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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따라 삼천리] 대한민국 마지막 성냥공장의 꿈 경북 의성 성광성냥공업사
[전설따라 삼천리] 대한민국 마지막 성냥공장의 꿈 경북 의성 성광성냥공업사
  • 전설 기자
  • 승인 2014.05.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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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의성] 재작년 즈음 경북 의성에 대한민국의 마지막 성냥공장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한번 들러봐야지’ 하고 넘겼던 느슨한 마음은, 그 성냥공장이 2013년 11월 최후의 공정을 끝으로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늑장 부리다가는 삶의 현장을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함에 서둘러 한 발, 서랍 속 문간 위 그 많던 성냥은 어디로 갔을까 되뇌며 또 한 발을 내딛었다.


성냥 없이는 담뱃불을 붙이기도, 밥 짓고 방 데울 아궁이도 피우기 어렵던 시절. 전국에는 300여개의 성냥공장이 밤낮 없이 돌아갔고 매일 수십만 통의 성냥이 쏟아졌다. ‘성냥의 전성시대’였던 1960~70년대에는 성냥 1갑이 쌀 1되보다 귀했고, 정전이 되는 날에는 ‘점빵’에 수십 통씩 쌓아둔 성냥이 순식간에 동났더랬다. 먼 옛날얘기 같다고?

“엄마 어렸을 적만 해도 성냥 없는 집이 없었어. 종류도 수십 가지가 넘고 선녀, 호랑이, 꼬까옷 입은 꼬마신랑 각시까지 그림도 알록달록 예뻤지. 그땐 새로 이사 온 집에 갈 때 집들이 선물로 성냥 몇 통 들고 갔었거든. 집안 살림이 불처럼 활활 일어나라고.”

허리가 두 동강이 나도 알뜰살뜰 귀하게 썼던 생활필수품 성냥. 하지만 1980년대 값싼 중국산 성냥에 밀려, 1990년대 라이터가 보급되면서부터 점점 설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300여 개가 넘던 성냥공장도 단 1곳만을 남겨둔 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람으로 치면 올해 환갑을 맞은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 성광성냥공업사가 이 땅에 홀로 남겨진 이유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국내에 딱 1대 남은 윤전기. 그 속엔 완성된 성냥이 가득.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응답하라 1954 그리고 2014
경북 의성 성광성냥공업사는 한 길에 나란히 붙은 의성역과 의성공용버스터미널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의성향교와 마주보고 있어 길눈 어두운 초행자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데,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연세 지긋한 어르신을 붙잡고 “성냥 공장 찾는데요”라고 여쭤 보자.

“성광성냥공장 찾심니꺼?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입시더. 성광성냥 소문은 서울에도 자자하지예? 가정집보담도 멀리 바닷가에서 많이 쓰는 성냥이라 아임니꺼. 물기 먹어서 습습한 배 안에서도 일단 긁었다 하면 단박에 불이 붙으니까 멀리서도 사러 왔심니더. 성냥갑에 오리 봤심니꺼? 오죽 불이 잘 붙으면 오리 대갈빡에도 불붙을 걸 그려놨겠어예.”

의성전통시장에 가는 길이라는 이광옥 씨 덕에 헤매지 않고 길을 찾는다. 족히 수십 년은 묵었을 기와집들을 가로질러 걷다 보니 멀리 빨간 대문이 보인다. 밖에서 봤을 땐 가정집인지 공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담한 규모. 긴가민가하며 바싹 다가가 보니 문패를 대신하는 4개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경상북도 선정 ‘경상북도 산업유산’, ‘향토 뿌리기업’, ‘의성 문화 성냥’ 인증 간판과 자그마한 ‘성광성냥공업사’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쯤 되니 궁금한 게다. 나라에서 주는 훈장까지 주렁주렁 단 귀한 몸이건만 공장 문을 닫은 이유가 무엇일까. 갸웃 거리는데 빨간 대문이 스르륵 열린다. “서울에서 오셨죠?” 성냥공장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 손진국 씨의 뒤를 잇는 손학익 상무가 반갑게 맞아 준다. 그의 안내를 받아 시간이 멈춘 성냥공장 안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손학익 상무가 10단계가 넘는 성냥 제조 공정을 꼼꼼히 설명해주었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대한민국의 마지막 성냥공장

앞에서 볼 땐 가정집 같더니 들어서자마자 입이 쩍 벌어진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2300여 평의 흙 마당에 침목실, 윤전실, 제조실 등 몸집 큰 건물둘이 불뚝불뚝 솟아 있다. 위아래로 정신없이 훑다가 지붕 위에 눈이 멈춘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손가락만 한 와송이 빽빽하다. 기와에서만 자란다는 귀한 약재가 왜 여기 있나 했더니 지붕 위에 오랜 시간 이끼가 끼고 쌓이는 동안 자연스레 뿌리를 내린 것이란다. 공장과 마주 본 의성향교의 반들반들한 기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와성이 공장 지붕마다 군락을 이루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공장이 겪은 세월의 깊이를 짐작해 본다.

