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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사색여행] 우포늪을 거닐며 나를 되돌아보다 경남 창녕 우포늪 사색기행
[사색여행] 우포늪을 거닐며 나를 되돌아보다 경남 창녕 우포늪 사색기행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4.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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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창녕] 초겨울로 접어드는 우포는 고요하다.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메마른 나뭇잎과 그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몸을 부대끼는 갈대와 억새 소리가 여행자를 고요하게 품어주고, 금빛 물결을 배경으로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철새의 몸짓은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며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 경남 창녕의 우포늪으로 사색여행을 떠나보자.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오랜 세월을 이겨낸 토평천 왕버드나무는 마치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신비한 모습이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1억 4천만 년의 숨결을 품은 태초의 대지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 등 4개의 행정구역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진 우포늪은 태초의 풍경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우포늪은 1억 4천만 년 전 우리 땅에 공룡이 활보할 무렵 태동하였고, 약 6000년 전의 후빙기를 거치면서 토평천과 낙동강의 흐름에 따라 범람과 퇴적이 반복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장구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더 우포늪이 애틋하다. 수천, 수만 번의 계절이 이곳에서 반복적으로 스러져갔지만, 그 모습 그대로 변치 않고 사람들을 반겨주기 때문이다. 

가을이 머물다 떠나가는 늦가을의 우포늪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봄부터 가을까지의 우포가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강렬한 초록색이 넘치는 생명의 땅이었다면, 초겨울로 접어드는 우포는 메마른 나무와 일렁이는 바람에 따라 금빛 물결과 은빛 물결을 교대로 내보이는 고요한 갈대와 억새의 세상이다. 봄부터 가을까지의 우포가 잔뜩 꾸민 성장(盛粧)한 모습의 우포였다면, 찬바람과 메마른 땅이 지배하는 겨울의 우포는 자신의 본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사색의 장이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광활한 우포늪. 오른편으로 대대제방 길이 보인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사람들이 보통 우포늪으로 부르긴 하지만 사실 우포늪은 물길과 제방으로 나누어진 4개의 늪이다. 우포늪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넓고 소의 모습을 닮았다는 ‘우포(소벌)’, 늪 주변에 나무가 많아 나무땔감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는 ‘목포(나무벌)’, 다른 늪보다 모래가 더 많은 ‘사지포(모래벌)’, 그리고 넷 중 크기가 가장 작아 ‘쪽지벌’이라는 이름이 붙은 4개의 늪이 ‘우포늪’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우포늪 생태관을 나와 쪽지벌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늪은 생명을 품고 있다지만 가을이 머물다 떠나가는 우포의 늦가을은 생명의 기운이 여리게만 느껴진다. 햇볕이 따사로운 시절에 무성하고 푸른 잎으로 여행자들을 반겼을 나무들도 몇 가닥 남지 않은 잎에 의지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푸름이 스러져가는 계절의 아쉬움에 눈길을 늪으로 돌리는데 푸른빛을 잃지 않고 늪 위에 떠 있는 생이가래 무리가 여행자를 위로한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겨울을 준비하는 우포늪의 나무가 애틋하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발길을 계속해서 옮기는데 멋진 수형을 갖춘 우포늪 왕버들 몇 그루가 여행자를 반갑게 맞는다. 풍성했던 여름의 모습과는 달리 갈색 기운이 도는 초라하고 헐벗은 모습이지만 그래도 우포늪을 일 년 내내 지키는 녀석의 의연함이 대견해 옆에 앉아 소리 없는 말벗을 청해본다. 말이 없는 대화가 이어지길 몇 분여, 녀석의 수형이 멋져서인지 늦가을 우포를 찾은 여행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녀석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쓸쓸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선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사초군락지는 야생동물들의 터전이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왕버들 나무에서 얼마쯤 걷다보니 어느새 쪽지벌과 우포를 가르는 사초군락으로 들어선다. 사초군락은 사초와 억새, 갈대의 세상이다. 나보다 한 뼘은 더 큼직한 갈대와 억새 사이의 사초군락을 따라 걷다보면 늦가을의 정취를 완연히 만끽할 수 있다. 