 넘어짐니더.”

하동시외공용정류장에서 동점마을로 들어가는 농어촌 버스에 오른다. 탈 땐 몰랐는데 자리에 앉고 보니 하차벨은 보이지 않고 정류장 안내 방송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버스 안내원이 버스가 멈출 때마다 곰살가운 사투리로 정거장 이름을 알려준다. “동점마을은 종점이니까 한 50분쯤 걸릴낌니더. 더우면 창문 열어 두이소. 바람이 좋아예.” 여 차장의 안내를 받아 창문을 여니 세상은 온통 풀빛. 봄에 올라온 연녹색 새순이 그새 자라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버스가 초록논을 가로지르고 한적한 마을을 지나 드디어 동점마을회관 앞에 멈춘다. 그 사이 빈자리 하나 없던 좌석은 휑하니 비었다. 승객은 할머니 두 분과 나뿐.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모르는 얼굴인데 어데서 왔노? 우리 마을은 집이 원카 산만대이까지 따문따문 있어가꼬 비기 힘들긴데 그리도 둘리빌래? 그럼 물 주께 들렸다 가라. 여짝 우로 올라가믄 된다.”
250년간 마을을 지켰다던 아름드리 느티나무 옆으로 더위를 피하기 좋은 정자가 있고 그 맞은편에 마을회관이 있다. 마을 입구를 지나 할머니 뒤를 쫄래쫄래 쫓아 비탈길을 오른다. 시원한 물 한 사발 얻어 마시고나니 후끈한 풀냄새가 풍긴다. 윗집에서 고사리를 삶는 냄새란다. 까치발을 들고 담장 안쪽을 보는데 고사리 자루가 마당 한가득. “고사리 농사라도 지으세요?”라는 미련한 질문에 “누가 고사리를 농사지어 묵습니꺼. 지천이 고사리 천진데예. 산 한 바쿠 휘 돌면 한 포대 나옴니더. 한번 삶아 가꼬 찬물에 식히가 햇볕에 말려서 내내 먹심니더.” 경쾌한 답이 돌아온다. 그나저나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있자니 배가 꼬르륵 꼬르륵.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산은 고사리 농사를 짓고, 사람은 그 덕에 맛난 반찬을 얻고.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산과 도시를 잇는 밥상 하나
마을을 휘 둘러본 뒤 다시 입구로 돌아와 느티나무 옆으로 난 샛길에 들어선다. 이 길 끝에 직접 장을 담가 찌개를 끓이고 산에서 난 재료로 찬을 만드는 ‘맛조이’ 동점원이 있다.
“맛조이는 손님을 맞는 사람이란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시골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가 귀한 손주 왔다고 당신이 가장 아끼던 것을 주시고 따뜻한 잠자리를 봐주시잖아요. 그런 할머니처럼 시골 현지인이 맛조이가 돼 직접 마중을 나오고 손맛 담긴 밥상을 차려주는 거죠.”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장독대 뚜껑 위에 묵나물이 고슬고슬.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계곡을 옆에 낀 동점원의 숙박동. 최근 ‘삼화실 펜션’이라고 새로 이름을 지었다.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농어촌 여행컨설팅업체 맛조이코리아 강병호 대표의 설명이다. 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도시와 시골을 이어주는 이 없었다면 어떻게 서울촌것이 연고도 없는 지리산 기슭 시골집에 놀러 올 수 있었을까. 쭈뼛거리며 마당에 들어서는데 마당 한가득 백여개 장독이 빼곡하다. 달큼하게 장 익는 냄새 풍기는 장독대 위엔 고슬고슬한 묵나물이 한줌씩 널려 있다.

“오셨어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안쪽에서 차 한 잔 하세요.” 동점원의 공동대표이자 장류명인 김균희, 윤다희 씨가 요깃거리로 쑥떡과 시래기, 버섯, 우엉, 무청 등을 우린 해독차를 내온다. 쑥떡 한 입, 차 한 모금씩 부지런히 맛본 뒤 담소 나눌 여유를 찾는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계곡물이 워낙 맑아서 떡밥 좀 넣어두면 손바닥만 한 녀석들이 금세 잡힙니다.”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여기가 원래는 산을 깎아 만든 다랑논 자리였어요. 논 앞으로 계곡이 흐르고 뒤로 지리산 칠성봉이 보이는데 첫눈에 이곳에서 살아야 겠다 결심이 섰죠. 우리도 원래는 도시 사람이었던지라 처음에는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어요. 뭐가 나물이고 뭐가 잡초인지 구별을 못해 다래순인줄 알고 먹지도 못하는 풀을 하루 종일 따온 적도 있고요. 그렇게 하나하나 외우고 익히는데 3년, 이렇게 무쳐보고 담가보고 하는데 3년이 걸렸죠.”