“성냥 1개비는 조그맣죠. 근데 그 1개비 만들려면 적어도 10단계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냥은 무르면서도 질긴 이태리포플러 나무로 만드는데 여기가 옛날부터 목재를 쌓아두던 자리예요. 예전에는 나무 쌓을 자리가 모자라 저 끝 남의 집 마당 앞까지 넘어가곤 했었죠.”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성냥공장 곳곳에 남겨진 말. 불조심. 또 조심.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딱딱한 겉껍질을 벗진 포플러 나무는 묵기 기계에 돌려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내듯 얇게 저미고, 절단기에 밀어 넣어 칼국수 썰듯 잘게 채를 썬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뭇개비는 물기를 말린 뒤 윤전기에 넣고 돌려 두약을 찍어낸 뒤 불량품을 골라내는 왕발기까지 거쳐 하나의 성냥으로 만들어진다. 완성된 성냥을 착착 모아 입각기에 넣고 포장을 하면 작업 끝. 성냥 공정에 필요한 공장의 모든 기계들은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높은 골동품이다.

“요짝 부서에서 30명이 나무껍질을 벗기면 요짝 부서에서 40명이 우르르 몰려가 나무를 묵기에 돌립니더. 최고로 많았을 때는 직원이 한 200명 되뿌니까 한 공장에서 일을 해도 서로 얼굴을 몰라봤어예. 얼굴 볼 시간이 어디 어딨슴니껴. 코앞에 떨어지는 성냥 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 정도로 바빴습니다 여가. 그 많던 사람 다 떠나고 지금 딱 7명 남았지여.”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마지막 공정 이후 공장의 시계도, 달력도 멈춰버렸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공장 가는 길엔 수십 년 묵은 옛 슬레이트 집들을 지난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성냥공장의 작업반장 김갑선 씨가 30여 년 전 공장 풍경을 눈으로 좇는다. 그가 어린 새댁으로 일을 시작한 것은 80년 대 초. 성냥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시대가 끝나갈 즈음이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1954년 공장 설립 때부터 써온 사각 성냥 포장 겉지.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성냥 1개비 의성을 밝히다
성광성냥공업사를 대한민국의 ‘마지막’ 성냥공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2가지. 첫째는 이미 완성된 중국제 성냥을 값싸게 들여와 포장만 새로 입히는 것이 아니라, 통나무 하나를 수천 수만의 성냥개비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생산시설을 갖춘 국내 유일의 공장이라는 것. 둘째는 6개월 전 대한민국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성냥을 만든 최후의 공장이라는 것. 그런 성냥공장에 불이 껴졌다. 60년간 지켜온 불씨가 이토록 맥없이 꺼질 줄 누가 알았던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도 쌍까치(머리가 붙은 불량성냥) 1되가 쌀 1되보다 비쌌어요. 그러니 얼마나 성냥이 귀했겠어요. 시대가 바뀌어 너도 나도 편리한 것 찾아 오래된 옛것은 버리고 치워버리니 성냥도 설 곳을 잃은 거죠. 세상 변하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래도 이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치고 성냥 한번 안 켜본 이 없잖아요. 이 공장 자체가 춥고 배고팠던 한국의 반세기 역사를 밝히는 박물관인 거죠.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지켜가고 싶어요. 무엇보다, 한 나라에 성냥 만드는 공장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광성냥공장은 의성의 ‘의(城)’ 자와 ‘빛광(光)’ 자를 쓴다. 말 그대로 의성을 밝히는 빛이라는 뜻이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의성의 빛이 아직 찬란하던 한 때 하루를 마감하는 아버지의 담배 끝에, 아침 밥 짓는 어머니의 아궁이에, 세상모르고 잠든 막둥이의 아랫목에 그 온기 미치지 않는 곳 없었다.

Tip. 성광성냥공업사 여행
작업반장 김갑선 씨가 공장에 상주하고 있어 둘러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그가 자리를 비울 때를 고려해 출발에 앞서 도착 날짜 및 시간을 확인하면 헛걸음을 면한다. 마지막 성냥공장에서 만든 성냥도 판매하니 특별한 기념품도 챙겨보자. 관람료는 무료. 공장 바로 맞은편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의성향교가 있고, 도보 5분 거리에 의성전통시장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주소 경북 의성군 의성읍 문소3길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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