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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단풍미식] 배꼽시계보다 신통방통한 ‘단풍시계’ 따라 경남 하동 단풍 미식 기행
[단풍미식] 배꼽시계보다 신통방통한 ‘단풍시계’ 따라 경남 하동 단풍 미식 기행
  • 전설 기자
  • 승인 2014.10.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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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하동] 가을 미식 여행의 적기를 알리는 단풍알람이 울린다. “싸게싸게 오니라. 지리산에 단풍이 들면 참숭어 속살에도 빨그스름 단물이 든다카이. 이맘 때 섬진강에서 건진 참게며 재첩도 향 은근하니 참 꼬수운 거 모르제? 때 놓치면 못 묵는다. 싸게싸게 하동으로 놀러 오니라.”

경남 하동의 11월은 참으로 맛나다. 울긋불긋 물든 지리산 자락에는 토실토실한 화개밤이 후둑후둑 떨어지고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가 무르게 익어간다. 그뿐이랴.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살 꽉 찬 가을참게며 재첩이 한아름이다. 산으로 강으로 먹을 것이 지천이지만, 늦가을 하동을 찾는다면 남쪽의 바다로 가자. 눈이 아닌 혀끝으로 즐기는 단풍놀이는 오직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노량포구에서 맛볼 수 있다. 지리산 머리꼭지에 단풍이 들 무렵부터 차진 속살에 빨갛게 물드는 ‘참숭어 단풍’이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상훈사 3km, 형제봉 활공장까지 305km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활공장 방향으로 향하면 정상에 오를 때까지 한쪽에는 하늘을, 다른 한쪽에는 억새와 단풍을 두고 걸을 수 있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지리산 신선이 되어 단풍놀음

“하동에 단풍구경 온다꼬요? 가만있자.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가는 길하고 청학동 외삼신봉 자락에 삼성궁이 젤로 유명하긴한데, 사람들 잘 모리는 숨은 명소를 찾는다카면 형제봉 가는 정금 임도가 참 좋습니다. 중간까지는 지리산 둘레길 14코스여가꼬 둘레꾼도 많이 찾아옵니다. 정상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거든요. 날이 좋으면 평사리 공원까지 비행하는 사람들 구경도 할 수 있고요. 뭣보담 지리산 능선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아입니까.”

하동 참숭어를 여행의 백미로 남겨 놓기 위해 먼저 단풍놀이 명소를 둘러볼 참이었다. 그런데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명소가 아닌 임도를 추천해 준다. 지리산 자락 남쪽의 형제봉 활공장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가면 오색으로 물든 지리산을 발아래 두고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풍치 좋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나서도 될까 싶어 머뭇거리고 있으니 하동군청 산림녹지과의 윤성철 씨가 “같이 가 봅시다”하며 동행에 나선다. 하동의 산천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아는 길잡이와 함께 라니 구경거리 없어 허탕 칠 걱정은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형제봉 활공장은 섬진강변 19번 국도에서 하늘로 곧게 뻗은 임도를 타고 간다. 임도 중턱의 원부춘마을 끝에서 ‘형제봉 7km’ 이정표를 따라가면 아담한 산사 수정암을 지나 끝없는 된비알 길이 이어진다. 하마터면 단풍구경 하기도 전에 땀 서 말을 쏟을 뻔 했는데 길이 잘 닦여 있는 덕분에 자가용을 타고 산길을 오르는 호사를 누린다. 어느덧 형제봉 활공장과 지리산둘레길이 나뉘는 갈림길이다. 앞서 걷던 둘레꾼 홍영현 씨가 눈인사를 한다.

“원부춘마을에서 가탄마을까지 지리산둘레길 14코스를 걷고 있습니다. 한 10km 되는데  까짓것 금방 걷지요. 가을바람이 선선해서 숨이 차지도 않아요. 큰 알밤이 길가에 무시로 떨어져 있어 간식할 겸 몇 개 주웠는데 다람쥐 밥을 뺏어 먹어도 되나 싶네요.”