조금은 싸늘한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에 따라 은빛물결이 넘실거리는 것이 마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한가운데를 걷는 듯한 기분이다. 올 한 해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사초군락지를 따라 목포 쪽으로 걸어가는데 토평천 징검다리 못 미친 천변에 비밀의 숲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판타지영화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 가지가 이리저리 배배꼬인 왕버드나무 여러 그루가 신비한 자태로 날 맞이한다. 기이한 모습이 이끌려 자세히 살펴보니 가지마다 세월과 홍수에 시달린 자국이 역력하다. 수십 수백 번의 토평천 범람과 홍수에도 꿋꿋하게 서 있는 신비로움에 나무 옆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며 말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우포늪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어가는 고사목.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황금빛 일몰이 내리는 우포는 철새의 낙원
해가 지려는 듯 사위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발걸음을 되돌려 대대제방 쪽으로 가야 한다. 우포에는 붉게 타는 듯한 해돋이와 해넘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다. 계절에 따라 위치가 조금씩 변하긴 하지만 대대제방 길과 사지포제방 길이 대표적이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눈먼 고기를 찾아 부지런히 헤매는 백로.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부랴부랴 서둘러 대대제방 길로 올라서니 제방 좌우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왼편으로는 야생의 거친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우포늪이요, 오른편으로는 경지정리가 잘된 드넓은 논이다. 지금은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오래 전에는 오른쪽의 논도 우포늪이었단다. 그러던 것을 우포늪 주변의 주민들이 1930년대부터 제방을 쌓고 물길을 막아 현재의 논으로 일궈낸 것이다. 지금도 넓고 광활한데 예전 우포늪은 얼마만큼 넓었고, 또 어떤 모습이었을지 부질없이 그려보며 해넘이 장소로 낙점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석양에 물드는 우포는 온갖 새들의 낙원이다. 2014년 12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늦가을 해질 무렵의 우포는 겨울철새들의 세상이다. 우포늪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물오리는 연방 푸드덕 거리고 홰를 쳐대며 자기 세상이 온 것을 자축하고, 백로는 기다란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눈먼 고기들을 찾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겨울의 진객 기러기는 자기들끼리 떼를 지어 날면서 적막을 깨트리는 이 시간을 한껏 즐긴다. 10월부터 시베리아 지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하는 겨울철새들은 겨우내 우포에서 시간을 보내다 3, 4월경이면 다시 되돌아간다. 우포늪이 가진 생명력에 의존해 혹독한 겨울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세계적 희귀조인 따오기의 복원센터가 우포늪에 있는 이유도 바로 우포늪이 가진 이러한 풍부한 생명력 때문이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어느새 우포늪 근방에서 가장 높은 미타산 산등성이 부근으로 옮겨가 있다. 잠시 후 산등성이 부근이 타들어가더니 점점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해의 위치에 따라 우포늪도 처음에는 붉은빛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황금빛으로, 마지막에는 연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어 간다. 아름답다. 아니 신비하고 장엄하다. 대자연의 이치와 조화를 몇 마디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포늪 해넘이를 맞이한 철새들이 꽥꽥거리며 요란하다. 녀석들도 나처럼 웅장한 해넘이에 황홀경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어둠이 몰려오니 서로 조심하라고 신호를 주고받는 것일까. 도통 알 수 없지만 해넘이의 적막을 깨는 철새 소리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대지를 포근하게 감싸던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니 어둠과 함께 쌀쌀한 기운이 몰려온다. 바람마저 스산하게 불어대니 억새와 갈대가 요란하게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늦가을 풍경을 더 시리게 만든다. 사위를 흔드는 바람이 불어오니 몇 안 되던 여행자마저 종종걸음으로 바삐 사라져 간다. 하지만 사색을 위해 이곳을 찾은 내게는 고마운 바람이다. 찬바람을 쐬자 정신이 또렷해지며 현재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내 모습도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준다. 

찬바람이 이는 초겨울 사색여행지는 우포늪이 좋겠다. 언제든 그 자리에서 내 고민을 받아주고 말없이 품어줄 우직하고 진솔한 우포늪이 태곳적부터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INFO. 우포늪
주소: 경남 창녕군 유어면 우포늪길 220번지(세진리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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