찻상 뒤편으론 제피(초피나무) 잎이 한소쿠리 놓여 있다. “그제 조금 뜯어다 무쳐보니 맛이 좋아서 먹을 만치 더 뜯어 왔습니다. 산이 저희 냉장고면서 보물창고예요. 조금만 들어가도 10년근 더덕에 비비추, 취나물, 원추리, 머위잎 참나물 먹을 게 얼마나 많은지. 우산나물 본적 있어요? 잎이 봉긋하니 꼭 작은 우산처럼 예쁘장하게 생겼죠. 맛도 물론 좋고요.”
쑥떡을 집어 먹는 중에 눈이 자꾸 나물 바구니로 향한다. 산이 키우고 사람이 만든 산촌 밥상은 과연 어떤 맛이려나. 객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인지 두 대표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꽃 맛’ 나는 제피잎. 나물은 캐는 데 반나절, 다듬는 데 한나절.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된장먹고 맴맴 나물먹고 맴맴
상을 차리는 동안 미처 둘러보지 못한 동점원의 속살을 들춰보기로 한다. 본채 왼편의 별챗집에 짐을 풀고 테라스 바로 아래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간다. 물길 따라 위로는 대나무 숲, 아래에는 발 담그기 좋은 ‘선녀탕’이 있다. 산자락이라는 커다란 세숫대야에 옥빛이 도는 계곡물을 가득 받아 둔 천연 물놀이장이다. 선녀도 탐을 낼만한 물가 앞쪽에 자리를 잡는다. 산과 물이 한눈에 담기는 명당이로다. 인기척에 흩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피라미 구경에 빠져 있는데 윤다희 씨가 노랗게 물든 치자밥을 들고 온다. 곧이어 바글바글 끓는 된장찌개와 갖은 반찬이 상에 오른다. 찬 하나하나가 초록 풍경과 어울리는 자연의 빛깔이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옥빛 계곡물이 오목하게 고인 천연 물놀이장, 다시 말해 선녀탕.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호박잎 좀 쪘어요. 된장찌개 한술 넣고 싸먹어 봐요. 이건 돼지감자랑 매실 장아찌예요. 그 옆에는 제피 잎 무침이랑 가죽나물 장아찌고요. 죽순은 이쪽 대나무 숲에서, 고사리는 산에서 땄죠. 산에서 크는 것들은 향이 워낙 좋아서 조미료를 넣으면 외려 맛을 버려요. 우리는 그냥 이렇게 한 끼 먹는데, 서울에서 오신 분 입에도 맞을는지 모르겠네요.”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청색 생활한복을 입은 김균희 씨가 칠성봉을 마주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입에 맞다 못해 착착 감기는 맛. 노란 치자밥에 된장찌개를 쓱쓱 비벼 한술 떠먹으니 깊고 진한 집 된장 맛이 입맛을 돋운다. 손바닥 위에 호박잎을 깔고 밥 한술에 찌개를 톡 털어뜨려 싸먹으니 금상첨화. 여린 것만 골라 쪄낸 호박잎은 설겅거리는 것 하나 없이 봄눈 녹듯 부드럽게 씹힌다. 난생처음 맛본 제피 잎 무침은 활짝 핀 꽃송이를 따다가 통째로 삼킨 것 같다. 씹으면 씹을수록 그윽한 꽃향이 입안에 퍼진다. 연한 상아색의 죽순은 찰옥수수처럼 고소하고 매실 장아찌는 오도독 오도독 먹는 소리마저 재미있다. 가죽나물, 쪽파, 깻잎 장아찌까지 어느 하나 주인공 아닌 것이 없다. 최고의 반전은 돼지감자 장아찌. 내심 다른 찬에 비해 못나게 생겼다고 흉을 봤는데, 아사삭 깨무는 감촉이 좋아 젓가락질에 속도가 붙는다. 짭조름한 단물이 여름 수박처럼 담뿍 배 있다. 밥 한 그릇 싹싹 비우고 숭늉까지 후루룩 마시고선 배가 뿔뚝하게 불러 하늘을 본다. 밥 한공기가 주는 위로가 이토록 배부른 것이었구나. 머릿속에 사늘한 산바람이 분다. 산언저리가 거뭇거뭇한걸 보니 벌써 해가 지나보다.

iNFO. 지리산 동점원
숙박료 2인 기준 5만원, 6인기준 15만원
식사 1끼 7000원
주소 경남 하동군 적량면 서리 동점마을 890-3

Tip 지리산 둘레길 11코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