홍 씨의 말을 곰곰이 되뇌며 고갯길을 올려다본다. 갈림길에서 형제봉 활공장 까지는 1.5km 남짓. 하늘과 가까운 해발 1000m의 숲길을 허무하게 지나치기가 아깝다면 차를 세우고 사부작사부작 마지막 고개를 넘는 것이 좋겠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테지만, 걸음을 옮기다 보면 흰 구름과 까마득한 능선이 발아래 놓인다. 문득 하늘이 참 가깝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면 목적지가 머지않은 것. 곧 하늘이 뻥 뚫린 형제봉 활공장에 도착한다.

“저 짝에 하얀 구름 낀 곳 있죠? 거가 진주, 이 산 너머가 삼천포, 구비진 섬진강 건너는 광양 백운산입니다. 날이 좋으면 저 멀리 왕시루봉이 보이지요. 바둑판처럼 보이는 것이 무딤이들이고요. 산에 고로쇠나무며 떡갈나무가 참 많거든요. 가을이 되면 보이는 능선전체가 노랗고 빨갛고 산등성이에 색동저고리 걸쳐놓을 것처럼 난리가 납니다. 기가 막히지요.”

해발 1105m의 산봉우리에서 땅 끝 아랫마을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능선을 바라본다. 헬리콥터를 띄우고 경치 놀음을 즐긴다 해도 이만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까. 커다란 날개를 매고 허공을 날아가는 활공장이라더니 과연. 바람이 거세 그대로 몸을 내 맡기면 신선이 돼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딱 한 가지 야속한 것은 운해가 짙게 끼어 먼 곳의 풍경이 신기루처럼 흐릿하게 보인 다는 것. 쨍하니 맑은 날이었다면 더 좋았으련만. 산이, 하늘이, 바람이 신선이 될 기회를 주는데도 성에 안차 된소리라니. 사람의 욕심 참 끝이 없구나.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어른 주먹만한 섬진강 참게.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섬진강은 봄 은어, 가을 참게지
신선체험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온다. 마음 같아서는 참숭어 회가 푸짐하게 차려진 노량포구로 뿅, 순간이동이라도 하고 싶지만 주린 배 잡고 찾아가기에는 바다가 너무 멀다. 섬진강이 코앞인데 일부러 굶을 필요가 있을까. 사골 국처럼 뽀얗게 우러난 재첩 국을 후루룩 들이켜 속을 데워도 좋고, 주먹만 한 참게를 껍질째 곱게 갈아 곡물과 함께 끓여낸 이색 별미 참게가리장으로 빈속을 달래는 것도 좋을 듯싶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뽀얗게 우린 제첩국.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재첩도 늦가을까지 먹는데 섬진강은 암만해도 봄 은어, 가을 참게그든. 하동에서는 참게를 껍데기째 싹 갈아가꼬 끓여 먹어요. 안 그럼 참게 찝게다리가 진짜 딴딴해서 못 먹어. 이레 갈아놓으면 할머니고 애들이고 다 잘 묵지요. 이게 옛날에 배고플 때는 참게 한 마리를 온 식구가 갈라 먹다보니까 가마솥에 게를 팔팔 끓여가 밀가루를 풀어서 걸쭉하게 배 채울라꼬  먹은긴데 요샌 밀가루 전혀 안 씁니다. 멥쌀, 찹쌀, 콩, 들깨, 버섯 넣어다 건강식, 영양식으로 먹지요. 하동에 태섭이 아저씨라고 섬진강에 통발 넣어다 참게만 잡아 주는 전문가가 있거든. 우리는 수지 안 맞아도 거기서 참게만 받아쓰는데 이야, 진짜 게가 너무 좋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온갖 곡물과 참게를 통째로 갈아 만든 참게가리장. 죽처럼 되직해 든든한 한끼로 좋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참게가 커 봤자 참게지. 말 한번 잘못했다가 주방으로 끌려간다. 어른 주먹만 한 참게를 두 눈으로 확인하니 저절로 이야,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선명한 다홍빛 껍데기에 윤기가 반지르르. 고놈 참 딴딴하게도 생겼다. 요놈을 통째로 갈아 넣은 가리장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

