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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사람 사는 풍경] 시골 흙길 달리는 성주 0번 버스 하루 두 번, 작은동으로 가는 사랑방 버스
[사람 사는 풍경] 시골 흙길 달리는 성주 0번 버스 하루 두 번, 작은동으로 가는 사랑방 버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8.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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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성주군의 구석구석을 달리는 0번 버스.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성주] 경북 성주군엔 비어 가는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달리며 노인들의 발이 되어주고 사랑방 역할을 하는 ‘0번 버스’가 있다. 0번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엔 그들의 얼굴에 파인 주름만큼이나  깊은 인생역정이 묻어 있고 때로는 정겨운 삶의 즐거움도 깃들어 있다. 0번 버스를 탄 사람들에게서 우리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할매요, 0번 버스 어데서 타요?”
“0번 빠아쓰? 아~ 똥굴베기 빠아쓰? 그거 저저 ‘주추장(정류소)’에서 타믄 된다. 그란데 그거 갈라믄 아직 쫌 더 있어야 된다.”

길에서 더덕이며 나물을 팔고 있는 한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 성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20년 전의 시골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좁은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니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정월대보름을 앞둔 날이라 의자 옆에는 짐 한 보따리씩을 떡하니 놓아둔 상태다. 

대합실이라곤 하지만 시간을 때울 TV도 없는지라 어떤 할머니는 시장에서 산 나물봉지를 풀어놓고 하나하나 다듬고 있고, 어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턱에 괸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시내에 나온 목적이 정해져 있고, 워낙 작은 동네라 볼일을 마친 후에는 시간을 축낼 만한 곳도 없어 버스가 올 때까지 대합실에서 소일이나 하는 편이 낫다. 

성주에서 0번 버스는 하루에 5회 운행하는데, 그중에서도 하루에 2회 운행하는 ‘작은동’ 가는 0번 버스는 먼지 폴폴 나는 흙길을 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은동을 왕복하는 버스는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있는데, 오전엔 시골에 있는 사람들이 성주 시내로 이 버스를 타고 나오고 각자의 볼일을 본 후 오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창구에 달랑 구멍 하나가 다인 옛날식 매표소에서 차표를 산다. 젊은 아가씨 대신 콧등까지 안경을 내려쓴 할아버지가 표를 끊어준다.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검은 페인트로 또박또박 쓴 정류장 글씨.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작은동 가는 버스 왕복하는데 얼마나 걸려요?”
“그기야 나도 모르지. 길 나쁘고 사람 많으면 늦게 올끼고, 길 좋고 사람 없으믄 한 시간 만에도 올끼고….”
터미널을 떠나 작은동 종점까지 가는 요금이 2300원. 시골의 완행버스 요금 치곤 꽤 비싸다. 더구나 노인들의 쌈짓돈으로는 더욱 비싸게 느껴진다.

“그런 말 말어. 그래도 저거이 없으면 노인네들은 움직이지도 못혀. 젊은것들이야 자가용이 있으니 괜찮지만 우리 같은 늙은이들한테는 저거이 발이여. 돈이 안 아까버.”

0번 버스가 서는 자리에서 하릴없이 담배를 물고 버스를 기다리는 김창조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시내에 있는 병원을 다니는데, 자식들도 다 외지에 나가 있고 이 버스가 아니면 벌써 앓아누웠을 거라며 0번 버스 예찬론을 펼친다. 

이렇게 0번 버스는 노인들을 위한 버스다. 성주에서도 외진 구간만 골라서 다니는 버스인지라 처음부터 노인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0번’을 붙였고, 지금도 승객 대부분은 장을 보러 나오거나 병원에 다니는 노인들이다. 이러한 0번 버스는 성주를 비롯해 청도와 칠곡, 안동에도 비슷한 사연을 담고 운행되고 있다. 

오후 2시 50분. 기다리던 작은동행 0번 버스가 들어온다. 보따리를 힘겹게 올리며 노인들이 버스에 오른다. 재미있는 점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은 꼭 버스의 앞칸부터 채운다는 점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앞자리에 앉는다. 지금까지 버스에 탄 승객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최금조 할머니 역시 버스기사 바로 뒤의 ‘상석’에 자리를 잡는다. 

