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진천] 주물과 조각, 음향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제대로 된 소리가 탄생하는 종은 당대 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종’이라는 학명을 얻었을 정도로 우수한 우리나라 종에 대해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중국과 일본을 능가하는 독보적인 기술을 가졌던 우리네 범종. 금속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범종이 한자리에 모인 종박물관을 찾았다.
“에밀레~ 에밀레~ 종이 울리면 정말 아기 목소리가 나요? 종 안에 정말 여자애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어릴 적 에밀레종 이야기를 읽고 누구나 한 번쯤은 던져봤을 질문이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종을 만들었으면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일까. 실제 우리가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종은 악기로서의 용도를 넘어 세파에 찌든 사람들의 심신을 쉬게 해주는 종교적인 기능까지도 맡고 있다.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우리네 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종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자부심 가질 만한 훌륭한 기술
진천 종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종 전문 박물관이다. 무에 그리 특이한 게 있다고 박물관까지 생겨났냐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막상 시대를 대표하던 작품을 마주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종박물관은 우리나라 종 역사의 산증인 원광식 주철장이 범종 150여 구를 기증하면서 2005년 문을 열었다. 지상 2층 규모, 야외 공원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범종의 역사를 시작으로 한국 범종에 대한 개관, 동양종과 서양종의 차이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성덕대왕신종은 가장 큰 볼거리다.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29호를 재현한 것으로 관람실에는 신종에 새겨진 명문 해석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종은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대인 혜공왕 7년(771년)에 완성한 것이다. 무려 구리 12만 근이 사용된 우리나라 범종의 걸작이다.
동양 3국 중 으뜸으로 쳐
우리나라에서 종은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되면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8세기 이후인 통일신라시대 것뿐이다. 본래 종은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였지만 불교가 융성하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종교적 기능을 갖게 되었다고. 법구사물(法具四物 범종, 운판, 법고, 목어) 중 하나지만 기법과 정교한 세부조각에서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중요한 획을 긋고 있다.
소리에 있어서도 뚜렷한 특색을 보인다. 맑고 청아한 음색은 기본, 긴 여운과 뚜렷한 맥놀이를 갖고 있다. 맥놀이란 비슷한 진동수를 가진 2개의 주파수가 합성되어 서로 간섭하면서 진동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소리도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범종은 중국과 일본 등 동양 3국의 종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마치 독을 거꾸로 엎어 놓은 것같이 윗부분은 좁고 배가 불룩하다 다시 하부로 가면서 오므라들어 안정감이 있다. 표면에 치는 자리를 만들고 그 부분을 당목(撞木)으로 쳐 소리를 내는데, 이 점이 바로 종 안에 추를 매달아 전체를 흔들어 소리를 내는 서양종과 다른 점이다.
종소리 들어보고 탑본도 만들고
제2전시실은 종의 탄생부터 생활 속의 종에 이르기까지 시각적인 이해를 돕는다. 신라의 독보적인 기술이었던 밀랍주조기법 모형과 탑본체험장 등이 있다. 특히 밀랍 녹이기부터 쇳물 붓기에 이르는 8단계 제작기술은 범종 주조기법의 원리를 알 수 있는 기회. 모형을 통해 상세히 설명해 아이들도 받아들이기 쉽다.
종의 구조에 따른 소리 차이와 주석 함량에 따른 소리의 차이도 직접 시연할 수 있다. 타종 막대와 청동판이 마련되어 있어 소리를 비교할 수 있는 코너는 아이들이 좋아한다. 처음에는 모두 똑같은 것처럼 들리지만, 주석이 얼마나 들어갔느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또 2·4주 토요일과 매주 일요일에는 어린이를 위한 ‘탑본체험교실’을, 매주 일요일에는 흙으로 만드는 나만의 종 ‘토종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 미리 참가 신청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