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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시골 집밥 여행] 엄마 정이 찰랑이는 어촌 밥상 전남 군산 대장도
[시골 집밥 여행] 엄마 정이 찰랑이는 어촌 밥상 전남 군산 대장도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4.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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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군산] 물때만 맞추면 손쉽게 잡는 꽃게로 만든 싱싱한 게장, 오돌토돌한 돌기를 씹을 때마다 바다향이 톡톡 터지는 해초무침, 뒤뜰에서 방금 따다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반찬. 육지로 시집가 물내 나는 고향 집밥이 그리웠을 딸에게 차려주듯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엄마표 어촌 밥상을 대장도에서 만났다.

군산에서 남서쪽으로 50㎞ 떨어진 섬, 63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별처럼 모여 있는 고군산군도의 가운데 위치한 대장도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고 선유도에 내려 도보나 자전거 따위의 탈것을 빌려 대장도로 이동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이나 새만금 신시도항에서 소형 쾌속선을 타도 대장도를 마주할 수 있다.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객이 부탁하면 식구들 먹듯 차려내는 엄마표 어촌 밥상.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장삿속 어두운 소박한 섬

오후부터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전해진 날 오전, 대장도로 가기 위해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 앞에 섰다. 오후의 비 예보가 혹여나 오전 출항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까란 불안감이 뒤통수를 쪼아대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출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여객선의 운항 시간은 매달 바뀐다. 게다가 날씨나 여객선의 안전점검 등으로 당일 운항 시간이 변경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대장도행을 결정했다면 반드시 출발 전 터미널에 시간을 확인할 것.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선유도선착장에 아기자기하게 정박해 있는 소형 어선들.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쾌속선 코스모스호에 올라타 옥빛 물결이 갈라지는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서 있으면 짭조름하면서도 상큼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50여 분만에 도착한 선유도 선착장에는 소형 어선들이 아기자기하게 정박해 있다. 선착장을 나와 관광안내소 쪽으로 나가면 자전거와 스쿠터 대여소 앞에 선 상인들이 눈에 띈다. 이곳에는 택시나 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가기로 작정하고 걸어도 30분이면 대장도에 도착하고도 남아요.” 관광객에게 탈것을 대여해주고 삯을 챙겨야 이득을 볼 텐데 이곳 상인은 장삿속이 어둡다. 그의 솔직한 말을 듣고 타박타박 발걸음을 내딛는다. 선착장을 나온 지 10분이 채 안 돼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곱디고운 선유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만난다. 해수욕장 뒤에 한 폭의 그림처럼 버티고 있는 망주봉도 내딛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절경에 빠져들게 한다. 괜히 ‘신선이 노니는 섬’이란 이름을 얻은 게 아니구나.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잡아 올린 복어를 손질해 해풍에 말리는 모습.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다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자 머지않아 장자대교와 마주 한다. “해 질 무렵에 한번 나와 봐요. 붉게 물드는 노을이 또 볼만해요.” 장자대교 위에서 맞닥뜨린 스쿠터를 탄 우체부 아저씨가 한마디 던지고 유유히 사라진다. 햇살 내린 대장도와 그 남쪽 섬 장자도의 모습을 두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절경이라고 감탄했건만, 해 질 녘 노을의 풍광도 일품이라니 그 무렵 다시 나와 봐야겠다는 마음이 요동친다.

장자대교를 벗어나 꼬르륵 배꼽시계 알람이 울려대기 시작했을 무렵 우뚝 솟은 대장봉을 배경으로 두른 펜션 ‘그 섬에 가고 싶다’에 닿는다. 펜션 앞 조그만 다리 대장교를 건너면 자전거 대여소가 나온다. 여기서 곧장 가면 장자도고 좌측으로 나가면 장자대교 방향이다. 능선이 완만해 펜션에서 1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하다는 대장봉을 보니 당장이라도 오르고 싶다. 대장봉의 중간쯤에는 서울로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할매바위가 빠끔히 솟아 있다. 고군산군도에 자리 잡은 숱한 섬들과 새만금방조제까지 조망할 수 있다는 대장봉에 오르는 건 끼니를 해결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그 섬에 가고 싶다’ 펜션 주인장 윤연수 씨와 안주인 이경자 씨.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물내 나는 고향 집밥 그대로
“배고플 텐데, 밥 한 그릇 대충 때워야죠.” 고군산군도 문화관광해설사이기도 한 펜션 주인 윤연수 씨가 아내 이경자 씨가 내놓는 음식들을 가리키며 “육지 사람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라고 덧붙인다. ‘대충 때우라고 내놓은 게 이 정돈가?’라고 생각하며 찬을 살피는데 듣도 보도 못한 음식에 시선이 고정된다. “지충이라고 해초류예요. 집 나간 며느리도 발길 돌리게 만드는 게 전어면 지충은 뭍으로 시집 간 딸내미가 입맛 잡으러 돌아오는 음식이라고 해요.”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가니 톡톡 터지면서 향긋한 바다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당초 윤 해설사를 만난 건 장자도의 소박하지만 정성이 넘치는 엄마표 어촌 밥상을 소개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른 데 찾을 필요도 없이 이곳을 소개하고 싶다.