들깨죽처럼 되직한 가리장이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국자로 속을 헤집는데 뚝뚝 썰어놓은 참게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한 수저 떠 먹어보니 진득하면서도 고소하면서도 개운하다.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한 맛은 아니지만 오래 오래 음미하기 좋은 맛. 몸에 해로운 것은 다 빼고 입에 단 것만 곱게 갈아 정성껏 끓인 아기 이유식 같은, 건강하고 다정한 맛이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수조 안을 노니는 은빛 하동 녹차 참숭어. 조류가 거센 노량해협에서 녹차를 먹여 키워 살집이 쫀득하고 차지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하동 단풍미식의 백미, 참숭어
하동에서의 하루는 짧다. 산책할 겸 섬진강변을 따라 조성된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를 걷다 보면 재첩잡이에 한창인 ‘아지메’ 구경에 시간을 홀랑 잡아먹고, 황금빛으로 물든 평사리 들녘에 서면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부부송’ 소나무에 한참 동안 시선을 빼앗긴다. 소화도 시킬 켬 해작해작 걷다보니 벌써 오후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더 늦기 전에 하동 미식 기행의 주인공을 만나러 갈 차례. 섬진강이 일러준 길을 따라 노량포구로 향한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참숭어는 꼬들꼬들한 뱃살부터 양념 초장에 찍어 먹는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하동의 참숭어가 자라는 노량해협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의 격전지이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바다이기도 하다. 예부터 물살이 거세고 빠르기로 유명한데, 하동의 참숭어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센 조류 속에서 크기 때문에 살집이 쫄깃쫄깃하고 차진 것이 특징. 바다가 키운 참숭어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은 하동군수협공판장 뒤쪽 노량포구 횟집골목에 몰려 있다. 그중 단골손님들의 칭찬이 자자한 태공횟집에서 참숭어 한 접시를 주문한다.

“하동은 물빨이 쎄서 고기가 맛이 있을 수밖에 없어. 우리는 딴 지역 가면 회 못 묵어요. 찬바람 들기 시작하면 참숭어 살이 들큰하게 제맛이 들지. 빨간 띠가 짙을수록 신선한데 옛날에는 보기 싫다고 다 때내삤어. 그럼 우리가 다 주워 먹고. 빨간게 젤 좋은 기그든. 겨울에 얼음이 삭 얼기 시작하면 아가미부터 창자까지 싹 먹지. 진짜 내삐릴게 하나 없어.”

김금선 사장 주선으로 드디어 참숭어와 상봉이 이뤄진다. 솜이불처럼 도톰하게 썰어낸 참숭어 속살에 붉은 단풍이 들어 있다. 가장 맛있다는 뱃살부터 양껏 집어 초장에 푹 찍어 먹는다. 꼬들꼬들한 것이 달보드레하구나 싶더니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고기가 달아서 나리면(질리면) 묵은지에 싸 묵고, 초장에 찍어 묵고. 맑게 미역지리해서 먹어도 아주 맛있어.” 김 사장의 조언대로 상추에 묵은지를 깔고 도톰한 회 한 점을 싸먹으니 그 맛이 또 일품. 녹진한 참숭어 회와 짜고 신 김치의 맛이 이렇게 궁합이 좋을 수가. 지방기 고소한 뱃살 한 점, 부들부들 씹히는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 부지런히 먹고 마시다 보니 얼굴이 벌써 발갛다. 지리산 단풍불이 참숭어에 번졌다가 사람에게까지 옮는가 보다.

INFO. 형제봉 활공장 임도
코스
원부춘마을~지통골~수정암~형제봉 임도 갈림길~형제봉 활공장~형제봉
주소 경남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산 1번지

INFO. 하동 참숭어 축제
기간
10월 31일~11월 2일
장소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해안길 16-1 (하동수협 본점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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