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예천]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삼강. 과거 이곳을 오가는 나그네들이 잠시 쉬어 허기를 채우고 잠을 청했던 삼강주막이 올초 문을 다시 열었다. 시원한 강줄기를 내다보며 배추전과 막걸리 한잔으로 여독을 풀던 주막은 오랜만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0여 곳에서 배가 오갔던 곳, 낙동강 1300리 물길. 그러나 물길 따라 오가던 배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갔고, 사공과 나그네가 쉬어 가던 주막 역시 덩달아 자취를 감췄다. 삼강주막은 고 유옥련(2005년 90세의 나이로 별세) 할머니가 운영하던 낙동강 1300리 물길의 마지막 주막이었다.
한때 이곳은 낙동강 하구에서 싣고 온 소금과 내륙의 쌀을 교환하던 상인과 보부상, 그리고 시인 묵객들로 들끓었다. 하지만 유할머니가 주막을 떠난 후 주막은 지키는 이도 찾는 이도 없는 황량한 초가가 되었다. 한동안 그렇게 방치되다가 최근 찾아오는 길손들로 인해 주막이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바로 헐벗었던 주막 곳곳을 삼강리 마을 주민들이 복원한 후, 유할머니를 이을 새로운 주모까지 뽑으면서 주막을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마침 주막을 찾은 날은 삼강주막의 개업식이었다. 인근 마을 주민들로 시끌벅적하다. 아낙네들은 마당에서 배추전과 김치전을 지지느라 바빴고, 남정네들은 막걸리를 나르고 불을 지피느라 손길이 분주하다. 먼 타지에서 온 객도 많다. 인근 장수나 문경은 물론 대구,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새롭게 문을 연 주막을 보러 온 사람들로 주막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땅히 앉을자리가 없어 마당을 서성이다 부엌으로 향했다. 마침 유옥련 할머니를 이어 새롭게 삼강주막을 이끌어갈 새 주모 권태순(70세) 할머니가 솥에 물을 붓고 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온화한 미소, 그리고 무엇보다 술을 잘 빚어 주모로 뽑히게 됐다는 권할머니. 바쁘지 않냐는 질문에 먼 길에서 온 손님들이 자리가 없어 기다리다 그냥 가는 경우가 많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권할머니가 검게 그을린 부엌 벽면을 손으로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벽에는 위에서 아래로 그어진 금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무슨 암호 같기도 한 이 금은 유옥련 할머니의 외상장부라 한다. 유할머니는 글과 숫자를 몰랐기 때문이 이렇게 금으로 외상을 표기했다고. 긴 금은 막걸리 1말, 작은 금은 막걸리 반 말을 의미하고 금의 위치는 사람을 나타낸다 한다.
7~8명이 앉을 수 있는 방 두 개와 부엌 하나, 그리고 다락과 툇마루, 마당에 세워진 원두막(정자) 2채가 전부인 삼강주막 한편에서 풍양면 공처농요 앞소리꾼인 조홍래 씨가 ‘삼강 뱃사공의 노래’를 부른다. “…삼강의 나루터라 / 저 건너 저 주막의 텁텁한 막걸리가 / 사공의 몫일세….” 구성진 뱃노래 소리에 동동주 한 모금 머금으니, 애수와 취기가 함께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