“배티띠기(배티댁)는 빙윈 잘 댕기왔드나? 홍이띠기(홍이댁)는 할배 어디 내삐뚜고 혼자 왔나?”
“할배는 그서 하루 점도록(저물도록) 술 묵다가 자고 니일(내일)~ 온다요. 지여버(지겨워)~ 지여버. 지여버서 몬 살겄다 안 카요.”
“그 할배는 술을 안 묵으믄 호탕한데 술만 묵으믄 와그래 치마를 입은 것멩키로 그케샀는가?”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옛날만큼 북적거리진 않지만 여전히 0번 버스는 정겨운 사랑방이다.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버스는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버스 안은 벌써 사랑방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오전에 같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온 사람들이니 그 짧은 4시간여 동안의 안부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한쪽에선 시장에 들고 나간 봄나물을 다 팔지 못했으니 가져가서 저녁 찬거리라도 하라며 까만 ‘봉다리’에서 한 움큼을 덜어내 이웃동네 아주머니의 ‘봉다리’에 넣어준다. 

3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2차선 아스팔트길을 내달린다. 그동안에도 버스 안은 시끌벅적하다. 설날에 왔다간 누구네 아들이 베트남 처녀를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 누구네 딸은 대구서 살다가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엔 시골에 내려와 늙은이 속을 박박 긁고 있다는 이야기 등 앞뒤좌우를 향해 번갈아 화제를 바꾸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메 여가 어데고? 아저씨요, 세와 주이소. 이야기하다봉께 마을 지나치뿟다. 아구야 5분은 걸어야겄다.”
첫 정류소인 백무동에서 내려야 할 아주머니가 그만 동네를 지나쳐버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세와주시오’ 한 마디면 정류소건 길가건 상관없이 버스가 선다. 

“아따 아지메, 내가 동네 다 왔다꼬 세울 낀지 말 낀지 물어봤다 아이요? 난 또 웃동네 갈라카는 줄 알았지. 담부터는 아지메 있느나 마나 백무동에선 무조건 세울 끼라요.”

허둥지둥 내리는 아주머니의 등 뒤로 기사 아저씨가 밉지 않게 핀잔을 준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그라믄 그라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에서 내린다. 이후에도 버스의 벨은 한 번도 울리지 않는다. 그저 내릴 때가 되면 자리에 앉아 ‘내라주이소’라는 말 한 마디면 된다. ‘부자를 울리면 문이 자동으로 열립니다’란 문구가 무심하다.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2008년 3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백무동을 지나고 대가와 송계1리를 지나 작은동 가는 길로 들어설 때까지 대부분의 승객은 다 내리고 버스엔 작은동 거뫼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만 남아 있다. 길이 점점 좁아지나 싶더니 이내 흙길로 들어서고야 만다. 성주군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비포장길. 전국에서도 이런 옛길을 달리는 버스는 흔하지 않으리라. 

버스가 들어서면 반대쪽에서는 절대로 지나갈 수 없을 만큼 길이 좁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차가 올 리가 없다. 그만큼 이 길은 사람의 왕래가 없는 길이다. 버스 뒤로 뽀얀 먼지가 폴폴 날린다. 누군가 열어놓고 간 창문으로 먼지가 들어와 난리도 아니다. 저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제멋대로 덜컹거리며 내달리는 버스 안에서 궁둥이를 뗄 엄두가 나질 않는다. 

흙길은 외지인들에게는 낭만이지만 현지 주민들에게는 불편일 뿐이다. 이렇게 하루에 두 번이라도 0번 버스가 오가면 다행이건만 겨울이나 여름, 눈이나 비가 오면 버스는 포장도로만 오간다. 흙길을 지나야만 당도하는 작은동 사람들은 꼼짝없이 발이 묶이거나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2~3km도 넘게 걸어 나와야 하는 것이다.

드디어 종점인 거뫼마을이다. 마지막 손님을 내린 버스는 좁은 공터에서 한 바퀴를 휘익 돌아 다시 흙길을 내달린다. 작은동에서 보자면 시내로 가는 막차인 셈이니 손님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작은동까지 손님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듯하다.
그저 신기함에 흙길을 달려보는 외지인의 바람으로는 이 덜컹거림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하지만, 이 길 또한 언젠가는 시멘트가 발릴 것이다. 시골의 정겨운 풍경과 옛 추억이 솔솔 떠오르게 만드는 0번 버스도 평범한 완행버스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작은 마을에 사람이 더 많이 살게 되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지금보다 더 정겨운 ‘0번 사랑방’이 꾸며질지도 모른다. 때론 옛 흙길을 그리워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겠지. 이것이 0번 버스와 작은동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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