“밥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한테만 해줘요. 놀러온 사람들한테 몇 가지 내놓으니 나중에 다시 와서 상 차려서 팔라고 하니까 팔게 됐죠.” 펜션에 머무는 여행객이 부탁하면 식구들 먹듯 차려내는 밥상이란다.

수저를 들고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게 만든 건 지충무침만이 아니었다. 물 빠지는 시기만 맞춰서 나가면 잡기 싫은 만큼 많다는 꽃게로 만든 싱싱한 게장은 자연스럽게 침샘을 자극한다. 게장이 밥도둑이라고 하지만 게장은 밥을 훔치지 않았다. 수저를 든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이 게장과 밥을 훔칠 뿐이다.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펜션 숙박동에서 내려다본 고즈넉한 대장도 풍경.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 근처 음식점 앞에 줄을 서기 일쑤다. 12시를 조금만 넘겨서 나오면 그다지 맛있지도 않은 음식점 앞에도 줄이 한가득. 비좁은 탁자에 앉으면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MSG 덩어리의 찬이 놓인다. 저녁마저 야근으로 대충 때울 땐 사무치게 그리운 집밥.

이 집의 상차림은 이런 상념들을 잠재운다. 직접 담근 효소로 센 맛을 잡은 야생갓, 진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미각을 즐겁게 하는 고사리, 쌉싸름하면서 아삭한 냉이 등 안주인이 뒤뜰에서 방금 따서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반찬은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이경자 씨는 윤 해설사의 어머니께 요리 실력을 전수받았단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윤 해설사의 어머니는 펜션 바로 옆 고택에서 민박을 치며 상을 차려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당시 KBS <한국인의 밥상> 소개된 집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음식 솜씨를 자랑했다고. “옛날처럼 고택에서 민박도 하고 상도 차려서 내놓고 싶은데 그러면 아내가 너무 힘들어할까봐 안 해요. 그래서 지금은 펜션 운영하면서 손님 중에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상을 차리죠.”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서울로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할매바위. 2014년 6월 사진 / 군산시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대장교에서 바라본 대장도와 그 위에 우뚝 솟은 대장봉. 2014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바닷물이 얕은 연안에 사는 실치를 당근과 다진 파 등 채소와 함께 달걀옷을 입힌 실치전의 풍미도 사라진 입맛을 찾기에 일품이다. 회로 먹기도 아쉬운 우럭으로 만든 우럭찜은 대장도에서 그날 잡아 올린 것. 적당히 얼큰하면서 깔끔한 맛인 우럭찜의 속살을 발라먹으며 집에서 엄마가 정성껏 차려주는 정갈한 상차림이 떠오른다. 푸근한 어촌 밥상을 물리자 그제서야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페달을 밝아 골목 구석구석으로 들어가니 막 잡아 올린 아귀를 손질해 해풍에 말리는 모습이 보인다. 일몰 즈음 돌아온 펜션 앞에서 펼쳐진 낙조는 어떤 수식어로 설명해야 할까. 빨갛게 물든 섬마을 하늘은 정성스런 상차림에서 느낀 따스함과 닮았다. 내일 아침에는 해맞이 명소로도 유명한 대장봉에서 일출을 두 눈과 가슴에 담고 내려와 안주인에게 아침 밥도 차려달라고 졸라야겠다.

INFO. 그 섬에 가고 싶다
숙박료 4인 기준 10만원 
식사 1끼 1만원 
주소 전북 군산시 옥도면 장자도2길 67

Tip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
펜션에서 자전거를 빌려 대장교를 건너 장자도, 명사십리 해변을 돌아보면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마을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코스는 대장교-장자도 포구-낙조대-장자대교-초분공원-명사십리-평사낙안-선유도 선착장으로 약 3.7㎞, 1시간 정도 걸린다. 자전거 대여료는 투숙객에 한해 1박2일 동안 1만원, 당일 여행자는 1시간에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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