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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인도양 푸른 바다에 중독되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인도양 푸른 바다에 중독되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
  • 성은경 기자
  • 승인 2007.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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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인도양의 푸른 바다가 매력적인 잔지바르 섬.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여행스케치=탄자니아] 아프리카의 동쪽바다와 인도양이 만난 그 한가운데 존재하는 잔지바르 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20곳’으로 꼽히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된 곳이다. 이 섬의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귀국을 며칠 남겨두고 잔지바르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웬만해선 정시 출발은 없다
다르에스살람에서 잔지바르까지는 비행기로 약 25분. 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거주자가 아닌 경우는 가격에 별 차이가 없기에 항공편을 택했다. 12시 출발이라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지만 교통체증으로 출발 20분 전에 간신히 도착했다. 카운터에선 이미 탑승이 완료되었다며 수속을 해주지 않으려 했지만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게이트로 올라갔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좁은 길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그런데 웬걸,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1시간 후면 타겠지 한 것이 결국 저녁 7시가 돼서야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는 케냐에서 출발해 다르에스살람을 거쳐 잔지바르로 들어가는 노선인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몇 대의 비행기들이 우리를 태우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이다. 원래 제시간에 출발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경우는 해도 너무했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맛없는 매점 식사권. 비행기에 올랐을 때 이미 해가 지는 바람에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은 구경도 못하고 잔지바르 섬에 도착했다. 밖에는 비가 매섭게 내리고 있었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노예 매매의 전초기지였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잇는 진자바르섬.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아랍과 인도, 유럽의 문화가 믹스된 도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다음날 아침에는 해가 화창하게 떠올랐다. 섬이라 그런지 가옥 모양도 다르고 땅의 빛깔도 다르다. 오랫동안 관광지였던 덕분에 도시는 깨끗했고 올드타운인 스톤타운은 법적으로 건물 외관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도록 금하고 있어서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검은 해안이라는 뜻의 잔지바르, 하지만 타운의 건물은 대부분 하얀 빛이다. 또한 이곳은 아프리카의 땅이지만 아프리카라 할 수 없는 땅이기도 하다.

주민의 95%가 무슬림이며 사람들의 모습도 아랍인들의 모습을 닮았다.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아닌 아랍인의 후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는 이상한 땅. 오랫동안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이들의 슬픈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처음 방문한 곳은 옛날에 노예시장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앙그리안 교회였다. 입지조건 때문에 진지바르 섬은 노예상인들의 아프리카 전초기지였다. 이곳엔 지하 좁은 방에 수십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가두어두고 겨우 작은 구멍을 세 개 뚫어놓은 잔인했던 노예시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는 그 자리에 영국인 선교사 비숍이 교회를 세워 수세기에 걸친 불행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교회를 나와 시내 곳곳을 걸었다. 스톤타운은 꼬불꼬불 미로지만 길을 헤매다가도 신기하게 결국에는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코끼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문에다 쇠징을 박은 인도풍의 문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어둠이 내리자 갑작스럽게 먹을거리 야시장으로 변해버린 공원 광장.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골목 대부분은 상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여인을 위한 다양한 스카프, 액세서리, 그림들. 가격은 이들의 물가와는 상관없이 관광객용 수준이었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이 한 번 올려놓은 물가가 도통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해가 지자 올드포트 앞 공원은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기름 냄새 가득한 야시장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게, 랍스타, 쇠고기 등을 꽂아 구운 꼬치, 생오징어를 그대로 튀긴 것, 바나나구이, 차파티 등을 저렴한 가격에 사 먹을 수 있었다. 특히 긴 줄이 있던 곳은 잔지바 피자 가게 앞이다. 손바닥만한 피자에 야채와 해산물을 넣고 향신료가 유명한 잔지바르 섬만의 독특한 소스가 이용되는데,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이 궁금하여 한참을 기다리는 수고를 무릅쓰고 잔지바 피자를 하나 사서 맛보았다. 랍스타 꼬치에도 도전하였는데 사실 살만 발라 구운 꼬치라 그런지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우리 돈 1만원이면 각종 음식들을 푸짐하게 먹을 수가 있다. 배 속에 음식이 들어갈 공간만 충분하다면 말이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우울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앙그리안 교회.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하늘빛 바다에서 시간이 정지되다
지금이 정말 12월인가? 뜨거운 태양, 푸른 바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12월을 보내면서 문득 ‘뜨거운 겨울(!)’에 풍덩 빠져보자는 마음에 바다로 향했다. 그리하여 찾은 곳은 짙푸른 바다가 있는 프리즌 아일랜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에메랄드빛 바다는 어느 경계선을 넘어서선 파란 물감을 조금 더 탄 듯한 빛으로 바뀌었다. 바다를 감상하기 위해 나는 책과 망고를 들고 나와 해먹 위에 누웠다.

산 너머로 해가 지고 물이 빠진 바다는 깊은 갯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 갯벌은 검지 않고 하얀 점토 빛이다. 그 사이로 성게와 불가사리가 보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별빛 아래 해먹에 누워 쏟아지는 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멀리서 마사이족 경비들이 해안가를 순찰하다 우리에게 다가온다. 왜 이곳까지 와서 일하는지, 월급은 얼마인지, 사는 건 어떤지, 뭐 그런 질문들을 그들에게 건넸다

.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푸른 땅을 등지고 섬의 리조트에 고용된 이들의 삶은 행복한 것일까? 아닐까?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별빛 아래에서도 나는 왜 탄자니아인들의 생계와 그들의 행복이 걱정되는지 모르겠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원색적인 색감이 돋보이는 이곳 화가의 그림들. 2007년 10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다음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보랏빛을 띤 하늘에 빨간 태양이 구름을 비집고 올라 세상을 밝혔다. 몇몇 사람들과 함께 남쪽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돌고래와 수영하기에 도전하고(우리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엔 근처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집으로 들어가 바다를 바라보며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랬다. 지친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는 잔지바르 섬. 인도양의 푸른 바다가 눈만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속까지 그토록 맑게 해준다.

오랜 세월의 정취를 잃지 않고 있는 이곳은 현실을 떠나온 이들에게 잠시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게 한다. 그런 이곳을 떠나 내일이면 다시 다르에스살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푸른 야자수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검은 얼굴의 아이들도, 넉넉한 인심도, 그리고 싸고 맛있는 열대과일도 없는 내 땅으로…. 

지금 한국엔 눈이 내리겠지. 춥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얇은 옷을 벗고 두터운 외투를 입는다. 생각만 해도 무거울 것 같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나를 탄자니아에 적응시켜버렸나 보다. 마지막 휴가지인 잔지바르의 바다 빛을 눈에 담아본다. 언제까지 이 빛깔을 기억할 수 있을까? 문득 영원한 동반자가 생긴다면 이곳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메모를 노트 귀퉁이에 남겨본다. 이 빛깔을 잊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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