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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 따라 가는 여행] 경북 영천 돌할머니 할마이요, 지 소원 좀 들어주이소
[전설 따라 가는 여행] 경북 영천 돌할머니 할마이요, 지 소원 좀 들어주이소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8.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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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돌할머니께 소원을 비는 사람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영천] 경북 영천시 관리마을엔 신통방통한 돌 하나가 있다. 바로 정성만 지극히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돌할머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수백 년간 마을 주민들과 함께해온 신비의 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은근 재미있다.

영천을 대표하는 명물? 인물?  
“할매한테 ‘지 왔심다’ 하고 인사부터 드리라. 뭘 꾸물대삿노? 퍼뜩 댕기오라카이.” 관리마을 돌할매관리사무소에서 만난 김무일 할아버지는 보자마자 돌할머니한테 인사부터 드리지 않는다고 성화다. 마을에 오면 일단 돌할매부터 찾아뵙는 게 순서이고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사간 카스텔라도 일단은 돌할매 앞에 가져다놓아야 한단다. 

오래전 TV에서 ‘돌할머니’를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에이~ 느낌이겠지. 그냥 자기 최면에 그러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선배, “희한하네. 한번 가볼까”라고 하는 친구 등 화면 속 내용을 다들 꽤나 흥미 있어 했다. 가깝기만 하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신비의 그 장소는 점차 유명해져 돌할머니공원까지 생겨났고, 영천사람 누구를 잡고 물어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별다른 관광 자원이 없는 영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된 셈이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소원을 빌러 찾아온 한 가족.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그저 신기하다는 말밖에는…
달걀 모양, 수박 크기만한 돌덩이 하나가 신기하다면 얼마나 신기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답답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맘에 천리길 마다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이날 역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들이 끊이질 않고 들어왔다. 하지만 저마다 답답한 사연이 있는 까닭에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는 것조차 달가워하질 않는다. 그나마 돌할머니로부터 좋은 대답을 얻은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어제 인천을 출발해 대구에서 하룻밤 자고 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참 신기하네요. 처음엔 들리던 돌이 어째 죽어도 안 들리는지…. 그냥 제 얘기를 주절주절하고 이러면 좋겠냐고 물어보고 나서 드니까 안 들리데요” 라고 말하면서 신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돌할머니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지난 1993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텔레비전에 소개가 되면서부터다. 원래는 지금보다 약간 아래쪽 야산에 있었는데 한때 산주(山主)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소유권을 두고 마찰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지금은 주민들이 2인 1조로 조를 나누고 CCTV를 설치하는 등 최대한 일손을 덜게끔 해두었다. “물어볼 수도 없꼬 물어본다 케도 안 갈키줄 끼고. 밤이나 낮이나 새벽이나 할 것 없이 하루 점도록 온다카이. 매달 오는 사람도 있고 주기적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 거 보면 좋응께 계속 오지, 좋도 않은데 또 올낑가?” 김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할머니들의 사랑방. 돌할매관리사무소.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돌할머니를 둘러싼 가지가지 이야기
관리사무실에 마실 나온 할머니들한테 돌할머니 얘기 좀 해달라고 청하니 대뜸 옛날 얘기부터 꺼낸다. “내가 요새나 좀 개안치 옛날엔 시집 잘못 왔다 생각했다 안 카나. 돌할매 덕에 도로도 빨리 닦이고 버스도 요 앞까지 들어와삐고. 요새 같으믄 살만하지”. 1998년이 되어서야 버스(하루 3회)가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마저도 없을 때에는 임포까지 40리 길을 걸어다녔단다. 늦은 감은 있지만 여러모로 돌할머니 덕을 봤다는 얘기다. 관리 할머니들은 하루에 한 번은 사무소를 찾아 돌할매한테 인사도 드리고 사람들과 만나 무료함도 달랜다. 

올해 일흔여덟 되신 김태조 할머니가 들려주는 얘기가 재미있다. “이기 참 옛날얘긴데 우리 영감이 소핵교 댕길 때 겪었다. 뉘기를 델꼬 와가 농사를 지믄 일 년 수금으로 나락을 주고 그캤는데, 영감님 집에서 쓸라꼬 젊은 사람 하나를 델꼬 왔거덩. 4월엔가 그때 논두렁을 쌓아야 할 낀데 젊은 사람이 뭘 아나? 그냥 벨 생각 없이 옆에 있던 돌할매를 보고 좋다카믄서 갖다 쓴기라. 그래놓고 이 사람이 밥을 무그로 집에 오는데 감중에(갑자기) 배가 아프다꼬 자빠지고 난리가 난기라. 그래서 이웃집에 아픈 사람 잘 본다카는 할매한테 쫓아갔어. 그란데 그 할매가 다짜고짜 하는 소리가 “돌할매 그냥 냅뒀는가?” 카는기라. 그래서 우리 시아배가 논에 가보인께네 돌할매가 멀거이 딴 데 가 있다카는기라. 식겁을 해가꼬 그걸 어펑 꺼내가 지 자리에 갖다노으멘시로 ‘아덜이 철딱서니가 없어가 그랬다꼬 용서해주시오’ 카믄서 빌고 나서 집에 돌아옹께 방금까지 아파 죽는다~ 죽는다 카던 사람이 껄껄 웃는 소리가 사랑방에서 났다카대. 안 신기하나?”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15년 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돌할머니.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정성만 지극히 드린다면…
돌할머니가 언제부터 마을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1548년 마을이 처음 생겼고 오래전부터 마을이나 집안의 길흉화복을 점쳐주는 대상으로 숭배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요 몇 년 새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이제는 전국적으로 아류까지 거느리게 되었다. 그중에는 이웃마을 돌할배도 있다. 한편 돌할머니 앞에 가면 몇 가지 지침이 있는데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잡담을 하지 말 것, 그리고 정중하게 삼배하고 한 가지 소원을 물어볼 것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요는 ‘정성만 지극히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라는 것. 소원을 비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빌 수도, 묻는 수도 있다. 그저 입으로 흘러나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된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오른쪽으로 가면 돌할배 왼쪽으로가면 돌할매. 돌할배는 요즘 생겨난 아류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돌할머니는 10kg 정도로, 가뿐히는 아니지만 성인 남녀는 누구나 들 수 있는 무게. 그렇지만 할머니는 이 무게로써 기도에 대한 답을 해준다. 할머니의 무게가 처음보다 무거워지면 좋다는 뜻이고 무게에 별 차이가 없으면 어렵겠다는 뜻이라고. 나 역시 어르신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취재를 핑계 삼아 돌할머니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진지해야 한다는 당부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또 여쭙기도 했다. 그러고 난 후 돌할머니를 들어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렸던 돌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일단 좋은 신호). 마치 밑에서 뭔가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처럼 움직이질 않아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누구한테 말할 사람도 없고 혼자서 고개만 갸우뚱거리다 되돌아 나오니 할머니들이 궁금해 한다. “할매가 머라카노? 올해 좋다카더나?” 돌이 들리지 않았다고 하니 “거봐라, 아가씨 올해는 엄청 잘될끼다. 가을띠기 다시 함 와봐라카이.”  

이제 와서 돌할머니가 미신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고된 일상에 눈물 흘릴 곳조차 마땅치 않았던 우리네 아버지어머니에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처럼 마음을 보듬어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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